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도 주를, 죽어도 주를 위해 사는 사명자들이 많다. 사나 죽으나 오직 주를 위해 이 한 목숨 받친다는 신앙고백은 자주 듣는다. 과연 그럴까? 주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를 모시고 오늘도 중언부언하고 있다. 목숨을 바쳐 신앙 하라면 나 자신부터 할 수 있을까? 죽어서 가는 천국이나 외쳐 대며 교인들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목회자의 양심을 확인하고 싶다. 사명은 생명이라고 말들만 무성하고 정작 알아야 할 성경예언의 지식은 전무하니 안타깝다. 소경같은 목자의 말에 귀기울이고 아멘만 부지런한 교인들의 결국이 염려스럽다.
목회자의 사명은 교인들을 천국으로 인도해야 하는 임무가 막중할텐데 아랑곳없다. 진리를 가리고 겉모습만 거룩한 체 목이 곧다. 사단 마귀 본연의 사명이 비방하고, 이간질하고, 훼방하고, 분리시킨다고 한다. 너무도 닮아 있지 않은가? 모두가 미혹의 사슬에 묶여 불사름의 심판을 기다리고만 있다. 오늘날의 때를 알아 앉은뱅이의 습성을 버리고 나왔으면 좋으련만, 눈앞의 안락함을 포기할 줄 모른다. 사명은 곧 생명이라고 잘난 척 마시고 겸손해 줬으면 좋으련만~ 천기는 구별하면서 때 분별은 못하는 신앙인들의 어둠을 언제까지 방치해야 할까? 깊은 수렁의 굴레를 감지못하는 무지를 깨울 수는 없을까? 천국문은 닫혀만 가는데 오만의 극은 멀어만 가니 통재라~
내가 본 천국은 꽃길도, 금길도 아니었다. 그러니 사명이 생명이라고 떠들지만 말고, 죽어서나 가는 천국이라고 유언비어만 난발하지 말고, 거룩한 척도 하지 말고 똑똑해 지자. 무조건 믿으면 맹종이며 맹신이 된다. 온전한 사명감당을 하려면 성경통달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제발 바라기는 낮아지길 기도한다.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 사는 목회자들의 사명은 무엇일까? 묻고 싶다.
우리네 사람들은 법대로 해란 소리들을 쉽게 한다. 과연 이 법은 누구를 위한 법인지 의아해 할 때도 많다. 민초의 고민을 경청하겠노라 청와대 신문고를 만들어 놓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청원의 글이 삭제되는 납득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최근 故 지인자매의 청원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힘없는 민초의 하소연을 외면하고 불안과 공포에 내몰리게 한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그리고 지인자매는 본의 아닌 죽음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성년이 된 자녀의 종교를 부모가 그것도 강제로 개종을 시키겠다고 감금하고 사지로 몰아간 그 비정함을 누가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인가? 조금 더 빨리 정부가, 방송과 언론이 나섰다면 이런 불행한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돈을 주면서까지 자녀의 목숨을 담보로 바친 가족의 심리는 과연 정상일까?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변명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궐기한다. 제2의 지인이는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강제개종목사의 파렴치는 인권유린을 넘어 도덕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범죄이다. 세계가 먼저 알고 역풍이 불 것이다. 힘없는 민초의 촛불이라고 무시하고 있다면 오산이다. 한 젊은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그것도 종교의 자유를 지키려고 애쓰다 미명에 갔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언론과 방송은 수수방관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왜 이슈가 되지 않는 것일까? 개종목사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또 누군가의 사주에 의해 눈치만 보고 있다는 말일까? 미투 운동같이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증인이 나서면 용서를 구하는 비겁한 선례는 더 이상 만들지 말았으면 좋으련만.....
이제 양심을, 도덕을 생각하는 인간적인 배려가 넘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종교의 자유를, 강제로 타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몰염치는 사라져야 한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내 자녀가 종교의 자유를 누리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비통한 눈물의 애환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마음을 모아 주길 바래본다. https://youtu.be/kutX5zH3DhU http://bit.ly/2Eetgw0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하고 자신이 없을 때 사람들은 상대를 비하하기 위한 방편으로 비겁하고 비양심적인 가십을 만들고 짜 맞추기식 허황된 기사나 보도를 사실인양 퍼뜨린다. 상식이 있고, 언론의 윤리강령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허위에 양심을 파는 지식인들은 자기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