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cheon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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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9일 토요일

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




신약에 약속된 약속의 목자를 아십니까? 구약 성경의 약속의 목자가 
예수님이셨듯이 오늘날 신약의 요한계시록이 이루어져 실체가 나타나는 
때에 이를 보고 듣고 증거하는 약속의 목자가 누구신지를 모른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신앙의 목적이 구원과 천국과 영생이라면 신약에 약속한 목자를 만나야 
합니다. 이단이라는 카더라 방송에 묶여 천국을, 구원을 포기할 것입니까? 
신앙인은 똑똑해져야 한다고 약속의 목자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도 하셨습니다. 비유로 
감추어진 천국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다면 다독도, 필사도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요즘세대들은 팩트를 좋아합니다. 

제일 중요한 성경의 진실을 알고자 노력합시다. 교회마당만 밟는다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을까요? 주여! 삼창을 한다고 
답하신다고 착각들은 하지 않으시겠지요. 참 하나님을 찾고 영접합시다. 






7일 째 안식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물속에 드시고자 사람의 
죄를 대속하고 계십니다. 신앙의 눈을 뜹시다. 밤은 우리를 미혹하기 
위한 방편일 뿐, 깨어나야 합니다. 

천국의 문이 닫히기 전에 밤의 미혹을 벗어납시다.아래 번호로 신청합시다. 천국으로 안내 할 것입니다.








2018년 9월 16일 일요일

나무의 수령보다 못한 사람의 나이?






은행나무의 수령은 천 년을 넘는다. 일명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할만큼
오랜 세월을 견딘다. 열매도 20여 년이 지나야 맺힌다고 한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기껏해야 일백세를 구가하고 있다.

저 옛날 태고에 아담은 구백 삼십살을 향수했다. 수명은 왜 줄어 들었을까?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만 무성하고 작은 벌레만 보아도 기겁을 하는
겁쟁이들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지만 않았어도 우리와 대화할 수도 있을텐데 순간의
미혹을, 욕심을, 약속을 망각한 결과는 오늘날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켜 놓고
말았다. 우리는 떠나간 생기를 덧입어야 한다. 사도바울도 말했다.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한다고,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씀하고 계신다. 하지만 아무도 믿으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어서 천국 가기만을 고대 할 뿐이다. 다양한 천국을 상상하기에 바쁘고
전통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른다. 천국은 임하여 온다고 알려 주시지만 문자에
매일 뿐, 캄캄한 밤에 취해 있다. 장수하기 위해 건강보조 식품을 사재기 하며,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해도 영원한 생명의 주인공은 될 수 없다.

마음의 문을 열고 주를 영접하자. 밝히 열어 들려 주고 계시지 않는가!
생명수 샘을 만나 끊임없이 솟아나는 영생수 샘물을 맘껏 들이키자. 일음연수가
태고이후 초락도의 진미를 맛보게 할 것이다.


2018년 9월 10일 월요일

부패한 기독교는 다시 나야 한다.




신앙인의 근본도 모르고  입으로만 떠드는 부패한 기독교계의 비리를 
우리는 심심찮게 접한다. 부끄러워 할 줄도, 개선의 여지는 더 더욱 없는 
오늘날 신앙인의 안타까운 현실이 참담할 뿐이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퇴폐는 멸망의 수렁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회개의 
기회가 있을 때 정신 차리자. 일장춘몽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2018년 9월 7일 금요일

인터넷이 아이들을 키우는 시대!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을 인터넷에 의지해 다 키운다.  
정보의 옳고, 그름의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거의 신봉수준이다. 
우리도 아이들을 키웠는데 어떻게 키웠을까? 저렇지는 않았지싶은데 
그때는 인터넷이 없어서 그랬을까? 

아무튼 어머니들이 편할 때가 많다. 거의 물어보지를 않으니 말이다. 
요즘 신앙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싶다. 믿지 못해 의심하고 따지고 또 
질문하고 인터넷에 떠도는 카더라는 잘도 믿는 것이 닮아 있다. 






진리는 하나라고 말하면서 정작에 진리의 실체는 모른다.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의 동물에게 의지하며 제사를 드리고 형상화한 이미지에 
열광하고 곳곳에 전시하며 우상시한다. 내 속의 알지못하는 공허를 
채우기위해 뭔가를 만들었을까?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하며 말이다. 

토욜이면 주일날 예배말씀을 준비하시는 목회자의 모습도 클로즈업된다.
말씀은 약속한 목자를 만나 그에게서 보고 들은 것을 듣고 알고 깨달아 
믿어야 한다. 이단이라며 치부하지 말고 말씀앞으로 나와야 한다. 






