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기복이 없어질 날이 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망도 눈물도 애통도 곡함도 아픈것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얼마나 좋을까? 하늘의 거룩한 성과 하나님이 새하늘 새땅에 오신 그때에는 죽음과 고통이 없어진다고 하셨다. 공상과학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누린다는 것이다. 근거는 만물을 창조하신 주인께서 이 일들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소름끼치도록 확연히 드러났고 실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큰 그림의 완성을 위하여 열정을 사르는 주인공들이 쉼 없이 뛰고 또 널리 전파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나의 소망을 위해서 말이다. 믿기만 하면 가는 천국이 아닌 오는 천국을 맞이하기 위하여 분주한 시간들을 채워 가고 또 본대로 들은대로 독려하고 계신다. 진실을 왜곡하고 신의 역사를 훼방하는 자들도 존재하지만 그들도 성경대로 사명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악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 말이다. 그래도 어찌나 목은 곧고 자부심은 하늘을 찌르는지 가당찮다.
회개하지 않으면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다고 하셨는데 느낌은 전혀 없고 안하무인이다. 대놓고 악의 축임을 공표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주의 거대한 시나리오 속에 있으면서 혼자 잘난 척은 배가 부르다. 하나님의 눈에는 이들 모두가 소경이며 귀머거리가 아닐까?
우리는 이 땅의 천국을 소망한다. 감정의 굴곡이 없는 평화를 원한다. 누구나 외쳐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생각만으로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찾고 두드리고 열어 주실 때를 깨달아 구원에 이르기를 기도한다.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해 창조하신 천사들을 맞이하길 바란다. 눈물 애통 사망이 없는 무릉도원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제주 4,3사건은 광복의 역사와 맞물리면서 선량한 제주 시민들을 무고하게 죽음으로 몰아간 암울한 피의 역사이다. 모 강사의 마지막 멘트가 인상적이다. 평화의 기념관에 백비가 있는데 "언젠가 이 비석에 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고 눈시울을 붉히던 강연이 인상 깊게 울림으로 다가온다. 진실은 날조되고 억울함은 거짓말에 파묻혀 사장이 되고 그 언젠가를 막연히 기다려야하는 사건들이 얼마나 많을까? 거짓이 참을 가장하고 판을 치고있는 종교계의 현실도 예외일 수가 없다.
기독교를 대표한다는 한기총, 그리고 돈의 노예가 되어 참을 갖은 모략과 비방에 혈안이 된 기독교 방송을 대표 한다는 CBS방송! 이제는 습성이 되어 양심도, 윤리도 망각한 한심함에 찌들어 있는 것 같다. 제주의 4, 3은 70여 년의 한이 스려 있지만 성경의 역사는 짧게는 2,000여 년을 묵혀 왔다. 수많은 선혈들의 핍박의 역사가 새로운 생명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지만 무지한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이 죄 값은 사망으로 줄줄이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양심을 저당잡힌 목회자라는 명분만 내세우며 아는 것은 오로지 돈밖에 모르는 강제개종목사!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흑암 구덩이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어느 상식이 있는 목사 분이 말씀하셨다. 강제개종목사는 목회자라고 할 수도 없다라고 말이다. 오늘 내리는 비에 벚꽃이 많이 날린다. 그리고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초록의 잎이 돋아 날 것이다. 홀연히 말이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이 흑암 했기때문에 새 나라를 창조하신다고 하셨다. 성경은 약속의 책이다. 예언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천국 보물설계도이다. 금, 은 보화를 원하신다면 하늘의 보고가 열린 새 하늘 새 땅을 찾기를 바란다.
