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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6일 월요일

부처님의 실체는 누구일까?





아직도 외벽에 '부처님 오신 날'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부처의 불자를 파자해 
보면 사람이 아닌 신이다. 그러나 흔히들 부처는 석가모니라고 통칭한다. 
석가모니는 석가라는 부족의 성자라는 뜻이다. 고로 부처는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한 부족의 왕자로 태어나자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며 
삼계의 고통을 마땅히 평안하게 할 것이다라는 뜻))라고 외쳤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2,50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생노병사의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보리수나무 밑에서 좌선을 하며 진리를 깨달았다고 해서 불타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깨달은 진리는 무엇이었을까? 제행무상의 무한한 소멸의 
법문만 남기고 열반에 드셨다.






부처는 사람이 아닌 신이라면 실체는 누구일까? 그리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곧 하나님께로 올 자가 없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상고해야 한다(요14: 6절 참고). 교회벽면에 써붙이기만 하는 
성구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나더러 주여 주여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다(마7: 21절 참고). 신앙도 경서도 이치에 맞고, 
논리에 근거한 종교를 믿어야 한다. 막연하게 이럴것이다, 저럴것이다라는 
사람의 생각을 의지하며 신앙하고 있다면 졸탁동시의 천사를 만나야 한다. 






수많은 교파와 종단이 넘쳐나는 바다와 같은 세상에서 맑은 샘을 발견하고 
이 샘물로 여지껏 더럽혀진 옷과 행실을 씻어야 한다. 주기도문에 말씀하신 
일용할 양식은 때를 따라 나눠주는 목자에게서만 받아 먹을 수 있다. 

죄를 대속할 예수님의 살과 피도 약속의 목자를 만나지 않으면 구원도 천국도 
영생도 보장받을 수 없다. 새 나라 새 민족 12지파에 속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오래 묵힌 신앙의 년수가 절대 구원을 이룰 수 없다. 

아래배너를 클릭하자. 천국도 구원도 영원한 생명도 여러분의 몫이 될 것이다.
미루지도 말고 지체하지도 말자. 문밖에 서서 기다리는 예수님을 속히 영접하자. 
아멘!





2017년 5월 3일 수요일

오늘은 초파일, 등은 왜 밝힐까요?



오늘은 초파일, 부처님이 오신 날입니다. 손에 붉은 색 물이 묻어나도 즐겁고 
뿌듯했던 기억이 새롭군요. 근데 요즈음은 손으로 만든 연등을 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가로수 길에도 비닐 옷을 입은 알록달록이가 부처님 오신날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은 약 2,500년 전 석가라는 동네에 왕자였던 
고타마 싯타르타이며 모니는 성자라는 뜻이라는군요. 부족의 후계자로 태어나 
생, 노, 병, 사의 답을 얻기 위해 보리수 밑에서 수행을 하고 35세에 득도를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모두가 내 탓이고 비우는 것이 답이었을까요? 

선하게. 바르게, 착하게라는 표현은 윤리 도덕 책이 돼 버렸고 해탈을 일탈의 
기회로 삼는 몇몇 기수들이 눈쌀을 찌푸리게도 합니다. 등은 왜 밝히며 천 년 
후에 나타날 미륵을 기다리고만 있는 소경같은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불교는 등이라도 밝히고 누군가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정작에 
기독교인들은 등을 밝힐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등과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을 기다려야 하는데 무조건 십자가만 붙들고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던 때에는 그 죄를 허물치 않는다 하셨지만 때가 되어 
전부를 밝히 알려 주는 곳을 찾아야 함에도 감각이 없는 심령들을 얼마나 
안타까워 하실까요?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만물속에 깃드시고자 오랜 
시간을 역사 해 오셨습니다. 

낙원을 지키고, 다스리라고 하셨지만 미혹의 댓가는 죄로 사망을 집삼아 
옛뱀이 용이 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기름과 등을 준비한 처녀와 등은 준비하였지만 기름이 
부족하여 오신 신랑을 영접지 못한 미련한 처녀의 자화상이 자신의 모습은 
아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날은 전기가 모든것을 해결해 주나요? 

불기 2561년, 예수님 오신지 2017입니다. 약 500여 년의 차이 속에 불경의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時也耶蘇來하면 吾道無油之燈也라(하시야소래 오도무유 지등야) 때가 되어 
예수라는 사람이 오면 나의 도는 기름이 없는 등불과 같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성자일지는 몰라도 메시야는 아니었습니다. 




구하고자 했던 생, 노, 병, 사의 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생명의 주관자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유명하다는 성철 스님도 사탄이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표현한 대목은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제아무리 똑똑하다고 자부하여도 풀 한 포기 만들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자비도, 비움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시대 분별, 때 분별, 선악 분별을 잘하여 창조주께서 주시고자하는 엄청난 복을 
상속받는 하늘의 자녀들이 됩시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여 어디에서 기다려야 하는지는 성경속에, 그리고 그 뜻을 풀어
알려주는 신천지에 모든 답이 있습니다. 이제는 편견도, 아집도, 카더라도 버리고 
오직 생명을 찾고자 하는 일념으로 신앙을 해야 할 때입니다.






