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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9일 일요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자.




더위가 한 풀꺾인 아침이 싱그럽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듯이 
성경의 순리또한도 창조주의 뜻안에서 이루어가고 있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주체를 모르고 자신만은 예외일것만 같은 착각속에서 살아들 간다. 

누군가가 얘기한다. 자기는 비우며 살기를 원하며 노력한다고 했다. 
비우고 나면 무엇을 채울거냐고 물었다. 답을 못한다. 비우고 나서 생각한다고? 
과연 비울 수 있을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물과 성령은 무엇일까? 내가 마시는 생수회사의 물일까? 이미 지나간 
마가다락방의 그 성령일까? 우리는 때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시대를 모르고 신앙을 한다면 맹신의 늪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똑똑한 신앙인이 되자고 약속의 목자께서는 강조하신다. 






성경을 통달하자. 어떻게하면 깨달을 수 있을까? 아래배너를 클릭하자!  
모태신앙이라고 은근자부하면서 지옥을 향하여 열심히 가는 줄도 모른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예수님께서는 밤에 도적같이, 구름타고 나팔불며 오신다는데 창공만 
바라보며 있다면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은 비사, 비유가 아닌 
밝히 얼굴과 얼굴을 보는 때임을 알아야 한다. 

들려주고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천국과 구원과 영생을 소망한다면 
클릭하는 수고는 해야 한다. 그리고 두드리고 찾아야 한다. 
천복을 소유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2018년 8월 7일 화요일

평화와 사랑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평화와 사랑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과하고 지나치고 막연하기때문에 
제대로 의식도 못한 채 시간이 흐르고 기회도 놓치고 마는 것을 안타까워 한다.

부모의 심중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하물며 생명을 허락하신 창조주의 
원대한 뜻을 얼마나,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한심한 목회자들은 신천지예수교회를 우습게 여긴다. 
하나님께서 함께 동행하시는 목자를 인신공격이나 해대고, 여차하면 꼬투리나 
잡아 흠집내기에 바쁘다. 




한기총의 교인수는 급감하고 있다. 원인규명은 커녕 자신들의 입신만을 위해 
이간질을 해대지만 신천지예수교회의 성도수는 증가하고 있다. 왤까?

신앙의 궁금증은 물론이고 천국자녀로 양육해 주는 곳이기때문이다. 신앙의 
목적이 천국과 영생이라면 이치에 맞고 신빙성이 있는 곳에서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연의 변화도 창조주의 역사도 징조가 나타난다. 예민한 자만이 감지할 수 있다.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어느 곳을 선택할 것인가?

http://cafe.daum.net/scjschool/E3qZ/1042:
하나님의 계명 평화와 사랑과 믿음

2018년 8월 3일 금요일

사람은 영원히 살 존재로 창조하셨다.



어르신들이 말씀하신다. 자는 잠에 가고 싶다고.....
죽음의 모습이 복이 되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강연도 있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는 사람도 생겨난다. 

창조주께서는 사람들을 늙고, 병들고, 죽게 만들었을까? 성경을 주신 까닭도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하신다고 기록해 주셨다(요일5: 13절 참고).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930살보다 아니 지금까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열매를 먹고 정녕 죽어 버렸다. 감히 신과의 언약을 져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신은 사람을 떠나셨고 저들은 신을 배도한 사실도, 버림받은 줄도 
몰랐다. 노아도, 모세도 언약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솔로몬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앗수르와 바베론에 의해 멸망당하였다. 


이사야서에 예언하신 아들 예수님도 팝박받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 유월절 밤 
새 언약을 하시고 돌아가셨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새 언약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지키고 있을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하셨는데 십자가의 
죽음만 애도하는 성찬의 의미는 무엇일까? 

