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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2일 화요일

복 받을 빛을 영접하자!



출근길은 갑갑함이 뛰쳐 나올만큼 정체다. 섰다 가다를 수없이 반복한다. 
버스전용차로가 그립다. 눈감은 모시장후보의 플랭카드는 오늘따라 더 슬퍼 
보이고 왜 저런 이미지를 선택했는지 무단히 궁금해 진다. 

시정은 눈을 크게 뜨고 살펴도 부족할텐데 깊은 뜻이라도 있을까? 볼때마다 
의아한 건 시선 집중을 노린 고단수 유세방편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눈을 감은 
것이다.  실눈을 떴을까? 후줄근하게 내리는 비 탓도 있으리라 ㅎㅎㅎ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이렇게 혼탁하지도, 부패하지도 않은 자연 그대로의 청정지역이지 않았을까? 
사망은 단어조차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고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도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욕심도, 교만도, 명예도, 권세도 모르고 살았을 것을, 귀가 얇은 
하와의 미혹을 동조한 결과물은 악이 판치는 암흑의 세상이 돼 버렸다.







많은 선지자들의 입술을 통하여 예언하시고 한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도 부정한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이름만 믿는 그 자체로만 긍지와 자부심이 흘러 넘쳤고 
오늘날 예언이 성취되어 나타난 실상의 주인공마져 이단사이비로 비방하며 
신앙의 밤을 자랑하고 있다.

에덴동산의 회복은 육천 년 일해오신 하나님의 목적이며 새 나라 새 민족이 된 
성도들의 사명이다. 밤에서 구속하신 보혈의 공로를 헛되이 하면  안되지 않겠는가? 
상대를 폄하하며 비방만 한다면 정당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시험을 쳐서 누가 옳은가를 분별해 보자해도 깜깜 무소식이다. 자신이 없으면 
백기라도 들어야 마지막 양심고백이라도 될텐데 오리무중이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음을 지레 겁이라도 먹었나?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도 930년을 살았다. 빛의 밝힘에 실명할까봐 등불을 먼저 
예비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러나 그 등불마져 
사그라들고 이제 환한 빛이 찾아 왔다. 눈부셔 하지말고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자. 
영원한 생명의 피안으로 오라하지 않는가?

귀있는 자는 듣고 나아 올 줄 믿는다. 세상은 혼란과 피폐해진 늪으로 빠져들 때 
한줄기 빛을 찾아 속히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시정을 책임지겠노라 하면서 
눈감은 후보와 무엇이 다를까?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부족할텐데 깊은 잠에서 
깨어나자. 

하나님께서 예언하시고 이루신 실체를 알지 못한다면 눈을 떴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신앙을 한다면 올바르고 온전한 곳으로 나아가자. 새 나라 새 민족의 일원이 
되어 복 받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나?








2018년 6월 6일 수요일

신앙의 처음을 기억하며 자신의 신앙을 점검 하자!





신앙의 처음을 기억하라 하시며. 그리고 회복하라 하십니다.
성경의 궁금증을 해소하려 서점에서 답을 찾으려 했던 기억이 
아련해 오며, 신앙이 오랜 신실한 권사님께 질의도 해 보고, 교회의 
제자교육에도 참여 해 가며 나름 열심히 신앙하려 했던 시간이 자라 
구태의연한 마당만 밟는 초보의 얼뜨기 시절도 생각이 납니다.

그러나 그 작은 성의를 가상히 여기셨을까요? 이 시대 전무후무한 
계시말씀으로 양육하여 주시고 영원한 생명의 주인공 삼아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그 사랑을 점점 나태와 안일에 타협하며 앉은뱅이로 굳어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너무도 큰 복을 주심일까요? 빛을 보며 나아갈 때 수업한 것을 정서하며 
성구하나까지도 놓칠세라 새벽을 맞던 그 초심은 어디로 가고 마음만 원인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심한 나를 바라봅니다.






