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오래 살고자 바라지만 영원히 살기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성경에 분명히 기록해 주셨고, 일점일획도 빠뜨리지 않고 다 이루신다 하셨는데 안 믿는다. 하나님을 믿노라 자부하는 신앙인은 정말 참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일까?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신 분은 예수님이셨다. 그렇다면 신약의 예언을 이루시는 약속한 목자도 알아야 하지 않겠나?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성경은 너무 깊게 알면 안되는 책으로만 치부하고 읽는것 조차도 영상이 대신하고 있으니 궁금할게 있을까?
날로 급감만하는 교인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정안수 떠 놓고 두 손모아 빌던 그 모습이 더 진정성이 있지 않을까? 참 신앙을 하고 싶다면 이제 그 자리를 뛰쳐 나와야 할 때이다. 천국이 이 땅에 나타났는데 하늘만 쳐다보며 죽어서나 가는 천국을 동경만 해서 되겠는가? 신천지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카더라의 지식으로 열변을 토하는 무지한 사고들이 안타깝다. 카더라의 지옥이 영벌의 앞잡이임을 깨달았을 때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이미 완성의 승전고를 울리고 있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온전한 믿음을 행하는 나실인이 되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고, 죽은 정승보다 살아 있는 개가 더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찌 되었던 사는 것이 답인것 같은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갑갑하고 낙심 될 때가 더 많은것 같습니다. 정초가 되니 점밭이 집을 많이 찾기도 하지만 과연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올 한해 나쁘다는 소리만 듣지 않아도 좋은 것 아닐까요? 이리도 여리고 나약한 인간의 생각은 날개만 달았지 날지 못하는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으니 말입니다.
오래 행복한 것을 원하십니까? 신앙인들의 소망은 천국이라면서 죽기는 싫어합니다. 아이러니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 하실 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으로 만든 천국은 정작에 가기는 싫은 것입니다. 천국 가기를 바라십니까? 그것도 이 땅에 이루어지는 천국 말입니다. 아래 배너를 클릭 하십시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세계를 체험하실 것입니다.
무지외반 수술을 앞둔 친구의 끝간데 없는 걱정을 덜어 주고 싶은데 말뿐인 위로가 전부이다. 내가 아파보지 않으면 수술의 두려움과 불안과 긴장은 친구만큼은 느낄 수가 없다. 뼈를 갂아내는데 어떻게 담담할 수 있냐고 토로한다. 맞는 말이다. 죽어서 가는 천국은 당연하고, 뼈를 깎는 아픔은 현실이다. 아담의 범죄로 사망이 공중권세를 잡고 활개를 쳤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4차산업, 인문학, 힐링, 레져등 많은 세상의 문화는 사망으로 나아가는 것을 당연함으로 세뇌시켜 놓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깊이 존재하기에 뭔가를 갈망하며 분주하기만 하다. 참을 만나지 못한 안타까움이 손짓하며 불러도 손사래만 친다.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는 존재는 누구일까? 모든 사람을 흑암한 가운데 빠뜨린 존재는 누구일까?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이라는 곳은 어디일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아버지나라 천국을 볼 수 없다고 하셨는데 믿으면 무조건 천국인 결론은 누가 단정지어 놓고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짝퉁이 판치는 세상에서 참은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범죄로 떠나가신 이 땅을 회복하시고 임하시길 원하시며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둔한 자의 심령을 두드리며 깨어나라 하신다. 언제까지 허황된 땅의 문화에 젖어 살 것인가? 마지막 나팔에 홀연히 변화 받으려면 어디에서 나팔이 불려지고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때가 가까울수록 권면의 말을 수용하고 마음의 완악을 제하자. 멸망의 길로 접어 들기전에 말이다.
니고데모도 천국을 보고자 예수님앞으로 밤에 찾아 왔다. 그러나 천국은 때가 오기전까지는 비유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소망은 누구나 꿈꿀 수 있다. 그러나 소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클릭한 길을 따라 용기내어 걸어보자. 두려움이 경이로움을 만날것이다. 04006번으로 신청하시고 마지막 나팔이 불려지는 곳을 찾아가자!
