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일까를 궁금해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어 볼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도 모르면서 교회를 다니냐고 생각할까봐 괜한 소심함에 시간만 흘려 보낸 밤같은 기억이 있습니다. 눈으로만 성경을 읽은 병폐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분명히 알게 해 놓으셨는데 그저 교회마당만 밟으며 신앙을 했던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분명하게 기록해 놓으셨는데도 책장넘기기에 바빴으니 어찌 알 수가 있었겠습니까?
말씀이 곧 하나님이심을 아셨나요? 그런데 어떤 말씀이 하나님이신 줄을 어찌 알겠습니까? 성경의 내용은 역사, 교훈, 예언, 성취의 네 분류로 나누며 배도, 멸망, 구원의 순리노정대로 이루어 가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말씀을 깨달아 믿고 지켜야 할까요? 약속(예언)의 말씀을 깨달아야 하는데 실상을 알지 못하면 어떤 약속을 하셨는지도 모를 수 밖에 없는 그냥 맹탕인 신앙을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생각만해도 감동이 일렁이는 감상의 신앙말고 누구의 죄사함을 위해 피흘려 주셨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막연하게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다고 단정하지 말고 그 보혈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처소를 마련하여 다시 오마 약속하신 예수님께서 신약 즉 요한계시록의 실상을 알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씨로 거듭나고, 추수되어 인 맞고, 12지파에 속해야 하며, 계시록을 가감하지 말아야 하며, 생명책에 녹명된 자만이 하나님의 새 나라 새 민족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죄사함도, 구원도, 천국도, 영원한 생명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소경같은 신앙은 이제 그만하시고 똑똑한 신앙인이 됩시다. 아래배너를 클릭합시다.
사람들은 자신을 잘 모른다. 자신은 남들보다 좀은 더 잘 났고, 우월하다고 착각들을 하고 산다. 예외일 수가 있을까?그러나 기도는 부족하니까 채워달라고 간구한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인내를 아는 것일까? 하나님보시기에 한낱 구더기에 지나지않는 인생들이 아니었던가?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짐승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누군가는 성경을 자꾸 읽으면 그 중에 성령이 깨닫게 해 준다고 힘주어 말한다. 정말 그럴까? 하늘의 것을 보고 들은 택함을 받은 약속의 목자의 일곱번째 나팔소리를 듣지 않으면 절대, 결코 깨달을 수가 없다. 간절히 바라고 구하면 걸어 다니는 천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은연중에 말이다.
이 천사들은 영원한 생명의 복을 예비하고 기다리고 있다. 한줌 흙인 인생들에게 생기를 주어 낙원에서 같이 살고픈 여호와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자. 꾸짖지도 아니하시고 후히 주신다하지 않는가! 가족의 건강도, 가장의 명예도, 자녀들의 스팩도 생명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담은 자기에게 주어진 생기로 930살을 살았지만 자금은 길어야 백세를 갈구하지 않는가? 맛나고, 풍경좋은 곳을 소개하는 매체가 늘어나고 가고픈 곳도 자꾸 유혹하는데 오래 장수해야 누릴수 있지 않을까?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알아야 면장(免葬)을 할 수 있다. 이 혼탁한 세상을 지혜롭게 안락하게 누릴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마음 한번 바꾸면 극락에 거할 수 있는데 왜 그리도 고집을 피우는지 알 수 없는 마음은 내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굴까? 궁금하시면 아래 배너를 클릭하자.
아직도 외벽에 '부처님 오신 날'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부처의 불자를 파자해 보면 사람이 아닌 신이다. 그러나 흔히들 부처는 석가모니라고 통칭한다. 석가모니는 석가라는 부족의 성자라는 뜻이다. 고로 부처는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한 부족의 왕자로 태어나자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며 삼계의 고통을 마땅히 평안하게 할 것이다라는 뜻))라고 외쳤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2,50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생노병사의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보리수나무 밑에서 좌선을 하며 진리를 깨달았다고 해서 불타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깨달은 진리는 무엇이었을까? 제행무상의 무한한 소멸의 법문만 남기고 열반에 드셨다.
