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 하셨다(시1:1~2참고). 행복을 갈구하는 사람들은 많고 이 행복을 나눠 줄 주체가 누군인 줄을 아는 사람은 없다. 신앙을 한다고 말들은 하지만 그 신앙에 만족하고 행복을 찾았는가 묻고 싶다. 종교와 신앙은 잠깐의 위로와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믿기만하면, 인정만하면 가는 천국행이 아니다. 천국문은 좁고 협착하다 하셨는데 어떻게 쉽게 내뱉는 한마디에 갈 수 있는 곳으로 전락해 버렸을까?
신이 만드는 나라 천국이 이 땅에 이루어지고 있다. 행복의 단어로만 갈급 해 하지 말고 내 눈과 귀로 확인하고 이 나라를 스스로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구하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것이다. 체면에, 눈치에 편승하다 보면 영원한 행복을 놓칠수 있다. 마음한번 먹기에 천국과 지옥이 나눠진다. 현명하고 똑똑하다면 어느 길을 선택할지는 자신의 몫이다.
모 시내버스 출입구 위에 이런 홍보문구가 눈에 들어 온다. ' 복 있는 사람은 이름을 누가 짓는가? 이름대로 살고 이름으로 성공한다고 한다.' 특허 받은 철학, 작명소의 홍보 문구다. 소장님은 어떤 분일까? 눈길을 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하셨다(창12:19~참고).
6천 여 년전 아담도 작명을 했다. 누구의 작명이 더 효력이 있을까? 비교 개념이 좀 우습기는 하지만, 요한계시록에도 새 이름을 받는 자가 등장한다. 누가 누구에게 새 이름을 주시는가? 이기는 그에게 새 이름을 주시는데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다라고 하신다(계2:17참고).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 상대를 부를 때 사용하는 것일까? 필명이나 아호거나 아니면 태명, 아명, 대박이, 마빡이, 복덩이 등등..... 하나님을 믿노라하는 신앙인이라면 새 이름을 가진 자와 새 노래를 부르는자를 만나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