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내용은 사도바울의 신앙고백이다. 이 때는 생명을 담보로 신앙을 했다. 더 좋은 부활 영생의 반열에 서기 위해 모진 악행과 시련을 견디며 도를 전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예언이 이루어진 실상을 믿으며 나타난 것을 보고 믿고 지키면 된다. 하지만 신앙한다는 자부심만으로 지식은 전무하다. 성경의 문맹이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서를 몇번을 읽기, 필사의 숫자가 신앙의 깊이를 측도하는 기준이 돼 버린 것 같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이유는 아닐진데 말이다. 우이독경(牛耳讀經)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성경은 약속의 책이라고 하셨다. 약속은 그 내용과 상대가 있어야 하며 이루어 질 날과 그 실체를 확인해야 하지 않겠는가?
복잡하고 머리 아프고 귀찮아 해야만 할까? 코앞에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이 놓여 있는데, 안전한다 할 그 때에 멸망이 홀연히 이른다 하지 않았는가? 정신줄을 챙겨야 한다. 블로그도, 카페도 하나씩 사라져간다. 복을 스스로 차는 것이다. 이유없이 미워만해서는 안 된다. 저들이 알지 못함으로 죄를 돌리지 말아 달라고 스데반집사는 말했다. 신앙은 경외할 대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름만 믿는다고 다가 아니라 뜻과 목적을 알고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지키며 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엄히 행하라하신 직무이다. 선지사도들의 목숨바쳐 행한 믿음과는 너무도 안일한 신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144,000명의 제사장과 흰 무리 백성과 만국소성은 새 나라 새 민족의 책무이다. 사생결단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영원한 생명의 복을 주신다는데,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다는데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 천국으로 가는 발걸음이 보무당당했으면 좋겠다. 아멘.
새로운 정부에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견해는 여, 야를 막론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서로 듣고 대화하며 소통을 원하는 것이 민심이라고 한다. 요즘 기독교계도 이랬으면 좋겠다. 무조건 이단이라고 폄하하고 비방하며 개종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여차하면 감금, 폭행, 협박을 자행하는 한기총의 거룩한 몇 몇 분이 술객 노릇을 하고 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있는 사람들을 교단이 다르다고 개종을 시킨다는 것이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것도 강제로, 또 돈을 받고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돈없이 값없이 받으라고 성경에 기록하셨다. 이 목사님들은 성경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를 수 밖에 없다. 왤까?
이름있는 신학대를 유학하고, 박사학위는 물론 저서 하나쯤은 배경이 되어야 잘 나가는 목사님의 반열에 있을 수 있다. 최근에는 모 목사님은 예능프로에도 한자리를 하고 계신다. 교회가 기업이 되고, 세습의 불화가 부패를 조장하는 선봉에 있다면 누가 먼저 각성하고 회개 해야 할까? 참을 부정하며 이유없이 이단, 사이비라고 규정하여 믿지 않는 무신앙인 조차도 신천지를 이상한 집단이라는 편견을 상식인 양 떠들고 있는 무지가 어이없고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적반하장도 예의가 없어도 너무 없다. 하늘의 처소는 임함을 준비하고 있고, 이 땅의 하늘은 인을 맞으며, 또 인을 치기에 바쁘다. 오랜 후에 어느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일러 주셨다.
신약의 예언이 이루어져 나타난 실상을 우리 눈으로 보고 확인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청함 받아 알고 깨달아 지키며 택함을 입어야 한다. 만만치는 않다. 그러나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다라고 하셨다. 믿기만 하면 구원 받던 때는 어언 2천 여 년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날은 신약의 약속의 때에 살고 있지 않은가? 소귀에 경읽기 (우이독경)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종교는 하늘의 것을 보고 배우는 것이다. 그 하늘 나라가 임해 오신다는데 죽으면 가는 나라로 둔갑을 하여 소망이라는 포장을 하고 있다. 천국을 보고 온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좋은 곳을 왜 빨리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아이러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정안수를 떠 놓고 천지 신령님께 무엇을 빌었을까? 그리고 언제, 어떻게 응답을 받은 것일까? 모두가 구원과 천국과 영생의 복을 소유하는 주인공이 되라고 기회를 주시지만 잠에서 깨어날 줄을 모르는 우리의 후손들을 얼마나 답답해 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