부처는 사람이 아닌 신이라면 실체는 누구일까? 그리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곧 하나님께로 올 자가 없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상고해야 한다(요14: 6절 참고). 교회벽면에 써붙이기만 하는 성구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나더러 주여 주여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다(마7: 21절 참고). 신앙도 경서도 이치에 맞고, 논리에 근거한 종교를 믿어야 한다. 막연하게 이럴것이다, 저럴것이다라는 사람의 생각을 의지하며 신앙하고 있다면 졸탁동시의 천사를 만나야 한다.
수많은 교파와 종단이 넘쳐나는 바다와 같은 세상에서 맑은 샘을 발견하고 이 샘물로 여지껏 더럽혀진 옷과 행실을 씻어야 한다. 주기도문에 말씀하신 일용할 양식은 때를 따라 나눠주는 목자에게서만 받아 먹을 수 있다. 죄를 대속할 예수님의 살과 피도 약속의 목자를 만나지 않으면 구원도 천국도 영생도 보장받을 수 없다. 새 나라 새 민족 12지파에 속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오래 묵힌 신앙의 년수가 절대 구원을 이룰 수 없다. 아래배너를 클릭하자. 천국도 구원도 영원한 생명도 여러분의 몫이 될 것이다. 미루지도 말고 지체하지도 말자. 문밖에 서서 기다리는 예수님을 속히 영접하자. 아멘!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섰나보다. 얼굴이 상기된 노부부가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건강을 위해, 장수를 위한 습관적인 행동일 것이다. 언젠가는 가야 할 곳은 알지만 가기는 싫은 인지상정을 안다. 그러나 가기 싫은 곳을 굳이 가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 길을 모를 뿐,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려면 생명수 샘을 찾아 나와야 한다. 아무리 외쳐도 귀 있는 자만 듣는 현실을 안타까워 할 수 밖에 없다. 만국소성의 기간은 천년이라고 약속해 놓으셨다. 앞으로 천 여년을 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 큰 환난중에 몰려 나온다고 했다. 첫째부활의 행운을 잡으려면 지금 나와야 하는데......
민답하다. 영원한 생명의 길을 안내한다. 아래 배너로 클릭하자! 04006~ 밑져봐야 본전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들어 보고 스스로 판단해 보길 바란다. 우리 교인이, 목사님이 자신을 천국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죽어서 가는 천국은 예수를,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다 간다. 유리바닷가로 나아 가지 않으면 천국은 볼 수도 , 갈 수도 없다. 아침마다 산행을 한다고 생명을 연장할 수는 없다. 천국을 소망하는가? 무엇을 망설이는가? 바로 지금! 클릭하자! 04006으로 ~
마음의 맑음이 피어 오른다. 둔한 심령쪼개기 작업이 끝나 가는가? 하늘 샘물이 밤새 깨끗이 씻어 주었는가? 전쟁같은 혼돈을 벗어버리고 치자꽃 같이 하얀 향기를 품어 내고 싶다. 소망없던 하루가 생기를 찾아간다. 한줄기 빛을 바라보며 마음에 그늘이 비껴나고 있다. 하늘의 푸르름이 별빛같이 쏟아져 내린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갈 빛바랜 얼룩이 한톨의 저항도 못하고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새하얀 빛은 찌들은 심령에 위안을 붓고 또 다독여 간다. 우린 너무 지쳐서 눈뜨지 못한 소경같은 혼란을 쌓아두고 세월에 부대끼며 아파하고 있었다.
영원한 생명이 작정한 자의 복인 줄도 모르고 우쭐대며 교만했었다. 이제 폭포수같은 생명의 샘을 만나 새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내 안의 고통의 부르짖음을 의식하지 못한 어리석음도 접고 일락의 욕심도 버리고 피안의 곳간으로 줄서기 해야 한다. 서로의 회한과 무지를 불 사르고 빛을 마주한 기쁨으로 즐거워하자. 상상을 초월할 미래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작은 이 땅의 미련에 시간이 흐른다면 작정한 복은 타인의 몫이 될 것이다. 고지가 눈 앞인데 여차하여 놓칠 것인가? 저차하여 외면할 것인가? 상상의 나래속에 날개짓만 할 것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하고 내 손으로 잡고 챙겨야 한다.
