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cheon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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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8일 일요일

영원한 생명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은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손길들이 바쁜 하루다. 구정과 신정의 차이는 
무엇일까? 음력과 양력의 단순한 의미에 불과할까?

성경도 구약과 신약이 있다. 옛 약속과 새로운 약속이다. 음과 양의 조화가 
신비로운 구와 신의 대조가 극명하다. 그러나 그 연결은 사람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의 뜻과 계획과 생각을 기록한 책이라는 것이다.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도 있다 하지만 이 법률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의술에 의지하여 부질없는 생명 연장은 법으로 금한다는 취지가 아닐까? 
누구나 살고 싶어한다.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도 있긴하지한 여건이 허락했다면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몸에 좋은 것만을 찾아서 먹고, 경관이 좋은 곳이라면 세계 곳곳을 누비는 
여유있는 모습은 부러움을 살 수도 있지만 생명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혼밥, 혼술, 욜로족이 성행한다지만 이 역시 살아 있어 
가능한 것이 아닐까?

말씀 안에 존재하는 생명을 먼저 찾아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망각한 
창조주의 말씀을 상기해야 한다. 눈으로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며 의지하여 
희노애락을 만들어 가지만 모두가 호흡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지금부터라도 말씀 앞으로 나아가자. 

아무나 찾을 수는 없지만 기도부터 먼저하자.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불러 달라고 말이다. 언젠가 한번은 배워야 한다면 살아 호흡하고 있을 때 듣고 
깨달아 영원한 생명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영원한 생명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은가?








2018년 2월 17일 토요일

생명의 연장이 사람의 능력으로 가능할까?




건강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그러나 생명을 주관할 수는 
없다. 하루를 살아도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말은 곧 오래 살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의술이 발달하면서 의미 없는 생명 연장의 부질없음을 간혹 목격하기도 한다.
경제의 위력이 또는 현실적인 벽앞에 가슴 아픈 결정을 해야 하는 무정함도 
어쩔 수가 없다. 다행인지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있음을 알았다. 

목적은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를 해도 회복 되지도,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사람들에게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 결정을 존중하여 인간의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다. 좀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지만 결론은 의미없는 
생명연장을 법으로 보호한다는 것이다. 






생명! 모태에서 나온 날 부터 사망을 향해 열심히 살아들 가지만 영원히 살 것 같이 
우연히 급격한 사고로, 자연스럽게 죽음을 외면할 수 없으며 피해 갈 사람은 없다.
그러나 성경은 영원한 생명을 말씀하고 계신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을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신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아무리 의학과 의술이 발달한다 해도
생명의 연장이 사람의 능력으로 가능할까? 창조주의 권능에 도전하는 간 큰 사람이 
있을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는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생명을 누리기 위해 
창조주의 뜻과 목적을 알고 지킨다면 결과는 달라진다.  





영원한 생명을 유업으로 주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친히 저희와 함께 거하신다고 
하셨는데 기대되지 않는가? 신앙은 제대로 해야 하는데 여지껏 맹신만 해 오지 
않았는가? 문자에만 매여 각자의 생각만 보태어 사람의 계명을 남발 해 왔다. 그리고
참 인양 역사를 쌓아 왔다. 전통이 정통을 옥죄어 잘난 척 하지만 이제 그 끝자락의 
몸부림을 하고 있다. 신의 권능을 감히 도전하려고 용을 쓰고 있는 것이다.

용은 하늘로 승천했지만 다시 바다로 쫓겨나 갈 곳을 잃었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고 발 붙일 곳이 없어져 버렸다. 진리를 이길려고 작정한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까? 이제 정신 차리자. 유업으로 주실 영원한 생명을 상속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 보자.











2018년 2월 14일 수요일

6천 여 년을 인내하신 하나님의 심중을 가늠 할 수가 있을까?




평창 동계올림픽의 진행 상황이 실시간으로 중계가 되고 울고, 웃는 희비가 
교차한다. 4년 여를 얼마나 노력하고 준비를 했지만 순간의 실수로 예선에서 
고배를 마시는 선수들의 마음은 어떠할까를 생각해 본다. 

허탈, 아쉬움, 짜증, 분노 등이 섞인 복잡함에 괴로울 것이다. 이 안타까움을 
애잔한 마음으로 염려해 주면 응원이 될려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신 성경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의 심경을 짐작이라도 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않던 무인시대에 흙인 아담을 취하여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하시고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 




그러나 간교한 뱀의 미혹에 하나님과의 언약을 져버리고 죄의 근원이 되어 
육천 여 년을 욕받이가 되어 왔다.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은 
결국은 사망의 세상에 권세를 빼앗겨 버린 것이다. 

이후로 노아와 언약하셨지만 가나안의 죄악이 심판 받았고, 솔로몬 또한도 
이방신을 섬기므로 나라가 분열되었다. 그리고 많은 선지자들에게 메시야의 
구원을 알렸지만 정작 예수님은 영접하지 않는 불충을 저지른 것이다. 