정안수를 떠놓고 우리자녀들의 복을 기원하던 기복과 무엇이 다를까? 
盲神(맹신)의 틀을 부수고 나와야 한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일까? 등잔밑이 어두워서야 제대로 된 빛이라 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성경의 성구를 암송하며 하나님과 예수님께 감사한 마음이 우러난다면 
자신이 참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확인 해봐야 한다. 자신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대상이 사단마귀라면 정신을 차리려나?





맹신도, 기복도 신앙이 아니라면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자신이 어떤 죽음을 
맞이해야 좋을지 고민따위는 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천국도, 영생도, 이 땅의 성경에 약속한 목자를 만나지 않으면 유황불못으로 
향하는 지름길에 서서 방황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신은 보이지 않는 영으로 계신다. 그러므로 택하여 안수하신(계1: 17절 참고) 목자가 
필요하다. 대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어렵다고. 난해하다고 
책장을 덮었던 성도님이 계시다면 아래 배너를 클릭하시고 궁금증을 해결하며 
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누리자. 아멘!







2018년 7월 24일 화요일

세인하지(世人何知)!




세인하지(世人何知)란 말이 있다. 세상 사람이 어찌 알겠느냐는 뜻이다.  
한마디로 모른다는 말이다. 무엇을 모른단 말일까?
태고이후 성취되는 초락도를 모른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예언가 남사고의 예언대로 우주가 생긴 이래 처음있는 가장 
즐거운 말씀의 도를 모른다는 말이다. 최고 진리의 말씀을 모른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사말생초(死末生初) 신천지(新天地)라고 했다. 죽음이 끝나고 
새로운 재창조의 역사가 펼쳐지는 새 하늘 새 땅 신천지라고 예언했다. 
요한계시록의 예언과 너무도 닮아 있다는 것이 신비롭다. 






사람들은 예언은 잘도 믿는다. 하지만 이루어져 나타난 실체를 외면한다. 
무슨 심보일까? 천운의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모든 눈물을 
씻기시며 사망도 애통도 곡하는 것도 아픈것이 다시 없는 새 나라 
새 민족을 창조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다(요한계시록 21장 참고).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께서 부패한 세계를 끝내시며 새로운 재 창조의 
세상을 꾸며가고 계신다. 허황된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예언을 믿고 예언대로 나타난 실상을 보고 믿고 깨달아 천복을 소유하는 주
인공이 되자고 권면한다. 

인터넷 바다에 빠져있지 말고 구원의 손길을 붙잡자. 천국과 지옥은 자신의 
판단에 달려있다. 돈없이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외치고 계신다. 
아래 배너를 클릭하자. 이 땅의 천국으로 안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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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6일 화요일

흑암한 세상을 밝히는 빛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모자에 마스크에 안경까지 그리고 파라솔까지~ 짐작이 될까요?  
꼼짝없이 집안에서만 있어야 하는 타입일 것 같은데 왜 나왔을까요? 
호흡은 하고 있는지 궁금해 집니다. 아무리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다지만  근본은 망각하면서 오래 살고자 하는 마음만 가득한 
것은 아닐까요?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는 모르지만~ 취향은 아닙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뜻은 알지도 못하면서 누리고만 
살아들 가는 오늘날의 현실을 사단 마귀는 좋아라 할 것입니다. 
2100년에는 이 땅의 마지막 아이가 탄생할 것이라고 세상은 
연구하고 사실인양 보도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존재할 세상을 회복하시기에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역사하시는 창조주의 의중을 허황된 논리로만 강조하는 눈 감은 
세상은 언제쯤 정신을 차릴런지요?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세상에서도 
믿지 않는 곡과 마곡이 존재한다 했으니 두려운 일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미련하고 굼뜬 인생들인지.....

첫째날 혼돈하고 흑암한 세상을 밝히시고자 창조하신 빛의 실체를 
아시나요? 성경은 연구하고 다독한다고 깨달아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계시나요? 신학박사님들의 연구는 이럴것이다. 저럴것이다. 좀 더 
연구해 봐야 한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비 성경적인 해법인지 알지도 
못할 것입니다. 