구하지도 않으며 노력하지도 않는다면 감나무 밑도 아닌 것이다. 요행은 없다. 빛을 소유한 자의 의무는 밝혀야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달란트의 분량만큼 남겨야 상급이 기다릴 것이다. 생각은 불가능이 없다. 실천할 분량을 작정하고 그리고 이루어 드리자. 값없이 돈없이 주시지 않는가! 새나라의 주인공다운 도리를 다 하자. 이제 안식이 얼마남지 읺았다. 밀물의 위엄같이 흰무리도 몰려올 준비를 하고 있음도 우리는 보았다. 새 나라의 주인공다운 도리를 다 하자. 임박한 역사 완성을 기다리며 인내하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는 누구일까?
감정의 기복이 없어질 날이 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망도 눈물도 애통도 곡함도 아픈것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얼마나 좋을까? 하늘의 거룩한 성과 하나님이 새하늘 새땅에 오신 그때에는 죽음과 고통이 없어진다고 하셨다. 공상과학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누린다는 것이다. 근거는 만물을 창조하신 주인께서 이 일들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소름끼치도록 확연히 드러났고 실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큰 그림의 완성을 위하여 열정을 사르는 주인공들이 쉼 없이 뛰고 또 널리 전파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나의 소망을 위해서 말이다. 믿기만 하면 가는 천국이 아닌 오는 천국을 맞이하기 위하여 분주한 시간들을 채워 가고 또 본대로 들은대로 독려하고 계신다. 진실을 왜곡하고 신의 역사를 훼방하는 자들도 존재하지만 그들도 성경대로 사명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악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 말이다. 그래도 어찌나 목은 곧고 자부심은 하늘을 찌르는지 가당찮다.
회개하지 않으면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다고 하셨는데 느낌은 전혀 없고 안하무인이다. 대놓고 악의 축임을 공표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주의 거대한 시나리오 속에 있으면서 혼자 잘난 척은 배가 부르다. 하나님의 눈에는 이들 모두가 소경이며 귀머거리가 아닐까?
우리는 이 땅의 천국을 소망한다. 감정의 굴곡이 없는 평화를 원한다. 누구나 외쳐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생각만으로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찾고 두드리고 열어 주실 때를 깨달아 구원에 이르기를 기도한다.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해 창조하신 천사들을 맞이하길 바란다. 눈물 애통 사망이 없는 무릉도원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손길들이 바쁜 하루다. 구정과 신정의 차이는 무엇일까? 음력과 양력의 단순한 의미에 불과할까? 성경도 구약과 신약이 있다. 옛 약속과 새로운 약속이다. 음과 양의 조화가 신비로운 구와 신의 대조가 극명하다. 그러나 그 연결은 사람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의 뜻과 계획과 생각을 기록한 책이라는 것이다.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도 있다 하지만 이 법률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의술에 의지하여 부질없는 생명 연장은 법으로 금한다는 취지가 아닐까? 누구나 살고 싶어한다.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도 있긴하지한 여건이 허락했다면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몸에 좋은 것만을 찾아서 먹고, 경관이 좋은 곳이라면 세계 곳곳을 누비는 여유있는 모습은 부러움을 살 수도 있지만 생명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혼밥, 혼술, 욜로족이 성행한다지만 이 역시 살아 있어 가능한 것이 아닐까?
말씀 안에 존재하는 생명을 먼저 찾아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망각한 창조주의 말씀을 상기해야 한다. 눈으로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며 의지하여 희노애락을 만들어 가지만 모두가 호흡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지금부터라도 말씀 앞으로 나아가자. 아무나 찾을 수는 없지만 기도부터 먼저하자.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불러 달라고 말이다. 언젠가 한번은 배워야 한다면 살아 호흡하고 있을 때 듣고 깨달아 영원한 생명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영원한 생명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은가?