자신의 실수보다 남의 실수를 더 크게 보지는 않는지, 믿음이 옛날같지 
않아 열성이 식지는 않았는지, 하나님의 일을 등한시 하고 있지는 않은지, 
순종하라 하면 반박이나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만 의인이며 상대는 죄인이라 
생각하지나 않는지, 공평한 사랑은 있는지 살펴보아 낮아지라고 권고하고 
계십니다.

어린아이같이 낮아져야 하고 또 말씀과 기도가 없으면 미혹과 실족꺼리가 
된다고 하십니다. 핑계도 피할 곳도 없는 질책에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음을
부끄러워 합니다. 

이 땅의 천국백성이라는 자부심으로 교만하지는 않았는지, 짐짓 눈에 보이는 
미련함에 눈살 찌푸리며 뒷담화나 하지는 않았는지 회개와 반성할 것들이 
쌓여 있습니다.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다라는 핑계도 식상합니다. 소망하던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게 해 주신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은 
이유도 모르고 죽음과 짝하는 저 밤에 속한 심령을 살리는 방법은 전도밖에 
없음도 알면서 행동하지 않는 게으름을 오늘도 회개만 하다가 하루를 접습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실상을 확인하고도 사람의 시선으로만 판단하는 오류에 
편승하여 참을 제대로 깨닫지 못함을 회개합니다. 언제쯤 장성한 자의 
반열에 서서 부끄럼없는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새 나라 새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만족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 나라 완성을 위해 일하게 하시며 더 이상 널부러져 있게 
마옵시며 긴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두렵고 떨림으로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말씀에 의지하며 길가의 새들에게 빼앗기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전한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명감당을 생명같이 생각케 하여 
주시옵소서! 어리석은 그 옛날을 돌이키지 않게 하옵시며 재창조의 시대에 
걸맞는 똑똑한 신앙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순교의 정신을 본 받을 수 있도록 강권하여 주시옵소서! 무늬만 거룩한 신앙을 
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대에 획기적인 변화의 주인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똑똑한 신앙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낮아질 것도 없는 어린아이같은 신앙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마지막 나팔은 어디에서 불려지고 있는가?



무지외반 수술을 앞둔 친구의 끝간데 없는 걱정을 덜어 주고 싶은데 
말뿐인 위로가 전부이다. 내가 아파보지 않으면 수술의 두려움과 불안과 
긴장은 친구만큼은 느낄 수가 없다.
뼈를 갂아내는데 어떻게 담담할 수 있냐고 토로한다. 맞는 말이다.
죽어서 가는 천국은 당연하고, 뼈를 깎는 아픔은 현실이다. 

아담의 범죄로 사망이 공중권세를 잡고 활개를 쳤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4차산업, 인문학, 힐링, 레져등 많은 세상의 문화는 사망으로 나아가는 것을 
당연함으로 세뇌시켜 놓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깊이 존재하기에 
뭔가를 갈망하며 분주하기만 하다. 참을 만나지 못한 안타까움이 
손짓하며 불러도 손사래만 친다.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는 존재는 누구일까? 모든 사람을 흑암한 가운데 빠뜨린 
존재는 누구일까?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이라는 곳은 어디일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아버지나라 천국을 볼 수 없다고 하셨는데 믿으면 무조건 천국인 
결론은 누가 단정지어 놓고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짝퉁이 판치는 세상에서 
참은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범죄로 떠나가신 이 땅을 회복하시고 임하시길 
원하시며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둔한 자의 심령을 두드리며 
깨어나라 하신다. 언제까지 허황된 땅의 문화에 젖어 살 것인가? 

마지막 나팔에 홀연히 변화 받으려면 어디에서 나팔이 불려지고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때가 가까울수록 권면의 말을 수용하고 마음의 
완악을 제하자. 멸망의 길로 접어 들기전에 말이다. 





