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cheon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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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6일 목요일

새로운 변화를 인식하는 계기는 언제쯤이나?



출근길은 모두가 바쁘다. 웃음끼 가신 무표정, 아니면 멍때림으로, 
폰을 보고 어딘가를 주시한다. 그래도 생각은 하고 있겠지?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눈에 보이며 망막에 비취는 상은 2차원인데 
사람들은 3차원의 세계에서 생활을 한단다. 생각도 본것이 많으면 자의식에 
빠져 분별력을 감퇴 시킬수도 있다. 그래서 어린아이의 판단이 옳을 수도 있단다.

사람의 판단은 얼마나 정확할까? 자신의 잣대에 맞춰 이럴것이다. 저럴것이다. 
특히 좀 한다하는 교회 목사님들의 잘 쓰는 표현으로 더 연구해 봐야 한다고 
하시는데, 신의 글을 사람의 지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미리 말해 주는 것은 일이 이룰 때 보고 믿으라고 주신다 하셨고, 때가 되면 밝히 
알려 주신다고도 하셨다.
이 때가 지금이라면 이것 저것 살피고 비교해 봄직도 하건만 불통이다. 
누군가는 소통의 부재로 최고의 직에서 파면이 되기도 했지만......





자신이 목회자라는 직함을 달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전하고 있다면 
이 마지막 나팔 즉 일곱 번째 나팔의 소리에 최소한 관심은 가지고 이성적으로 
분별은 해야 하지 않을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인지, 노력하고 투자한 시간들의 
댓가를 추구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재림의 역사가 이루어 감에 최전선은 
아닐지라도 기본 양심은 살아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성경을 보화라고 생각 하신다면 말이다.

일곱인으로 봉함된 책이 에덴 동산의 토지 문서이며, 성전에 있는 우박이 핵 폭탄이며, 
언약의 표징인 할례가 남자들이 받으면 여자가 자궁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해괴망측한 
풀이로 교인들의 심령을 다 죽이고 있다. 지켜 보시는 하나님께서 통탄해 마지않을 것이다. 말씀을 모르는 사람들은 짐승에 비유 하셨으니 권역밖인 줄도 모른다.





경험은 저주가 될 수가 있다고 한다. 자신의 틀속에 갇혀 새로운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자신의 지식을 전부라고, 더 이상은 없다라고 
자만하는 전문가들이 범하는 실패의 요인일 수도 있다. 신이 계시다면  그렇게 
자유할 수 있을까?

얄팍한 것으로 치부하지 말고 열린 계시의 참 진리로 승부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새로운 출발점에서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천국의 문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서둘지 않으면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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