2017년 4월 19일 수요일

창조주의 절대 권력은 무엇일까?



파릇 파릇한 잎들이 연록을 자랑이라도 하듯 앞 다투어 생명력을 뽐내며 
뭇시선들을 즐기며 있다. 하루살이는 하루가, 메뚜기는 한 철이 전부인데 
사람들은 백세를 외치며 각자의 인생의 그림을 채워 나간다. 

하루 평균 사망자수는 63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아파서, 불의의 사고로 또는 
스스로 택한 죽음등이 있다. 창조주의 계획은 신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기 
때문에 사망을 작정하진 않으셨다. 

그러면 인간들은 왜 태어나면서 생노병사의 노정을 동행해야 할까? 해결책을 찾지 
못한 걸까? 아니면 거부할 수 없는 순리에 잘도 적응하는 걸까? 




태초에 아담을 빚은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지키며 다스리라고 맡기셨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당부하셨지만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도했고, 그로 인해 사망이라는 이름이 권세를 누리기 시작했다. 

시대마다 택한 사람들을 통해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악은 차고 넘쳐 관영함에 
이르렀다. 구약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셨고, 처소를 예비하여 다시 오마 약속하신 
신약의 주인공은 누구실까? 

부할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신의 역사는 보이지 않을 뿐 시간을 따라 
성경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신다고 하셨다. 




깃발은 이미 올랐고 휘날리며 있다. 찾는 자에게 복을 주시려고 말이다. 
언제까지 도외시하며 수수방관  할수 있을까? 아득한 옛날, 신을 대적하고 
가장하여 여태껏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이제 무저갱의 쓴맛을 느껴봐야 한다. 

나팔을 불어 회개의 기회를 주시며 돌아 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계시지만 
마지막 역사의 장이 마무리 되며, 하나님께서 청하여 씻음받은 푸른 싹들이 
생명의 구원속으로 뿌릴 내리고 있다. 영원한 대속의 부활로 다져져 가고 있다. 




신앙의 목적과 소망이 신기루를 보는 것이 아닌 실체를 보며 할렐루야를 외치며 
있다. 계시록은 영혼 구원이 없고 모르면 모를수록 좋다고 설교를 하는 목사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단상을 차지하고 있는지 황당하다.

요한계시록 1장1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않는가? 
예수님의 말씀은 몰라도 된다는 결론인데 도대체 목사라는 분은 예수팔아 장사하는 
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 할 수 밖에 없다. 죄송하지만.....




몰라도 되는 책이라 봉해 두셨다고? ㅎㅎ 봄풀은 감상이라도, 눈을 즐겁게라도 
해 주는데, 주의 종이라는 이름을 달고 창피한 줄 알았으면 좋겠다. 

요한계시록은 신약의 종합편이라고 하시며 보고 들은 증인이 
이것들을 증거하며 밝히 알려 주고 계신다. 확인해 보고 싶지 않은가? 

요한계시록을 모르고 신앙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만물을 소생케하는 생명력은 창조주의 권한이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절대권력이다.





2017년 2월 22일 수요일

생노병사의 노정을 피해 갈 방법이 있는가?



우리는 어쩌면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생노병사의 노정을 채워 가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느끼지 못할 뿐인것 같다. 신의 역사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그래도 좀 나가던 때를 회상하며 지금을 한탄하며 타령에 젖어 있을지도 모른다. 지나간 과거가 아름다웠다면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희락이어야 하지 않을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영원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셨지만 근원을 모르는 
인생들이 그 잘남의 표본이 되어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믿는다하나 맹신이나 광신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라고 하신다(마7:14~참고).
신의 뜻을 제대로 확실하게 안다면 사람의 생각으로는 상상불가의 세상에 이를 수 있다. 
문제는 이 영역이 직접 보고 듣고 그리고 행해야만 하는 것이다. 바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인 사고가 그리 녹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내의 열매가 달려면 누워서 떨어지는 홍시를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을까? 
내 마음을 내멋대로 할 수 있다고 단정짓는가? 절대, 천만의 말씀이라면 부지불식간 
나를 스쳐간 천사의 음성을 기억하길 바란다. 어쩌면 당신은 절대절명의 기회를 
놓치지는 않았는지 깊이 사색하길 바란다.



2017년 1월 9일 월요일

부활절은 왜 삶은 계란을 먹는가?



사람들은 어머니의 모태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경주를 한다.
희,노,애,락의 연속선상에서 생,노,병,사의 줄다리기를 하며 운 좋게, 때론
안타깝게 인생의 그림을 채워 나간다.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당연한 듯 살다가 사망에 이른다.
그러나 죽어야 하는 이유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다. 인간의 죄 때문에 
사망은 사단의 전유물이 되었고, 우리에게 죽음은 당연시 되었던 것이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다. 그러나 아무도 누구도 부활의 영광을 누린 
사람은 없다. 유일하게 예수님외에는.....
부활!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이 부활이다.