자만과 교만에 취해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이나 하고 있으니 한심 
하달수 밖에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음을 경고합니다. 내 영혼의 
갈급함이 외면 당하고 메말라 가고 있음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언젠가는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의 승리를 기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잃어버린 에덴의 회복을 위하여 모든 여정을 동행하시는 하나님과
약속의 목자 이긴자의 걸음을 응원합니다. 빛의 행실을 닮아가는 
참 신앙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외형을 가꾼다고, 건강을 위해 챙기고 또 챙기는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찾아 생명수 강가로 나아 오시길 바랍니다. 
권면도 때가 있음을 아셨으면 합니다.










2018년 5월 28일 월요일

에덴의 회복을 마무리하고자 하시는 하나님!



에덴의 회복을 마무리하고자 하시는 하나님!
이제 그 회복의 역사를 마무리하려 하신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신은 이제 그 회복의 역사를 마무리하려 하신다.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넣어 영을 살리시고 생육, 번성, 
땅에 충만,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셨다. 

그러나 은혜도 모르는 사람아담은 창조주와의 언약을 지키지 못한 죄를 
범하고 말았다. 미혹하는 뱀의 술수에 모든 권세를 빼앗기고 말았다. 
죄와 함께 할 수 없는 신은 떠나 가시고 세상은 밤을 사랑하며 육천 여 년을 
자라왔다.




잃어버린 에덴의 고토를 회복하시려고 만물 속에 감추어 두시고 구하는 자를 
찾아 신 또한도 같은 시간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일하고 
계신다. 세상의 눈으로는 절대 알 수도 없는 경이로운 재 창조의 역사를 
끝내시려 하신다. 

시대마다 선지자들의 입술을 통하여 그리고 성경을 통하여 예언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려 주시는데도 세상은 밤에 취해 비몽사몽 
하고 있으니 가관이다. 그래도 박사라고 잘난 척 하고 있고, 목사라고 거룩하다. 
천지도 모르면서 어찌 분간을 하겠는가?

이 시대 약속의  목자께서는 때를 알고, 나 자신을 알아라고 하신다. 자신이 
밤을 동경하고 있는지 낮의 빛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는지 분별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신께서 Stop! 하시면 안식은 시작된다고 하셨다. 천국은 이 땅에 
임하고자 준비를 마쳤는데 미련한 죄인의 습성에 물들은 무지함이 이 땅의 
천국완성을 더디가게 하고 있다.





장성한 자의 신앙은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신께서 약속하신 
나라는 종말을 고하며 태초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태초의 새 나라 새 민족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신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싶지 않은가? 

깨어 나자. 썩어져 가는 구습에 염색된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창조의 빛이 되자.
꽁꽁얼어 붙은 마음의 빗장을 녹여 보자. 이제는 추수의 때다. 이한 낫으로 무르익은 
알곡을 거두러 가자. 신께서 동행하신다. 똑똑한 신앙을 하라고 하신다.
빛을 싫어하는 어둠이 되어 있지 않은지 점검하자.




2018년 4월 25일 수요일

그리스의 신탁 '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고, 영혼을 가진 네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를 자각해란 뜻이라고 한다. 나 자신은 얼마나 
나를 알고 있는지 답해 보자. 

내 속에 내가 있다면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할텐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나를 모른다고 말할 때가 많다. 왜일까? 내 속에 
또 다른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말일까? 

내 속에 있는 영혼의 주인공이 자신이 되어야 하는데 또 다른 존재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다면 두렵다. 그렇다면 이 존재는 무엇일까? 
내 속의 또 다른 나?






창조주께서 심령을 지으셨지만 아담의 범죄로 사람에게서 떠나가셨다. 
그렇다면 빈집이어야 하는데 내 맘을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들어와 
공존한다는 것이다. 누굴까? 

