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을 몰라도 되는, 그래서 봉함 되었다라고 설교하시는 목사님의 변을 이해할 것도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하늘에 해를 입은 여자가 발 아래 달을,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쓰고 해산할 때가 되어 애써 부르짖는 여자가 있습니다. 또 이 여자가 낳은 아이를 삼키려는 용도 하늘에 버티고 있고 이 아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아이라고 합니다. 환타지 소설 같지 않습니까? 여자도, 용도, 남자아이도 의문 투성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상과 환상으로 본 요한계시록 12장의 장면입니다. 천상천하 아무도 이 책을 펼자가 없어 요한이 크게 울었던 요한계시록이 오늘날은 밝히 열려 아는 사람은 궁금함이 없는 언약의 실체가 나타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가면 다시 밤이 온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까지도 깨닫게 되는 신비를 경험하는 새 나라 새 민족이 급 부상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 가고 계절의 순환도 변함은 없지만 홀연히 이루어 지는 신의 나라 천국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때가 되어 실상으로 형체가 드러나지만 애써 포장하려는 악한 행위가 비선으로 몰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목숨이 경각에 이르면 어떤 행동들을 보일까요? 우리는 마지막 발악을 한다라고 표현을 합니다. 맞습니다. 현실에 보이는 종교계의 행태를 보면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단이 정통을 폄하, 비방하고 교인들의 심령을 다 무저갱의 입구로 안내하며 달콤한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천지분간도 못하는 무지에 갇혀 오로지 우리 목사님 말씀이 참 좋다라고들 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 목사님이 지옥의 사자이면 어쩌시렵니까?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듯 모든 것은 돌고 돌아 제 자리에, 처음의 것을 회복하려는 것은 순리입니다. 신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하셨듯이 태초를, 재 창조를 시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미련한 인간이 느끼지 못할 뿐, 그러나 하나님의 씨로 거듭나는, 인맞아 새천지를 이뤄가는 신약의 주인공들이 용과 싸워 이긴 남자아이의 든든한 지원군들이 되어 이 땅의 천국을 건설해갑니다. 어떻습니까? 동참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죄사함의 보혈이 자신에게도 미치며, 영원한 생명의 주인공이 됩시다. 굳이 지름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광야를 돌고 도는 죄의 길을 걷지 말고 가까이 아주 가까이에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천사들의 사랑을 전하는 새천지 인들이 많습니다. 거부하지만 말고 마음의 문을 엽시다. 천국의 문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클릭하십시오!
파릇 파릇한 잎들이 연록을 자랑이라도 하듯 앞 다투어 생명력을 뽐내며 뭇시선들을 즐기며 있다. 하루살이는 하루가, 메뚜기는 한 철이 전부인데 사람들은 백세를 외치며 각자의 인생의 그림을 채워 나간다. 하루 평균 사망자수는 63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아파서, 불의의 사고로 또는 스스로 택한 죽음등이 있다. 창조주의 계획은 신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기 때문에 사망을 작정하진 않으셨다. 그러면 인간들은 왜 태어나면서 생노병사의 노정을 동행해야 할까? 해결책을 찾지 못한 걸까? 아니면 거부할 수 없는 순리에 잘도 적응하는 걸까?
태초에 아담을 빚은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지키며 다스리라고 맡기셨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당부하셨지만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도했고, 그로 인해 사망이라는 이름이 권세를 누리기 시작했다. 시대마다 택한 사람들을 통해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악은 차고 넘쳐 관영함에 이르렀다. 구약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셨고, 처소를 예비하여 다시 오마 약속하신 신약의 주인공은 누구실까? 거부할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신의 역사는 보이지 않을 뿐 시간을 따라 성경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신다고 하셨다.
깃발은 이미 올랐고 휘날리며 있다. 찾는 자에게 복을 주시려고 말이다. 언제까지 도외시하며 수수방관 할수 있을까? 아득한 옛날, 신을 대적하고 가장하여 여태껏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이제 무저갱의 쓴맛을 느껴봐야 한다. 나팔을 불어 회개의 기회를 주시며 돌아 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계시지만 마지막 역사의 장이 마무리 되며, 하나님께서 청하여 씻음받은 푸른 싹들이 생명의 구원속으로 뿌릴 내리고 있다. 영원한 대속의 부활로 다져져 가고 있다.
신앙의 목적과 소망이 신기루를 보는 것이 아닌 실체를 보며 할렐루야를 외치며 있다. 계시록은 영혼 구원이 없고 모르면 모를수록 좋다고 설교를 하는 목사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단상을 차지하고 있는지 황당하다. 요한계시록 1장1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않는가? 예수님의 말씀은 몰라도 된다는 결론인데 도대체 목사라는 분은 예수팔아 장사하는 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 할 수 밖에 없다. 죄송하지만.....
몰라도 되는 책이라 봉해 두셨다고? ㅎㅎ 봄풀은 감상이라도, 눈을 즐겁게라도 해 주는데, 주의 종이라는 이름을 달고 창피한 줄 알았으면 좋겠다. 요한계시록은 신약의 종합편이라고 하시며 보고 들은 증인이 이것들을 증거하며 밝히 알려 주고 계신다. 확인해 보고 싶지 않은가? 요한계시록을 모르고 신앙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만물을 소생케하는 생명력은 창조주의 권한이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절대권력이다.
벚꽃이 꽃잎을 만개하고 보는 이들을 눈부시게 한다. 우리는 얼마나 계절의 신비를 체감하고, 감사하며 살아 갈까? 신의 상급은 지은대로 갚아 주신다 하셨다. 약속을 지키며 행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은 12가지다.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실과와 생명의 면류관과 둘째사망의 해를 받지 않고 감추었던 만나와 흰돌을 주신다 등등이다. 더 궁금해 주면 좋으련만..... 기업이나 유업은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라 자녀나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자의 몫이 될 것이다. 애시당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조건이 타당치 않았다.
감사하게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아브라함의 혈통과, 자칭 유대인이라 자부하던 교만의 덕분으로 복은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사거리에서 버림받고 소망없이 죽음을 향해 가는 우리에게 절대 절명의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반박의 여지가 있다면 말해 보라! 성경대로 말이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하는데 오늘날 기독교를 대표? 한다는 한기총의 목사님들은 참 말도 많다. 성경에 나오지도 않는 설명들로 자기방식, 해석으로 참 인듯 설교를 하신다. 요한 계시록 9장의 말들의 꼬리를 미사일이라고, 계5장의 봉한책을 에덴동산의 토지문서라고 가르치고 있다. 2,000여 년 전에도 미사일이 존재했으며, 토지문서라면 누가 어디에 어떻게 보관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고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근거도 증험도 없는데 말들만 무성한 무저갱의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알고 믿어 구원에 이르라고 하셨는데 오늘날 신앙인들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사단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다니며 삼킬 자를 찾을 때 그 늪에서 빠져 허우적 대지 말고 정신차려 근신하며 깨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보여 주시고 이루신다고 예언하지 않으셨는가? 그리고 그 약속대로 나타난 실체를 밝히 보여 준다 하지 않으셨는가? 약속을 지키는 자의 복은 피의 보혈의 댓가인 죄사함은 물론이고, 구원과 영생, 나라와 제사장을 삼아 주신다 하지 않는가? 신의 자녀로 영원한 천국백성이 될 수 있는 천운이 기다리고 있다. 벚꽃과 유채가 유혹하는 길을 걷더라도 새 천지 새 백성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