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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2일 목요일

인생의 답을 찾고 싶다면?




연초록의 은행잎이 싱그러운 아침이다. 우리에게 또 하루를 허락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생각한다. 무작정 주실 때 더 달라고 바라고만 있지는 
않은지, 찾아 달라고 기다리고 계실 때 외면하고 있지나 않았는지.....

죽음과 고통이 사라지는 날을 위해 작은 준비를 하자는데 뭐가 그리도 
바쁘고 핑계들은 많은지 안타깝다. 사람의 상상력으로는 가히 짐작도 
하지 못하는 엄청난 복을 준비하시고 지켜 주기만을 6천 여 년을 
기다려오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한낱 미물이며 짐승에 지나지 않는 인간들이 웃고, 
울며 나대는 모습들이 얼마나 한심하실까? 영생은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름만 붙들고 아는 체만 하고들 
있으니 얼마나 애가 타실까? 

이제 예수님이름으로 오신 약속의 목자께서 진리를 전하고 계신다. 날로 
부패하고 피폐해져 가는 세상에서 낙원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면 자신의 
편견의 사고를 바꾸자. 






신천지는 이 땅의 천국이며 하나님, 예수님, 거룩한 
성이 임해 올 새 하늘 새 땅이다. 알아 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클릭 해 보자. ^^

04006!



2018년 1월 24일 수요일

죽어서도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멋진 리무진차 뒤쪽 창엔 근조(謹弔)라는 글 귀가 보인다. 사람의 허영은 죽어서까지 
나타내려 하는 것 같다. 죽음을 경히 여기자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지음 받을 때 
영원히 사는 존재로 창조 되었다. 그런데 모두 사망이 당연시 되어 죽음으로 
줄줄이 줄서기를 하며 예외는 없다. 아직까지는.....

사망을 주관하는 자는 누구일까? 정말 있을까? 죽어서도 배워야 한다고 신위에는 
학생부군 신위라고 표기한다. 누가 가르쳐 주는가? 죽어서 가는 천국에는 어떤 
학교가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신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살아 있을 때 배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기독교 신앙은 체험과 부활의 
신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뜻은 모른다. 염불 외듯 다른 사람들의 흉내만 낼 뿐이다. 
앵무새같이 말이다. 말씀은 하나님이시라고 기록되어 있음에도 관심은 없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인생은 참 무지하다. 오죽하면 구더기에 빗대었을까? 




육신이 죽으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구더기이다. 신과 사람은 생각도, 길도, 깊이도 
다르다고 하셨다. 정말 벌레보다 못한 사고로 감히 어디에 빗대려고 눈 높이를 치켜 
세우려고만 하는가? 그래도 신은 모든 사람이 사망의 늪속으로 빠져 들고 있음을 
깨우쳐 주시려 나팔을 불고 계신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파하라고 하신다. 

핑계대지 못하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생명의 동앗줄을 꼭 잡기를 바라고 
원하신다. 오늘날 잘 나가는 목사님도 모르는 요한계시록을 해석 해 주고 계신다. 
성경대로 오신 약속의 목자를 부르고 택하시어 일곱째 나팔의 승리를 알리고 계신다. 

성경의 나팔 소리는 부~웅하며 불려지는 소리가 아님을 분명히 깨달아 약속의 나라 
새 하늘 새 땅(신천지)을 찾아 나아 오기를 기도한다.









2018년 1월 1일 월요일

새해엔 새 마음으로!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사람의 생각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일것이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창세부터 
감추어 두신 것을 오늘날에 이루시고자 하신다. 신의 능력은 약속하시면 
반드시 성취하시는 것이 섭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의 천국을 찾아 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잃어버린 
한마리의 양을 찾는 절박함으로 부르고 계시지만 도대체가 깊은 밤이다. 
소리없이 도적같이 홀연히 이루어 가는 천국이 수면으로 부상하고 있다.

핑계하지 못하게 만물속에 숨겨 주시고 찾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누구도 탓하지 못하도록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미래도 예측못하는 
어리석음에 투자하지 말고 확연하게 뚜렷이 보이는 하늘의 문화에 
귀 기울여 보자.




마지막 나팔인 일곱번째 나팔이 불려지고 있다. 재앙받을 반열에 서지 말고 
나오라고 하실 때 순한 양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아집과 편견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지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사람들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지만 신은 6천 여년을 인내하시며 예언하신 
것을 이루고 계신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건  어리석은 사람의 핑계며 
변명에 지나지 않을 뿐, 새해가 밝아 부질없는 해맞이는 잘도 하지만 정작의 
참 빛은 외면 당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승리의 나팔은 불려지고 실체는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때 늦은 후회의 
주인공들이 되지 말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