영혼이 선하면 그의 삶도 선하고 훌륭한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나는 선한가? 
선함은 착함의 의미와는 다를 것 같다. 이 의문의 답은 어디에서 찾을까?
TO be continued!

2018년 4월 6일 금요일

감정의 기복이 없어질 날이 온다고 한다.




감정의 기복이 없어질 날이 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망도 눈물도 애통도 
곡함도 아픈것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얼마나 좋을까? 하늘의 거룩한 성과 
하나님이 새하늘 새땅에 오신 그때에는 죽음과 고통이 없어진다고 하셨다. 

공상과학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누린다는 것이다. 
근거는 만물을 창조하신 주인께서 이 일들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소름끼치도록 확연히 드러났고 실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큰 그림의 완성을 위하여 열정을 사르는 주인공들이 
쉼 없이 뛰고 또 널리 전파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나의 소망을 위해서 말이다. 
믿기만 하면 가는 천국이 아닌 오는 천국을 맞이하기 위하여 분주한 시간들을 
채워 가고 또 본대로 들은대로 독려하고 계신다. 

진실을 왜곡하고 신의 역사를 훼방하는 자들도 존재하지만 그들도 성경대로 
사명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악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 
말이다. 그래도 어찌나 목은 곧고 자부심은 하늘을 찌르는지 가당찮다.







회개하지 않으면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다고 하셨는데 느낌은 전혀 없고 
안하무인이다. 대놓고 악의 축임을 공표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주의 거대한 
시나리오 속에 있으면서 혼자 잘난 척은 배가 부르다. 하나님의 눈에는 이들 
모두가 소경이며 귀머거리가 아닐까?

우리는 이 땅의 천국을 소망한다. 감정의 굴곡이 없는 평화를 원한다. 누구나 
외쳐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생각만으로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찾고 두드리고 
열어 주실 때를 깨달아 구원에 이르기를 기도한다.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해 창조하신 천사들을 맞이하길 바란다. 눈물 애통 사망이 
없는 무릉도원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2018년 3월 22일 목요일

하나님께서 주목하시는 신앙인은 누구일까?




춘분이 혹독한 눈보라에 갇혔다.
봄의 질주를 누군가는 잡고픈가 보다. 밤새 소리없이 눈이 내려 
풍경을 바꾸고 만개한 꽃잎은 상채기를 내며 새 잎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계절의 순환은 여지가 없고 우리의 몫은 감탄으로 남는다. 이 차디찬 풍경이 
사라지면 살랑대는 봄바람이 불 것이다. 그리고 아웅거리며 살아들 갈 것이다. 

어느듯 맞은 나이의 황혼을 느낄 때 쯤 통한의 노을을 감상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과의 이별을 무심히 준비할 것이다.




아담의 나이는 930세 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6천 년 전에는 팔, 구백살을 향수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껏 팔, 구십을 산다. 창조주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께서는 떠나가셨다. 그리고 사망의 세력인 사단마귀가 
주인공인양 행세하며 공중권세를 휘두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당연시 여기게 되었다. 

창조주께서는 사람을 어떤 모양으로 창조하셨을까?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 번성 충만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다. 즉 만물의 영장으로 빚어 주셨지만 사람의 모양은 어떻게 변질되었는가?




작은 미물에도 자지러지고 감지능력도 없다. 천국은 바로 지척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나팔을 불어 알리고 있지만 관심이 없다. 창조주의 관심은 어디에 있을까? 
성경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신앙인들을 주목하고 계실까? 

절대로 NO다. 아예 관심밖이다. 아버지나라 천국을 이 땅에 완성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약속의 목자를 따라 온전한 신앙을 듣고 믿고 지키는 신천지인들 외는 기억지 않으신다. 
사실여부는 직접 들어보고 판단하길 바란다.




2018년 3월 1일 목요일

자존감의 척도는 무엇일까요?