니고데모도 천국을 보고자 예수님앞으로 밤에 찾아 왔다. 그러나 
천국은 때가 오기전까지는 비유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소망은 누구나 꿈꿀 수 있다. 그러나 소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클릭한 길을 따라 용기내어 걸어보자. 두려움이 경이로움을 
만날것이다. 04006번으로 신청하시고 마지막 나팔이 불려지는 
곳을 찾아가자!










2017년 5월 24일 수요일

처음 잃은 초상은 무엇이며, 둘째 사망은 무엇인가?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했다. 우리는 초상이 났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 가셨다라고도 한다. 곧 처음 잃은 것도, 돌아 갈 곳도 
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은 당신을 만물속에 감추어 두시고 구하고 찾기를 
원하고 계신다. 죄가 관영한 세상을 새롭게 회복하시려 하신다. 아담은 
범죄 했지만 930살을 향수했다. 그러나 지금은 100세 시대라고 모두가 
바쁘다. 건강챙기랴, 노후준비 하랴 두루두루 쉴틈이 없다. 

누군가는 육체를 벗어 초상이 났는데 영원히 고통 받는 둘째 사망의 해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신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 역사하신다. 알파와 오메가라 하지 
않으셨는가? 예언하시고 그 약속대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시작과 끝, 처음과 나중! 

때가 가까우니 이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하신다. 왤까?
누군가는 이 땅의 천국완성을 두려워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믿으려하지 
않는다. 혹자는 신을 부정한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말은 우연히 
생겨난 말일까? 

죽음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죽어서 천국은 가고 싶어 한다.
인간은 이기의 극치의 산물이다. 배려도, 인내도 찾아 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신은 무한하기에, 사랑의 실체이기 때문에 무조건 다 주실 것이라고 
단정 짓고, 무조건 기도하라 한다. 아주 구체적인 기도를 하라고도 한다. 

우리는 어떤 신앙을 해야 할까? 구습에 매여 맹신을 할 것인지, 때가 되어
알려 주시는 계시된 신앙을 해야 할 것인지는 자신이 택하여야 한다.

이제 밤에서 벗어나자. 토끼가 새벽에 세수 하러 왔다가 물만 마시고 가는
알량한 신앙은 하지 말자. 모르면 인정하고 생명수 샘을 찾아 나오면 된다.
참 하나님을 믿는다면 말이다.

오늘 누군가의 비보는 슬프다. 그러나 초상으로 끝나는 사망이 아니라
둘째사망의 해를 벗는 지혜를 구하자. 그 답은 성경에 나와 있다.
내가 먼저 복을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의 눈치 볼 시간이 없다.
서두르자!








2017년 5월 22일 월요일

우리 목사님의 말씀은 자신을 천국으로 인도할까?



윈도에 민머리 동자승이 참 귀엽다. 저렇게 천진 난만할 수가 없다. 
보는 사람도 청정해 지는 느낌이다. 복잡 다단한 세상 속에 소소한 힐링을 
할 수 있음도 감사하다. 

거창하게 입으로만  은혜를 운운하면서 정작에 해야 할 일상적인 일도 안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승복 입은 동자승이 자기 몫을 다 하고 있는것 같다.

절에는 왜 가냐고 물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간섭하는 사람이 없어 좋다라고 한다. 
그러면 교회 다니는 사람은 너무 적극적이어서 부담을 느끼는 걸까?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 거부감을 부를 수는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때를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살아서 천국을 본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도대체 믿을 수 없는 
것일까? 육하원칙에 맞는 이치도 못 믿는다면 어떤 것을 신뢰 한다는 말일까? 

우리 목사님의 말씀이 참 좋다라고 아직도 믿고 계시다면 다시 오실 재림의 주는 
맞기가 힘들 수도 있다. 보지 않고 믿는 믿음도 복있다 하셨는데, 눈으로 확인하고 
만진바 되었으니 두 말할 나위도 없다. 

하나님의 역사는 회복으로 이루어 가신다. 만물도, 천국도 말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이루시기 전에 속히 동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