잡생각이 많은 아침이다. 행동은 따르지 않는 상상의 날개짓만 하면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 감각은 무뎌지고 의욕은 상실 직전이다. 떨치고 벗어나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인내하시며 6천 여 년을 역사해 오셨는데 부끄럽지도 않은가? 이런 상태로 영원한 생명을 소망한 댔어야 어디 쥐 구멍이라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오로지 신천지 비방하기에 앞장서는 한기총이나 CBS방송은 거짓말 지어내기에 바쁘고, 앞 뒤도 맞지 않는 작문 짓기에 지치지도 않는데 정신 차려야 하지 않겠는가? 예언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목도하고도 환경과 여건을 핑계로, 욕심과 타협하는 인간의 심지가 이해하기는 혈기를 부르지만 굳이 복을 마다하는 바보는 되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함은 있다.
세상 법관도 육법전서를 꿰뚫고 있어야 판 검사가 되듯이 하늘의 심판권을 주신다는데 핑계나 대는 바보같은 생각은 버려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통치하실 나라는 이 땅에 건설되고 있고 우리는 그 나라에서 불고 있는 나팔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서둘러야 한다. 완성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죽느냐 사느냐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까? 지금이 익숙하지 못하고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 같은 이기심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포기해야 할까? 모래위에 지은 알량한 집으로 만족할 것인가? 곧고 튼실한 반석위에 지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해야 할 것인지는 숙제다. 그러나 오래 고민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영생을 강조했다면 자신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받아 드렸을까? 불행하게도 그 교회 목자는 보고 들은자가 아니기때문에 구원도 천국도 없다. 어째스까~~
달면 삼키고 쓰면 가차없이 버리는 이기의 극치를 많이 봅니다. 모르고 살아도 될 것들을 언론, 방송, 인터넷까지 기승을 부리는 세상에 사람들은 다 파묻혀 헤매고 있습니다. 누구는 주인공이 되고 누구는 가해와 피해를 감수하며 억울해 하고, 황당하고 어이없는 경우를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며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믿게 하려 하심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수면에 운행하시다가 한 빛을 택하시고 그 빛을 찾아 나아 오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바퀴벌레는 어둠을 좋아합니다. 빛이 비취면 숨기 바쁘니 말이죠.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분별 할 수 있는 지각이 있습니다. 언젠까지 빛을 피해 다니시기만 하실런지요? 햇빛같은 생명의 말씀을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인문학 강의보다 4차 산업의 정보보다 자신이 살아 있어야 하는 궁리가 더 급하지 않을까요? 노후준비를 강조하며 고령사회를 운운하는 세태에 불안해만 하지 마시고 나의 미래, 영원한 생명의 근간이 될 신약이 성취되어 실체가 나타난 곳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하지 마시고 지금은 깰 때라고 하신 말씀을 경청해 보시고 판단하길 기대해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길 원하시며 미리 예언하시고 이 예언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심을 명심합시다. 노아가 방주를 지으며 홍수로의 멸망을 알렸지만 단 8식구 밖에는 구원 받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세대는 이런 전철을 밟지 말라고 외치십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 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 하십니다. 또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산으로 도망하라고도 하셨습니다. 문자에 매여 코 앞의 복을 놓치지 마시고 천운의 기회를 잡으십시오. 천국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하십시오.