정신 건강의 척도를 자존감이라 부른답니다. 여러분의 정신은 건강하십니까? 
이별이 두려워 부질없는 만남을 지속하고,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해 불안해 하고, 
우울하고 공허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방황하는 자존감에 스크래치를 내고 
있지는 않은지, 겉치레에만 온 신경을 쏟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시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내주고, 영원할 것 같은 우정, 사랑에 금이 가고 우리는 
너무도 많은 상처를 주체할 수 없어 술로, 여행으로 위안을 받으려 하지만 또 새로운 
벽을 만나며 반복된 일상을 살아 가고 있습니다. 

창조주께서 흙을 취하여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된 사람과 함께 살고자 하셨는데 
그들은 뱀의 미혹에 옷을 벗고 말았습니다. 신과의 약속을 경홀이 여긴 결과는 사망이 
왕노릇하는 혼돈과 흑암의 세상을 초래하고 말았지만 창조하신 세계를 버려두지 
않으시려 인내하시고 역사해 오시며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고 보고 듣고 믿으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존감이 넘친 교만은 죄의 가속만 더할 뿐 창조주의 본연의 뜻을 망각하고 
자신들만의 생각속에 즐겨 있기를 바랄 뿐 마음만 원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도 
죄를 몰랐고, 죄 값은 영원한 유황 불못의 심판인 것도 몰랐습니다. 

밤같은 무지를 깨닫지 못하고 오늘을 사는 우리 또한도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종말에 우리는 어떤 자존감을 회복하고 무엇을 채워야 하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담은 무엇을 벗었음이 부끄러워 무화과 잎사귀로 치마를 해 입었는지, 하나님께서는 
왜 가죽 옷을 입혔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의 밤은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안다하는 박사나 목회자들이 문자에 매여
자신의 생각들로 연구하고 비진리로 신앙인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기때문입니다.
실추한 자존감을 회복합시다. 정신이 살아 생동하는 생기를 받읍시다. 말씀을 받은 
자들을 신이라 하셨습니다. 내 자존의 위상을 높혀 신이라 불리우는 왕같은 제사장이 
됩시다.





2018년 2월 20일 화요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



누구나 꽃길만 걷기를 원한다.
승승장구는 내 길일 것만 같은 기대감에 밤잠도 설쳐 본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만만찮음에 좌절하며 우울해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리라고 하셨다. 

창조주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괴리가 변화일까? 변질일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는데 그 시대의 종교인들이 
십자가에 돌아 가시게 했다. 과연 누구를 믿고 신앙 생활을 했단 말일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이었다. 
오늘날 재림의 때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께서 보내는 사자를 믿지 않는 것이 
그 증거이다. 성경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고 폄하하는 집단은 
창세기의 하와를 미혹한 뱀의 실체들이다. 육 천 년을 자랐으니 용이 되었다. 

물없는 광야를 주관한 용은 이미 잡혔다. 하나님의 통치 시대가 가까워 온다. 
사단의 농된 올무를 벗어 버리고 자유를 찾자. 진리는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무릇 지킬만한 마음을 다잡고 온전한 신앙을 하시길 기도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









2018년 2월 19일 월요일

말씀은 하나님, 말씀안에 생명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문명의 세계를 향해 확장되어 간다. 매장도 정해진 
상품도 없이 개개인의 의사표현이 거대한 기업을 양산한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산업의 혁명이다. 자산 규모가 수억, 수조를 홋가한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익숙하지 못한 문명의 기기에 서투른 기성세대가 어찌 큰 소리를 내며 세계를 
아우를 수가 있을까?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아날로그를 고집하면 꼰대가 돼 버릴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비가 내리고 싹이 튼다는 우수를 기점으로 신앙의 
점검 기회를 가져보면 어떨까? 




제 아무리 세상의 과학이 첨단을 달린다고 해도 풀 한 포기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젖이나 먹는 어린아이의 초보 신앙에서 단단한 식물을 먹을 줄 
아는 장성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거듭나 보자. 