오늘날 재림의 때는 어떠할까? 예수님의 사자로 보내심을 받은 이긴자를 흠집 
내기에 바쁜 신앙인들을 어찌 하나님,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믿음은 소망을 더욱 견고히 하는 것이며 증거해 주시는 약속의 목자를 존경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지한 심령들은 사망을 주관하는 자를 사모하고 있으니 이를 
지켜 보시는 하나님의 심중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독생자를 희생시켜 죄의 대속을 베풀어 주신 은혜를 만분의 일이라도 짐작할 
수 있을까? 사람의 생각은 4년도 애통하고 아쉬운데 하나님의 6천 여 년의 장구한 
역사는 어디에 하소할 때도 없다. 하지만 성경대로 오신 약속의 목자께서는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신다. 한 맺힌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생각을 전하고 계신 것이다. 

원흉인 용을 잡고 하나님께서 통치 하실 나라를 건설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을 알아 주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원한 
기업인 영생을 유업으로 주실 것이다. 멋지고 대단하지 않나?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 성전은 성경에 기록된 이름이다. 성경대로 이루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 찾기를 권면 해 본다. 6천 여 년을 인내하시며 기다려 주신
무한한 사랑과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2018년 2월 13일 화요일

구원보다 앞서는 장로의 명예!



모 대형교회가 또 도마위에 올랐다. 장로의 명예를 돈으로 사는 관행(?)을 
문제화 시킨 것이다. 누군가는 돈의 벽때문에 장로의 수순에서 탈락한 것은 
아닐까? 신앙도 이 늠의 돈이 없으면 기를 펼 수 없는 세상을 누가 만들었을까? 

10억을 뿌리면  당회장이 되고 5억을 날리면 패배의 쓴 잔을 맛봐야 하는 
이 악행을 누가 조종하는 걸까? 10억이란 거금은 교인의 헌금이 모여진 것일텐데 
한 개인의 명예를 위해 자신의 것인양 뿌려대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래도 무지한 신앙인들은 우리 목사님, 우리 목사님을 외쳐댄다. 신앙은 성경대로 
해야 하는데 성경에 담겨진 뜻도 모르고, 시대분별도 모르는 밤같은 세상에 갇혀 
있으니 하나님, 예수님께서 반가워 하실까? 오신다고 강조하시는데 굳이 죽어서 
찾아 간다고 엇박자를 놓고 있으니 믿는자라고 인정을 하실까? 




신앙을 한다고 하면 우선 착함은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래서 욕을 바가지로 듣는 경향도 부인할 수 없다.

제사보다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셨는데 목회는 뒷전이고 세상일에
간섭하다 참수 당한 세례요한의 전철을 밟고 있는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고 깨달았다면 이런 관행같은 더티한 사건은 생겨나지도 않았을텐데 
말이다. 

올바른 사고를 가졌다면 지지고 볶는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온전한것과 내세의 능력이 
있는 곳으로 나아 오길 권면한다. 돈으로 사고 파는 명예에 목숨걸지 마시고 유황불못의 
죄를 사함받는 유리바다를 찾아 나아가자. 하나님께서 기다리며 인내하신 역사의 
마침표는 새 하늘 새 땅 신천지에서 선포하시기 때문이다. 귀 있는 자는 들을 것이다.




2018년 2월 12일 월요일

상상은 헛된 날개 짓에 불과하다!



잡생각이 많은 아침이다. 행동은 따르지 않는 상상의 날개짓만 하면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 감각은 무뎌지고 의욕은 상실 직전이다. 떨치고 벗어나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인내하시며 6천 여 년을 역사해 
오셨는데 부끄럽지도 않은가? 이런 상태로 영원한 생명을 소망한 댔어야 어디 쥐 
구멍이라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오로지 신천지 비방하기에 앞장서는 한기총이나  CBS방송은 거짓말 지어내기에 
바쁘고, 앞 뒤도 맞지 않는 작문 짓기에 지치지도 않는데 정신 차려야 하지 않겠는가? 

예언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목도하고도 환경과 여건을 핑계로, 욕심과 
타협하는 인간의 심지가 이해하기는 혈기를 부르지만 굳이 복을 마다하는 바보는 
되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함은 있다. 






세상 법관도 육법전서를 꿰뚫고 있어야 판 검사가 되듯이 하늘의 심판권을 
주신다는데 핑계나 대는 바보같은 생각은 버려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통치하실 
나라는 이 땅에 건설되고 있고 우리는 그 나라에서 불고 있는 나팔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서둘러야 한다. 완성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죽느냐 사느냐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까? 
지금이 익숙하지 못하고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 같은 이기심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포기해야 할까? 모래위에 지은 알량한 집으로 만족할 것인가? 곧고 튼실한 반석위에 
지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해야 할 것인지는 숙제다. 