사람들은 맹목적인 신앙을 한다. 교회나 성당이나 절이나 신앙을 한다. 모두는 무조건 믿기부터 한다. 눈으로 확인 할 수 없는 신은 자신들이 다니는 곳에 상주한다고 착각을 하며 맹신한다. 과연 그럴까? ㅏ망, 여유를 부리며 호기롭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일까? 만석꾼도, 천석꾼도, 이병철 회장도 죽음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법없이 착하게 살아도 몹쓸 짓을 해도 결국은 사망의 길을 피할 수 없다. 아담은 930살을 살았고 므두셀라는 969세를 향수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껏 100세를 운운한다. 그것도 최근의 일이다. 아담의 범죄로 인간의 수명은 점차 줄어 들었고 오늘날은 왜 고령사회로 변화하고 있을까? 의학의 발달일까? 지구는 혼탁해져 가는데? 성경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게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신을 보여 하나님이라 가장하는 완악한 존재로 인해 눈과 귀가 막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때가 되어 택하신 한 목자를 통하여 밝히 증거해 주는 생명의 말씀을 길따라 나오면 영생과 천국과 구원은 말씀을 받고 지키는 자들의 소유가 될 것이다. 기대되지 않는가? 장수하고 싶은가? 영생하고 싶은가?
무지한 인간들은 혼돈하고 공허한 흑암중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른다. 부지불식간 지나는 천사의 음성에 귀 기울여 보자. 천국이 가까이 왔다. 죽어서 가는 천국은 지옥을 가장한 유황불못이다. 꼭 죽어서 지옥맛을 봐야 직성이 풀릴까? 맹신은 사망이다. 정신차리자! 이 땅의 천국을 찾기를 바래 본다.
노오란 나뭇잎이 나비가 되어 바람을 탑니다. 누군가는 무심히, 누군가는 허무를, 어떤이는 새싹돋는 미래를 작정할지도 모릅니다. 창조주께서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사람에게 주셨지만 창조주의 하시는 일의 시종은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창조주의 선물인 줄 알아야 하는데 과연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들 가는지 의문이 듭니다. 입으로만 주를 찾고 부와 수만 구하고 있지나 않은지 말입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창조주께서 떠나셨던 부패한 세상을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하시고 만물중에 드시길 원하십니다. 사람들의 사고와 생각은 다람쥐일 뿐 더 이상은 볼 수가 없습니다. 홀연히 이루어가시는 창조주의 계획속으로 복있는 자는 그 길을 찾아 나아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유치한 의심병에 들지 말고 하늘의 부름에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천국으로 향하는 길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도, 믿음도 신이 주신 선물입니다. 때가 되면 몰려 온다고 하셨는데 그 때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이 여러분의 때임을 알려드립니다. 바로 지금!
영원한 생명을 믿는 신앙인들은 없다. 그러나 성경엔 하나님과 우리의 약속이 영원한 생명이라고 분명히 기록해 주셨다. 믿노라하는 신앙인들에게 보고 믿으라고 주셨지만 모두가 죽음을 당연시 하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한1서 2:25~참고),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지금도 에덴동산은 지금도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날 낙원의 일원이 되었을텐데~~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상이 6천 여 년을 흘러 우리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결코 만만치는 않지만 말이다. 약속을 지키는 자에게 유업을 상속하신다 하셨으니 궁금해도 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막연한 기복 신앙의 혼돈 속에 갇혀 있지 말고 빛을 발견하고 빛 앞으로 나와야 한다. 왕과 백성의 신분차이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지금은 왕의 반열에 오를 제사장들을 청하여 택하는 때이다. 갈급한자, 가난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모두 모두 값없이 받으라 하신다. 아래 배너를 클릭하셔서 무지한 신앙의 밤에서 깨어나 창조주께서 계획하고 뜻하신 무한한 사랑을 확인하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자. 머뭇거리고 색안경을 쓰고 거드럼을 피울 시간이 없다. 서두르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한1서 5:13~참고)
누에가 뽕잎외에 다른 것을 먹으면 죽듯이 신천지인들은 성경 말씀외엔 다른 것은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이시며 예언대로 이루시고 이루신 실체를 신천지인들에게 증거해 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구약 노아의 방주때 같이 하나님께서는 이 복잡한 신앙세계를 아니 만국을 쓸어 버리실 날이 도래하기 때문이다. 죽어서 천국간다는 안일한 어리석은 신앙의 옷은 벗어 버리고 새로운 참 신앙의 때깔나는 옷으로 단장하고 다시 오실 하나님과 예수님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천국을 맞을 준비를 하자,