다윗의 글에 오랜 후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예언하셨듯이 
그의 음성을 듣는 너희는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셨다. 오늘날은 재림의 때이다. 
강림하실 주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오시는 곳에 가서 기다려야 할 때이다. 
성경을 믿고 신앙을 한다면 때 분별을 잘 해야 한다.

무조건 믿기만하는 신앙은 종교를 만드신 창조주의 뜻은 아닐 것이다. 보여 주시지 
않고는 절대 행하심이 없으신 하나님! 예언하시고 성취하신 실상을 본 사람만이 
년 월 일 시를 알 것이다. 문자에 매여 이럴것이다 저렇지 않을까하는 엉터리 목자의 
설교에 미혹되지 말고 똑똑한 신앙인이 되자.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위에 굳게 서며 작은 산위에 뛰어나며 만방이 
모여드는 곳으로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초보에 매여 역사나 교훈에만 믿음을 맡기고 
있다면 깨어 나야 한다. 예언하시고 이루시는 실체를 보고 믿어야 하는 장성한 
신앙인의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신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도 하셨다. 우리는 어떤 신앙을 
해야 할까? 성경대로 오신 약속의 목자를 만나야 하고, 진리의 성읍을 찾아야 하며, 밝히 알려 주시는 계시의 말씀을 경청해야 할 때다. 

진리의 샘에서 맑은 생명수가 흘러 나오는 성전을 찾아 나아 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은 말씀이시고 말씀안에 생명이 있다. 경이롭지 않은가?







2018년 2월 18일 일요일

영원한 생명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은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손길들이 바쁜 하루다. 구정과 신정의 차이는 
무엇일까? 음력과 양력의 단순한 의미에 불과할까?

성경도 구약과 신약이 있다. 옛 약속과 새로운 약속이다. 음과 양의 조화가 
신비로운 구와 신의 대조가 극명하다. 그러나 그 연결은 사람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의 뜻과 계획과 생각을 기록한 책이라는 것이다.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도 있다 하지만 이 법률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의술에 의지하여 부질없는 생명 연장은 법으로 금한다는 취지가 아닐까? 
누구나 살고 싶어한다.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도 있긴하지한 여건이 허락했다면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몸에 좋은 것만을 찾아서 먹고, 경관이 좋은 곳이라면 세계 곳곳을 누비는 
여유있는 모습은 부러움을 살 수도 있지만 생명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혼밥, 혼술, 욜로족이 성행한다지만 이 역시 살아 있어 
가능한 것이 아닐까?

말씀 안에 존재하는 생명을 먼저 찾아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망각한 
창조주의 말씀을 상기해야 한다. 눈으로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며 의지하여 
희노애락을 만들어 가지만 모두가 호흡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지금부터라도 말씀 앞으로 나아가자. 

아무나 찾을 수는 없지만 기도부터 먼저하자.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불러 달라고 말이다. 언젠가 한번은 배워야 한다면 살아 호흡하고 있을 때 듣고 
깨달아 영원한 생명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영원한 생명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은가?








2018년 2월 6일 화요일

돈으로 생명을 바꿀 수 있을까?



돈이란 요물은 사람을 부하게도, 가난하게도 하지만 가치까지도 좌우지 한다. 
덕과 지식과 돈이 같이 간다면 금상첨화일지도 모르지만 흔치는 않은 일이다. 
졸부의 근성과 타락이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돈은 세상살이 모두를 
주관한다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생명의 주관은 돈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병철회장도 정주영회장도 생명을 돈으로 살 수 있었다면 죽었을까? 생명의 
연장을 위해서라면 모두를 바치지 않았을까? 




