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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3일 금요일

사람은 영원히 살 존재로 창조하셨다.



어르신들이 말씀하신다. 자는 잠에 가고 싶다고.....
죽음의 모습이 복이 되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강연도 있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는 사람도 생겨난다. 

창조주께서는 사람들을 늙고, 병들고, 죽게 만들었을까? 성경을 주신 까닭도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하신다고 기록해 주셨다(요일5: 13절 참고).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930살보다 아니 지금까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열매를 먹고 정녕 죽어 버렸다. 감히 신과의 언약을 져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신은 사람을 떠나셨고 저들은 신을 배도한 사실도, 버림받은 줄도 
몰랐다. 노아도, 모세도 언약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솔로몬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앗수르와 바베론에 의해 멸망당하였다. 


이사야서에 예언하신 아들 예수님도 팝박받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 유월절 밤 
새 언약을 하시고 돌아가셨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새 언약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지키고 있을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하셨는데 십자가의 
죽음만 애도하는 성찬의 의미는 무엇일까? 

정안수를 떠놓고 우리자녀들의 복을 기원하던 기복과 무엇이 다를까? 
盲神(맹신)의 틀을 부수고 나와야 한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일까? 등잔밑이 어두워서야 제대로 된 빛이라 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성경의 성구를 암송하며 하나님과 예수님께 감사한 마음이 우러난다면 
자신이 참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확인 해봐야 한다. 자신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대상이 사단마귀라면 정신을 차리려나?





맹신도, 기복도 신앙이 아니라면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자신이 어떤 죽음을 
맞이해야 좋을지 고민따위는 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천국도, 영생도, 이 땅의 성경에 약속한 목자를 만나지 않으면 유황불못으로 
향하는 지름길에 서서 방황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신은 보이지 않는 영으로 계신다. 그러므로 택하여 안수하신(계1: 17절 참고) 목자가 
필요하다. 대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어렵다고. 난해하다고 
책장을 덮었던 성도님이 계시다면 아래 배너를 클릭하시고 궁금증을 해결하며 
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누리자. 아멘!







2018년 4월 17일 화요일

죽음을 피할 방법은 있을까?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하루에 죽어가는 사망자수는 약700명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나하고는 거리가 먼듯 살아들 갑니다. 삶의 즐겁고 안일한 달달함만을 
추구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누군가의 부고를 접하면 경건해 지지만 여운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을 창설하시고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낙원을 지키고 다스리라 하셨지만 약속을 져버린 아담의 
범죄는 사망이라는 죄의 굴레를 벗어 버리지 못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당연시 여기게 되었습니다. 







세가지 거짓말 중에 한가지가 죽고 싶다는 것이랬죠?
신과 함께 낙원에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며 살 수 있다면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요? 유감스럽지만 입으로는 하나님, 예수님을 믿노라 말들은 잘하지만 
정작에 유월절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언약을 모릅니다. 구약의 
유월절이 있었다면 초림의 유월도, 중요한 재림의 유월절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약의 종합편인 요한 계시록을 알지 못하면 구원도 천국도 소망할 수 없습니다. 
온전한 신앙을 하고 싶으신지요? 신앙을 농담같이 여기는 사람은 신앙인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유월의 참 의미를 깨달아 지키는자의 복에 참예하기를 
기도합니다. 사망도 고통도 곡함도 아픈 것도 없는 낙원에서 살 수 있다면 죽음을 
들여다 보시겠습니까?





2018년 4월 15일 일요일

죽어서 가는 천국은 과연 있을까?





죽어서 가는 천국은 어디일까?
일부 신앙인들은 죽으면 천국간다고 믿으며 신앙을 한다. 
그리고 천국을 다녀온 간증들도 넘쳐난다. 꽃들이 가득하고 금길이 
펼쳐진 천국! 