어떻게 하면 다시 살 수 있을까?
초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그리고 다시오마 약속하시고 처소를 예비하려 떠나셨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부활절날 삶은 계란을 나눈다.

성경은 상식으로도 보면 안되며, 신앙도 상식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할 수 있는가?




2016년 12월 2일 금요일

불노장생의 비밀은 어디에?



사람의 수명은 점점 늘어나 초고령화시대에 근접하고 있다. 
단순히 의학과 의술이 발달되어서 일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모두를 판단하고 결정한다. 

인간은 영과 혼과 육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별 감각이 없다. 생, 노, 병, 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진 시황제는 불로장생하는 약초를 구하러 우리나라 서귀포까지 사신들을 
보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예지력은 있었으나 때를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면 불로초는 대한민국에 있을까? 
찾고 구하고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2016년 9월 28일 수요일

생노병사(生老病死), 해결의 답!


생노병사(生老病死)!
사람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네가지 큰 고통이라고 
사전은 말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도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생노병사의 문제 해결을 위해 답을 찾아 
29세 나이에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했습니다.

생노병사(生老病死)!
여러분은 이 대사상을 피해갈 수 있는 답을 갖고 계시나요?
아니면 자신은 모든 것을 당하지 않고 행복한 일상만을 누릴 것이라고 
안주하며 바라시지는 않으신지요?

석가모니불이 찾은 답이란 것이 모든 것을 비우라는 것이었고, 
자신의 탓이라고 귀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기록 하셨습니다(계21:3~4절 참고).

하나님의 장막이 저희와 함께 있으매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하시면 생노병사의 고통은 반드시 피해갈 수 
있는 답이 성경에 있음을 우리는 모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때가 이르면 비사로 이르지 않고 밝히 일러 주신다고 하신 말씀을 간과하고 
맹목적인 신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새 천지 약속의 목자는 하늘의 것을 보고 들은 증인이시며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천국의 열쇠를 소유하고 계십니다. 

아직도 신천지를 이단이라고 핍박하며 까치눈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회개하여 참 하나님을 영접하시기를 권면하며, 세상의 것에 똑똑함을 
신앙의 잣대로 맞추시길 당부드립니다.

신앙인들이 소망하는 천국은 이 땅에 이루어 지고 있으며 그 천국의 열린문을 
찾고 두드리시길 기원드립니다.


* 대사상 : (불교)인간이 일생 동안에 겪는 네 가지 상(相)

http://cafe.daum.net/scjschool/MmHD/16 : 현문현답(賢問賢答)


2015년 5월 23일 토요일

이 세계와 만물의 주인은 누구신가 ?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사람들은 하기 좋은 말로 하나님은 왜 어찌하여 인류세계를 고통과 
생노병사를 있게 하셨냐고 쉽게들 말한다.

더욱 황당한 것은 하나님을 믿지도, 교회를 다니지도 않은 사람들이 
흥분하며 얘기들을 한다. 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만 믿으려 하고 
자신들이 필요한것들만 얻으려 하는가 ?
과연 그럴까 ?


인류 세계의 주인이 아닌 자의 배도에 의한 형벌의 대가는 죽음이었고 
고통이었다

배도하고 세계를 주관해 온 사단이 하나님과 사람이 통하는 계시 통로를 
막아 깨달음이 없게 함으로 거리가 멀어졌고창조주 하나님과 창조의 
깊은 것(천국 비밀)을 알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이것이 무지이며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하게 
된 것이다(호 4:6).

http://cafe.daum.net/scjschool/E3qZ/678





2014년 8월 8일 금요일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 ?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인 햄릿에 나오는 이 고백은 웬만한 사람들은 
한번쯤은 되뇌여 본 익숙한 명대사입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결정과 선택을 해야 하는 복잡다단한 굴레 속에 존재하지만
과연 우리에게 생,사의 선택권이 있으며 이것을 얼마나 고민하며 살고 있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다수의 의견이 합리화 되고 인간적인 감동에 치우쳐 짐짓 내가 선택해야할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올바르게 인지하는 능력은 있는지,
삶의 무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피해 갈 용 빼는 재주는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이천 오백년 전 인도의 왕자 싯다르타 고타마는 생노병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리수 아래에서 득도한다고 했지만, 많은 설법들은 선을 행하고 비우라는(空)
오묘한 말만 전해 왔지 그 답은 찾지 못하고 열반에 들었습니다.

삼성의 창립자 故 이 병철회장 또한 생노병사의 문제들을 모 신부에게 의문을 
던졌지만 답은 듣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 답은 과연 ?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불가 항력을 하나님께서는 명쾌한 해답을 
주십니다.

삶과 죽음 ! 그 답은 성경에서 찾아 봅니다.




★  고전 15 : 51~54
★  요 11: 25~26
★  고전15 : 19~24
★  계 5 : 9~10
★  계 7 : 14~





아래 주소로 클릭 !

http://cafe.daum.net/scjschool/E3qZ/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