생명의 주관자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약속을 지키는 자에게 유업을 상속하신다 하셨으니 우리는 먼저 무엇부터 해야 
할까? 약속을 알아야하고 어떻게 지키는지 알아야 하지않겠는가? 언제까지 
문자에 매여 이단타령이나 하고 있으려나? 

성경은 현실이며 사실이며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으련만 
지금의 안전과 평안을 지속하려고만 하니 참 애닯다. 지진은, 화재는 겁나고 
하나님의 역사는 안중에도 없는 무지를 어떻게 해야 하나? 안타까운 마음에 
권면도, 모략도 해보지만 똥고집은 사망을 사모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멍청함을 
지켜볼 수 밖에 없다.






2017년 12월 28일 목요일

신이 살아 역사하심을 믿는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신은 살아 역사하신다.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성경의 약속대로 6천 여년의 노정이 순리대로 이루어져 
요한계시록이 실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계시록을 풀면 이단이다, 큰일난다, 절대 안된다라고 무식한 소리들을 
하지만 실체들이 존재하며 이치에 맞게 일점 일획도 변궤없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죄의 습성이 눈과 귀를 막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선의 본성을 악이 짓누르고, 미혹함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창조주의 각본대로 
세상은 돌고 돌아 끝맺음하려 하신다. 안식하고 싶으신 것이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같이 영생의 복을 허락하시며 임하고자 하신다. 




신의 나라는 사망도 애통도 아픔도 곡함도 없는 평화의 나라다. 궁금하지 않는가? 
하나님, 예수님을 애타게 부르짖다 죽어서 간 천국이 유황불못이라면 그때는 
후회 할 수도 없다. 이미 끝이니까.......

호흡하고 그나마 잘났다고 어깨에 힘 좀 쓸 때 호기심이라도 발동해 보자. 세상의 
일락만 쫓지 말고 창조주의 깊은 뜻을 찾아 나서자. 성경에는 미혹자들이 말하는 
상징수가 아닌 실제의 수가 있다. 

창조주께서 일일이 계수하시는 인맞은 자들의 수는 실 수다. 이렇게 명확하게 
밝히 드러나는 성경의 비밀을 캐어 보자. 보물지도는 멀리 있지 않다. 한번 
마음 먹으면 극락이 눈 앞에 보일 것이다. 마음의 구름을 제하고 빛나는 낮을 
체험해 보자. 기독교는 체험신앙이라고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직접 경험해 보자.






2017년 12월 14일 목요일

영원한 생명은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요?



장수의 비결을 아십니까?
어르신들의 단골 멘트가 하나 있습니다. "빨리 죽어야지" 하지만 진심일까요? 
아프면 병원부터 찾는 것이 사람입니다. 영원한 사랑을, 우정을 맹세하고 죽어도 
못잊는 추억을 만들고 다시 태어나도 만나고 싶고 등등.......

이 마음과 생각들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요? 창조주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했지만 성경이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인 줄도 몰랐고,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께로 나아오기를 
원치않으셨다 하셨습니다( 요5: 39~40참고). 




또한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도 일러 주셨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기만 하지 않으셨나요? 궁금하지도, 의문스럽지도 않은 
신앙인의 밤을 주관하는 구태의연이 낳은 결과는 천국은 믿기만 하면, 
죽어서 가는 줄로만 아는 무지한 단으로 묶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어 밝히 일러주는 약속한 목자의 출현과 하나님의 새나라가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낡은 구습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시대의 신앙을 
해야만 살아서 누리는 천국과 구원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물안 개구리의 시야에서 벗어 나야 합니다. 만국이 몰려와서 경배와 영광을 
올리는 자리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맹신의 늪에서 허우적대지 말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앗줄을 붙잡읍시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 하셨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라고 하십니다. 

당장의 안일을 위하여 멸망을 택하시렵니까? 아니면 당장은 힘들지만 
참 하나님을 알고 약속을 지키는 자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택하시겠습니까?
장수하고 싶으신가요?
창조주께서 주시는 생기를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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