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지상주의란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별반 다를 것도 없는것
같지만 말이다. 지하철 안 맞은 편 자리에 앉은 여자분은 이뻐 질려고, 잘 생겨
보일려고 코와 입을 성형한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변화가 아니라 변형인것 같다. 미인의 기준에 부족함 때문인가? 언젠가는 부패하여
썩어 없어질 것에 돈을 투자하고 고민의 밤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내 안에 거하는
속사람의 원형은 관심도 없으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만 두질 않는다. 키작고
못 생겨도 돈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상쇄하기도 한다.
초림 예수님의 모습은 하룻밤 유숙하는 자 같고 벙벙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렇게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영화속의 주인공같이 멋짐과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작렬하는 모습만을 연상한다. 참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다.
겉 모습이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얼굴에 보톡스깨나 맞은 얼굴로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스쳐 지나는 어르신을 본다. 겉모습의 치장이 생명을 대신 할 수는
없다.
화무십일홍이다. 떠나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바꿀 시간도 저 사람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것 같다. 안타깝지만~~
외모에만 집중하다 생을 마감한다면 사람들의 생각은 모자람 아닐까? 잘 생김이
스트레스였다던 모 정치인은 뭐지?
후패해 사라질 겉사람을 위해 치장하지 말고 우리의 속을 날로 새롭게 변화 받을 수
있도록 생명의 물로 씻어야 하지 않겠는가?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것은 영원함이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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