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매화가 만개했다. 비바람도 추위도 버티며 꽃잎을 열었다. 오늘따라 출근길이 화사해진다. 해마다 돌아오는 순환을 거부할 수도, 쉬어 갈 수도 없는 계절의 순리를 답습한다. 한 해의 절정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성경66권의 클라이막스는 언제쯤일까? 답은 요한계시록이 성취되는 오늘날이다. 계시록은 약 2천 여 년 전에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환상으로 보고 기록한 예언서 곧 장래사이다. 성경은 언약서이다.
예언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임을 아실까나? 오랜 후에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일러 주셨듯이 이 오늘날 때가 되어 밝히 실체가 나타난 것을 우리는 눈으로 보고 듣고 있다. 요한계시록을 가감하면 구원도 천국도 없다. 사도바울은 부분적인 것만 보았고 실상은 보지 못했다. 지금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바 되고 밝히 증거하는 때에 살아가고 있다.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눈치나 보고 이단이라고 치부할 일은 아니다.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서두르자!
세상은 봄 비가 내립니다. 이 비를 맞고 산천초목은 우후죽순같이 새 옷으로 단장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도 말씀의 장대비가 내려 우리의 심령을 깨끗이 씻어 주고 있습니다. 6천 년 간 묵혀 왔던 맑은 포도주를 아낌없이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 탄식하시며 떠나가신 하나님, 만물 속에 드시고자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아무 한것도 없는데 택하여 불러 주시고 사랑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 무지하여 밤을 의지한 세월을 보상해 주시는 하나님, 우리는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 할까요? 일 한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 약속을 지키는 자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 말씀앞에 숙연하여 하늘을 봅니다. 창 밖엔 봄비가 추적거립니다.
그러나 마음은 말씀의 장대비로, 은혜의 풍성함으로 가슴은 먹먹해 집니다. 실상은 실체로 증거되어 지고 눈으로, 귀로, 보고 듣고도 이 말씀을 부인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참이 거짓으로 도용되고 오해와 편견의 대상이 된 이 부패한 종교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로운 세상 신천지를 창조하신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2천 여 년 전 사도요한이 환상으로 본 요한계시록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던 신약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들로는 상상불가의 사실들이 이루어졌고 또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인할 수 있을까요?마음 한번 먹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은 나눠집니다.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없다고 외면하시나요? 하나님께서는 돌들로도 역사하실 수 있지만 떠나간 탕아들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서두르십시오.
약 2천 년전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환상으로 본 요한계시록이 오늘날 실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감각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왜 신앙인들에게 성경이라는 경서를 주셨을까? 열심히 읽기만 하면, 쓰기만 하면, 자신들이 필요할 때 한 구절 인용해 쓰라고 주셨을까?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것은 일이 이룰 때 믿게하려고 기록하셨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리고 자기의 비밀을 종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 결코 행하심도 없으시리라 하셨다. 성경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깨달아 행함으로 지키라고 주셨지만 약속을 알고 싶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기독 신앙인이라고 할수 있는가?
점잖게 차려입고 거룩한 걸음으로 가는 것이 교회가 아니다. 교회! 모여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데 인터넷이 교회가 되어 토요일에 목사님을 뵙는 것은 실례라는 일화도 있다. 어찌하여 신앙인의 현주소가 이리도 혼돈과 흑암의 현장이 돼 버렸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변궤치 않는 신의 역사는 기록대로 소리없이 이루어 지고 있다. 성경대로 나타나는 순리를 감히 인간이 대적할 수 있을까? 이 엄청난 사건의 핵심 인물로 불러 주시는데도 불신의 늪에 빠져있다면 무한한 사랑도 인내의 한계를 긋지 않을까? 좋은 말로 할 때, 선택되는 기한내에 부를 때, 더하여 주실 때 속히 오면 얼마나 좋을까? 교회가 하늘로 들려 올라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성전으로 임하여 오심을 아래 영상으로 확인하시길 당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