일요일이면 모든 일을 제껴두고 교회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많다. 꽃놀이, 운동도 마다하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드리러 교회로 간다. 예배는 왜 드려야 할까? 믿기만하면 천국이고 구원이라면서 거룩한 모습으로 단장을 하며 엄숙하게 예를 다한다.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칠일을 부정하다고 해서일까? 아니면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하셨기에? 그런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있으며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시는데 때를 알고 지키고 있는지 묻고 싶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며 신앙인의 의무이다. 예배를 드림으로 세상의 때를 벗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깨끗해 지는 것이다. 생명수 말씀으로 씻어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천국에서 살기 위함이다. 주일이 복받는 이유는 예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데서나 십자가만 달려 있다고 하나님께서 같이 하실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사랑을 입고 아버지 영전에 나왔다는 마음과 하늘의 거룩한 영들과 하나되어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신앙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버지 하나님께서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실 때 "여기 있나이다" 해야 하지 않을까?
계절은 봄의 향연을 베풀고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목이 곧고 길다. 아스팔트를 비집고 나온 풀꽃도 제일 잘 나 보인다. 자연을 거스르고 살아 갈 수 있을까? 누군가는 주 기도문에 나오는 일용할 양식을 삼시 세끼라고 한다. 더 구체적인 것은 집, 핸드폰, 자동차 등등이 포함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정말일까? 출애굽한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던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구하라고 하신 일용할 양식은 무엇일까? 유명한 목사님께서 말한 좀더 구체적인 삼시세끼를 구하여야할까?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오늘날 신앙인들은 주문처럼 외우고 있다. 염불을 하듯이 뜻도 모른체 말이다. 주기도문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이다. 하늘에서 이루신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다. 하늘에서 이루신 것은 무엇이며 이 땅에 이루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뜻을 모르면 삼시세끼 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많은 교인들을 흑암에 가두어 지옥으로 인도하고 있다. 오늘날 목회자들의 자화상은 아닐까? 봉함되어 있었던 때는 안다하면 죄였지만 계시되어 실상이 나타나는 때는 모르면 죄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죄의 해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로 죄사함이 있다고 믿기만 하면 될까? 생명의 말씀으로 씻어 거듭나지 않으면 아버지나라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는데 생명의 샘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알지 못하니 맹신을 하고 도가 넘치니 광신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가면 밤이 온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낮도 밤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밤은 무엇일까? 자신이 알고 있는 말씀의 수준은 어디쯤에 있을까? 아직도 일용할 양식을 삼시 세끼로 구하고 있다면 아니 더 구체적으로 아뢰고 있다면 참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흠향하실까?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를 자격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몰라도 너무 모르면서 이웃을 비웃고 있다면 신앙인이라고 하면 안된다. 삼시세끼는 육의 배만 불릴 뿐, 영은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데 왜 깨닫지 못하는가?
세계 각국의 언론이 우리나라에서 자행되고 있는 강제개종을 집중 보도한다. 그러나 우리의 언론은 강건너 불구경 하듯 수수방관하던지 아니면 쉬쉬하고 있다.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겠다던 청와대의 청원 또한도 강제개종의 피해자들의 소리를 아예 묵살해 버린다. 무슨 민초의 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던 장담이 허공에 메아리로만 돌고 있고 세계가 주목하는 사안이 되고 말았는지 참담하다. 내 누이를, 아내를 죽음으로 몰고 간 개종을 사주하는 몰지각한 목자들의 비행을 언제까지 지켜만 볼것인가? 이제는 각성하고 자숙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리사욕에 눈멀어 가족을 종용하는 목회자들의 악행을 종교계가 앞서 말려야 하지 않겠는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치국가라고 강조만 하지말고 보호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개념을 상실한 개종목사의 파렴치를 언제까지 옹호 해 줄 수있을까? 강제개종을 보도한 세계의 언론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피해자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우리의 언론도 공정성과 윤리강령을 준수하는 수준높은 자성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외국의 언론이 대한민국의 주요 신문들에게 왜 이런 심각한 보도를 하지 않느냐고 질문한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지성과 인격으로 무장된 언론의 대표시라면 깊이 사고하고 생각해 보시기를 간곡히 기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