서두르지 않으면 천국문은 닫힌다. 하나님의 펴신 팔이 기다려 주실 때 회개하며 대명천지의 광명을 기쁨으로 맞이하자. 일상에 길들여져 허투루 지나칠 때 구원과 영원한 생명의 복은 찌질이도 못난 이웃집의 상급이 될 수도 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신천지, 하나님과 성도와의 믿음은 어느 누구도 오직 하나님만이 인정하고 사망도, 눈물도, 아픔도, 고통도 면하여 줄 것이다. 좁고 협착한 길 저편엔 우리가 소망하는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 걷지고 말고, 뛰어서 가자! 출발! http://cafe.daum.net/scjschool/E3qZ/916
노는 날이 많다고 공휴일에서 제외된 제헌절! 우리의 기억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은 아닐까요? 헌법의 제정과 공포를 온 국민이 경축하고 기념하는 국경일을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휴일이 아닌것만 불평을 토로하는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나부터~^^ 헌법 제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의 주권, 그리고 권력, 얼마나 주인같이 활용하고 있는가 의문이 들때도 많습니다. 특히 헌법 제 20조 1항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지며 2항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헌법은 수호하는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알면서도 교묘히 기망하며 미꾸라지 같이 잘도 빠져 나가는 종교인이 있다는 사실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지만 이 또한도 법의 그물로 어떻게 할 수 없음을 토로하는 우리의 치안도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강제개종 교육의 피해가 연일 발생함에도 그 어느 방송도 가해자의 입장만 선인양 보도할 뿐 피해를 당하는 청년이나 부녀들의 호소는 가족문제라는 이유로 묻혀지고 개종목사의 지갑만 채워지고 있을 뿐입니다. 헌법이 있는 나라,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로만, 글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한심스럽기도 합니다. 국민을 위한 헌법이라면 모두가 평등해야 하며 권리도 누려야 하지 않을까요?
일부 비상식적인 목회자들의 양심은 외출이라도 하셨는지 속히 회개하시고 더 이상의 선량한 가족이 상처받는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합니다. 유황 불못의 영벌을 경험하고 싶으신가요?
신의 뜻을 제대로 모르고 신앙한다면 맹신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일까요? 읽기만, 믿기만, 부르기만 한다고 신앙을 하는 것일까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신께서 이 만물 속에 드시고자 하십니다. 주의 종이라고 표현하고 계시다면 종답게, 목회자다운 양심으로 개종교육을 중단하시기 바랍니다. 때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데 어둠의 마법에 갇혀 있으니 종교 역사의 패륜아는 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득만을 쫓으려다 영원한 불못의 형벌에 처하지 마시고 회개합시다. 잘잘못은 백일하에 드러나고 그 때의 수치와 모멸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어둠의 꺼풀을 벗어내고 빛으로 나아 갑시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 가지만 그 기회를 선택하는 자만이 구원과 영생과 천국을 소유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주인공이 됩시다!
참 하나님은 어느 교단에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니 신천지는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가라고 하는 아주 점잖은 비방글을 보았습니다. 오늘날은 재림의 주를 기다리기만 하는 신앙들을 하고 있지 않나요? 시대 분별도, 때 분별을 해야 할 때입니다. 처소를 예비하여 다시오신다 하신 예수님께서 언제, 어디에 어떻게 오시는지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회개하고 돌아 갈 곳을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근거도, 주장도, 육하원칙에 의거 증거할 수 없다면 오히려 속히 회개하며 신천지로 나아 오길 기원합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하셔서 무지한 심령을 깨우시고 똑똑한 신앙인이 됩시다. 하나님께서 임하실 곳은 새 하늘 새 땅 신천 신지입니다(계21: 1~4 참고). 오늘날은 재림의 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에, 어떻게, 누구에게 오실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맹신의 늪에 빠져있지만 말고 영원한 생명의 복을 붙잡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