종교가 하나가 되어야 하지않겠는가?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자신이 
속한 교단이 전통인지 정통인지 구분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은 땅의 것만 볼 수 있다. 하늘문화를 알아야 한다. 6천 여 년을 
역사해 오신 하나님의 재창조의 비밀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베뢰아 사람처럼 간절함으로 날마다 성경을 상고해야 하지 않겠는가?
감추었던 만나의 비밀이 밝히 열려지는 때에 부지런해야 하지 않겠는가? 
문밖에서 기다리시는 주를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는 하지 말자. 아멘!




2018년 9월 5일 수요일

일제 강점기 시절 기독교계 신사참배의 그 진위를 알아본다.





 신사참배의 상황을 잘도 설명해 주는 기사이다. 신앙을 한다는 
목회자들의 실상을 소상히 밝혀주고 있다. 짜여진 각본에 따른 
신사참배의 결의는 기독교계의 신앙의 양심은 실종됨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회개를 한다고 돌이킬수 있을까?

이 신사참배의 주역들은 기독교계 그 시대의 실세들이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해 보자.


http://bit.ly/2Q3R4c9 출처: 국민일보

2018년 9월 4일 화요일

말씀의 무지의 옷은 언제 벗으려나?




얼마전까지만 해도 뉴스에서는 비가 온다가 아니고 비가 오신다는 
표현을 한 것을 기억한다. 왜 오신다고 할까?를 궁금해 한 적이 있었다. 
모 시인 제목을 본 딴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하늘의 문이 열린것 같이  퍼 붓는다. 복된 비를 억수같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같이 말이다. 성경을 몇십독 한다고, 해가 바뀌면 필사를 
작정한다고 신앙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같이 생각하는 오늘날 맹신의 
모습은 언제쯤 무지의 옷을 벗으려나? 

사람의 표현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고 하셨다.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 성전이라는 간판을 읽으며 
지나는 행인이 말한다. 저런교회는 믿을 수가 없댄다. 무엇을, 왜? 실소를 
금치 못한다. 이 땅의 천국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그대야말로 바보 천치다. 

세인하지라 하셨다. 하늘의 뜻을 어찌 감당할 수 있으랴~ 만물의 소성을 
뜻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우리는 이뤄드려야 한다. 저 바보같은 밤에 
갇혀 사는 심령을 살려야 한다. 그러나 지독하게도 말도 안 듣고 고집과 
아집은 삼겹줄 같이 질기기만 하다. 







돌이켜야 할 시대는 밤에 취해 방황한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고 나오라고 하신다. 칼빈의 예정론은 
창세전부터 구원받을 사람과 받지못할 사람이 정해져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
래서 그들은 구원을 받았을까? 

하나님의 뜻도, 계획도, 목적도 모르는 사람의 생각이 신앙의 밤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대상이 정해져있다면 실명이 거론이 되어야 않겠나? 
오늘날 한기총의 주축이 되는 장로교에 말씀이 흘러 나오는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밤에서 깨어나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 한다.
아무 준비없이? 죄송하지만 자격요건이 있다.
하나님의 씨로 거듭나 추수되어야 하고 인맞아 12지파에 소속되어야 하며
계시록을 가감하지 말아야 하며 생명책에 녹명되어야 한다.
들어 보셨나요?





2018년 9월 1일 토요일

기독교 신앙은 성경대로 해야 한다.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는 영원한 생명의 복을 
강건너 불 구경하듯 무심코 놓칠 수 있다. 약 2천 년 전부터 줄곧 기회를 
주시며 지금은 그 수혜자를 모집 중이다.

신약 곧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성취되어 나타난 실상을 믿지 않으면 
자신은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다.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라 시작과 끝이라고 하셨다.

성경대로 이루시고 성경대로 십자가 지신 예수님께서 처소를 마련하시고 
이 땅에 하나님과 드시려 준비중이시다. 성경을 소설책처럼 읽어 버리면 
자신은 구원과 천국과 영생을 소유할 수 있을까?






요한계시록에는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약속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약속의 말씀을 아는가?
신앙인이라면 알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밤에 취해 자는 자들에게 
이 엄청난 복을 주시겠는가?

지금은 봉해졌던 비유가 밝히 열려 보이는 때에 살고 있다. 구름타고 
나팔 불며 재림하시는 주를 영접해야 하지 않겠는가? 신앙은 사실이며 
현실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시대에 살아 호흡함이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지 
경험해 보고 싶지 않은가?

이 기적같은 복을 나누고자 하여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외면하고 있다.
땅에 것만을 바라며 하늘의 신성함을 도외시하며 비방만 하고 있다.
책에 기록된대로 심판하신다고 하셨다.

어떤 준비를 할 것인가? 죽어서 지옥을 갈 것인가? 살아 천국에 
입성 할 것인지는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