내일 일은 모르니 오늘을 잘 살아야 된다며 맞장구를 치는 아줌마 부대가 지나간다. 주변에 뭔가 일이 있었던것 같다. 입으로만 되뇌이는 습관 또는 한 말씀 한다는 것이다. 만물의 주인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돈으로 환산하여 값을 매겼다면 생각없이 여유롭게 쓸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공기, 빛, 중력이 없었다면 지구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
그러나 인생은 감사는 커녕 당연시 하며 오히려 변질의 기수가 되어 오염의 수준이 심각에 이르러도 마냥 한가롭다. 일선의 책임자들만 바쁘게 서류 작성하기에 급급하다. 열심히 축적한 부도 오늘 저녁 네 영혼을 찾으시는 창조주가 계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일락만을 추구하다 결국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망각한 체 제 각각의 모습으로 살고들 있다. 의학은 날로 발전하며, 건강의 열기는 하늘로 치솟고, 자신은 영원할 것만 같이 여유롭다.
영
어리석음(얼이 썩음)은 누구의 몫일까? 한 치 앞을 모르는 인간의 예지력이 어찌 감히 신을 흉내 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를 신이라고 하셨다. 신이 되고 싶은가? 성경을 다독한다고 신이 될 수 있을까? 아래의 배너를 클릭하면 천국과 신이 될 수 있는 행운의 문을 마주할 것이다. 들어가 보자. 엿보지 말고 용기를 내어 보자.
파릇 파릇한 잎들이 연록을 자랑이라도 하듯 앞 다투어 생명력을 뽐내며 뭇시선들을 즐기며 있다. 하루살이는 하루가, 메뚜기는 한 철이 전부인데 사람들은 백세를 외치며 각자의 인생의 그림을 채워 나간다. 하루 평균 사망자수는 63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아파서, 불의의 사고로 또는 스스로 택한 죽음등이 있다. 창조주의 계획은 신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기 때문에 사망을 작정하진 않으셨다. 그러면 인간들은 왜 태어나면서 생노병사의 노정을 동행해야 할까? 해결책을 찾지 못한 걸까? 아니면 거부할 수 없는 순리에 잘도 적응하는 걸까?
태초에 아담을 빚은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지키며 다스리라고 맡기셨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당부하셨지만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도했고, 그로 인해 사망이라는 이름이 권세를 누리기 시작했다. 시대마다 택한 사람들을 통해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악은 차고 넘쳐 관영함에 이르렀다. 구약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셨고, 처소를 예비하여 다시 오마 약속하신 신약의 주인공은 누구실까? 거부할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신의 역사는 보이지 않을 뿐 시간을 따라 성경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신다고 하셨다.
깃발은 이미 올랐고 휘날리며 있다. 찾는 자에게 복을 주시려고 말이다. 언제까지 도외시하며 수수방관 할수 있을까? 아득한 옛날, 신을 대적하고 가장하여 여태껏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이제 무저갱의 쓴맛을 느껴봐야 한다. 나팔을 불어 회개의 기회를 주시며 돌아 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계시지만 마지막 역사의 장이 마무리 되며, 하나님께서 청하여 씻음받은 푸른 싹들이 생명의 구원속으로 뿌릴 내리고 있다. 영원한 대속의 부활로 다져져 가고 있다.
신앙의 목적과 소망이 신기루를 보는 것이 아닌 실체를 보며 할렐루야를 외치며 있다. 계시록은 영혼 구원이 없고 모르면 모를수록 좋다고 설교를 하는 목사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단상을 차지하고 있는지 황당하다. 요한계시록 1장1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않는가? 예수님의 말씀은 몰라도 된다는 결론인데 도대체 목사라는 분은 예수팔아 장사하는 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 할 수 밖에 없다. 죄송하지만.....
몰라도 되는 책이라 봉해 두셨다고? ㅎㅎ 봄풀은 감상이라도, 눈을 즐겁게라도 해 주는데, 주의 종이라는 이름을 달고 창피한 줄 알았으면 좋겠다. 요한계시록은 신약의 종합편이라고 하시며 보고 들은 증인이 이것들을 증거하며 밝히 알려 주고 계신다. 확인해 보고 싶지 않은가? 요한계시록을 모르고 신앙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만물을 소생케하는 생명력은 창조주의 권한이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절대권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