그러나 그곳에 빨리 가고 싶다는 사람들은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천국을 보고 왔다면 그곳에 가기를 소원해야 하지 않을까? 죽을 때까지 
인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초림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순교하고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셨는데, 
요즘의 신앙인들은 죽어서 가는 천국만 가는 동경하며 신앙한다고 
착각하며 무념무상이다.

과연 천국은 금길과 꽃들이 만발한 곳일까?
그러나 사람들이 보고 온 천국이 각각이다. 망상을 보고 온 것은 아닐까?
요한계시록 4장에는 요한이 하늘에 올라가 보고 온 천국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천국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곳이 아니다. 하늘에 열린 문으로 올라 갔는데 
보좌에 앉으신 이가 있고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같고 무지개가 있으며 그 
모양이 녹보석같더라고 한다. 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으며 보좌 앞에 일곱의 영이 있다라고 기록되어져 있다
(계4: 1~11참고).

이런 천국을 보고 온 사람은 유일무이하게 한 사람밖에 없다.
아름다운 것은 맞지만 꽃들도, 금길을 보고 온 것은 아니다. 확인하고 싶은가?
하나님이 계신 하늘을 보고 싶다면 진리의 말씀이 흘러 넘치는 새 하늘 새 땅 
신천신지로 나아오길 바란다. 04006을 클릭하시면 성경 6천 년 역사의 진실을 
밝히 알려 주고 있다.

상상의 천국이 아닌 실체를 확인하고 싶다면 망설이지도, 주저하지도 말고
용기를 내어 보자.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왜? 상상의 천국에 안주하려 
하는가? 죽어서 가는 천국은 지옥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게 하시고자 하는 
천국은  이 땅에 이루어 지고 있다. 확인 해 보자. 내 눈으로......












2018년 4월 12일 목요일

인생의 답을 찾고 싶다면?




연초록의 은행잎이 싱그러운 아침이다. 우리에게 또 하루를 허락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생각한다. 무작정 주실 때 더 달라고 바라고만 있지는 
않은지, 찾아 달라고 기다리고 계실 때 외면하고 있지나 않았는지.....

죽음과 고통이 사라지는 날을 위해 작은 준비를 하자는데 뭐가 그리도 
바쁘고 핑계들은 많은지 안타깝다. 사람의 상상력으로는 가히 짐작도 
하지 못하는 엄청난 복을 준비하시고 지켜 주기만을 6천 여 년을 
기다려오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한낱 미물이며 짐승에 지나지 않는 인간들이 웃고, 
울며 나대는 모습들이 얼마나 한심하실까? 영생은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름만 붙들고 아는 체만 하고들 
있으니 얼마나 애가 타실까? 

이제 예수님이름으로 오신 약속의 목자께서 진리를 전하고 계신다. 날로 
부패하고 피폐해져 가는 세상에서 낙원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면 자신의 
편견의 사고를 바꾸자. 






신천지는 이 땅의 천국이며 하나님, 예수님, 거룩한 
성이 임해 올 새 하늘 새 땅이다. 알아 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클릭 해 보자. ^^

04006!



2017년 1월 9일 월요일

부활절은 왜 삶은 계란을 먹는가?



사람들은 어머니의 모태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경주를 한다.
희,노,애,락의 연속선상에서 생,노,병,사의 줄다리기를 하며 운 좋게, 때론
안타깝게 인생의 그림을 채워 나간다.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당연한 듯 살다가 사망에 이른다.
그러나 죽어야 하는 이유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다. 인간의 죄 때문에 
사망은 사단의 전유물이 되었고, 우리에게 죽음은 당연시 되었던 것이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다. 그러나 아무도 누구도 부활의 영광을 누린 
사람은 없다. 유일하게 예수님외에는.....
부활!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이 부활이다.




어떻게 하면 다시 살 수 있을까?
초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그리고 다시오마 약속하시고 처소를 예비하려 떠나셨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부활절날 삶은 계란을 나눈다.

성경은 상식으로도 보면 안되며, 신앙도 상식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