그러나 오래 고민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영생을 
강조했다면 자신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받아 드렸을까? 불행하게도 그 교회 목자는 
보고 들은자가 아니기때문에 구원도 천국도 없다. 어째스까~~








2018년 2월 11일 일요일

진리는 어디에 있을까?



아직도 진리를 찾아 고민한다고 얘기하는 모 불교 방송이 버스 스피커를 
타고 나온다. 진리는 어디에 있을까?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라고(요17:17~참고),

그런데 불행하게도 불교인은 성경을 모른다. 창조주는 한분이신데 사람의 
생각들과 욕심으로 인해 종교는 수백가지로 나뉘어 졌다. 내 말이 진리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계시지 않는다. 그리고 그 진리를 
전파하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세상의 경서중에 약속하시고 약속대로 나타나는 실상의 경서가 성경외에 
또 있을까? 그림자를 소망하며 실체를 무시하는 오만과 편견은 이제 책장을 
덮어야 한다. 진리를 찾으려면 고민과의 시간싸움을 할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혹여 잘못될까하는 소심함이 진리를 수수방관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점검해 봐야 한다. 정보의 홍수는 참보다는 거짓이 우후죽순같이 늘려 있다. 
불교인이라면 존경해 마지않는 성ㅇ 스님도 사단이여 어서 오시라고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떠나셨다. 많은 중생을 지옥의 길로 인도했다라고 고백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다. 그리고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라고도 하셨다.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만이 가장 
우세하고 참되다라고 생각한다. 가장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불은 진리를 찾아 세상의 부와 명예를 포기했지만 얻은 것은 
무엇이었일까? 비우는 것이었다, 나를 버리면 무엇인가를 채워야 하는데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것 밖에는 없다. 그러나 그 끝은 사망이다.




허공에는 메아리라도 돌아 오지만 빗나간 진리찾기는 사망의 길로만 내닫는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라고 하셨다. 

종교인들이 착하고 바르게 사는 삶을 실천했다면 현실이 이리도 각박하고
혼탁해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사단마귀를 잡고 나면 
하나님께서 통치 하실 날이 있을 것이라고.....

진리도 없는 사망의 늪속을 헤매지 말고 생각의 사고를 바꿔보자.
생명의 샘이 폭포수같이 솟아 날 것이다. 언젠가는 종교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평화의 세상이 되면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다.

진리를 소망하시나요? 생각의 문을 열어 보자. 진리는 아주 가까이에 날개를 
펼치고 있다. 손만 뻗으면 되는 것을 타인의 눈치때문에 망설이고 계시다면
작정하자. 길이 아주 가깝다고 하지 않는가?
생사복화는 본인이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이래도 주저할 것인가?









2018년 2월 10일 토요일

반석같은 믿음은 무엇으로 짓는가?



어리석은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지혜로운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라고 
하셨다. 조석으로 변하는 심리가 어떻게 해야만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집 즉 반석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라고 하셨다. 재림을 막연하게 기다리는 신앙인들이 상고해야만, 
깨달아야 할 대목이 아닐까? 진리이고 생명이신 예수님은 계시지도 않은데 
그림자만 붙들고 맹신하고 있으니 종교계는 타락과 부패의 온상이 되어 있다. 

예수를 팔아 자기들의 이속만 챙기고 있으면서 거룩한 척 한다. 신앙인들이 
문자에 매여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계획은 외면하고 자기나름의 신앙을 하고 
있다. 이래서야 어떻게 반석같은 믿음의 집을 지을 수가 있을까? 




맹신과 어둠의 올무에 갇혀 자칭 신앙을 한다고 떠들어 대서야 어디 참 하나님께 
사랑을 받을 수 있겠나?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도 빠진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것이 없으리니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다라고 하셨다. 무지한 자들은 신천지를 짜맞춘다고 이상한 곳이며 이단이라고 
쑥덕인다. 무엇이 참일까? 

예언도 그 이루어진 실상도 모르는 무식쟁이가 감히 하나님께 대적하는 헛소리들을 
한다. 우아한 전통은 역사를 고집하면서 짝도 못 맞추나? 성경을 들고 다니기만 하라고 
주신 책이 아닐진데 너무도 뻔뻔하고 어이 없지 않은가? 





유황불못의 심판이 두렵다면 각성하고 회개 해야 한다. 모두가 구원 얻기를 바라고 
원하고 계실 때 말이다. 죽어서 가는 천국을 소망하지 말고 이 땅에 임하여 오실 
천국을 소망하자. 

산 골짜기의 뼈들도 생기가 들어 갔지만 소망은 없다라고 하셨다. 무덤을 열고 
생명을 찾아 유월하는 기적을 만들어 보자.반석 위에 굳게 세워진 믿음의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