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즐기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아주 작은 소소한 것에도 반응하는 심리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는데 참 단순 유치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웬일일까요? 에덴동산 아담의 세상은 어땠을까요? 오늘을 만족하며 행복해 했을까요? 하와는 무엇이 부족해서 뱀의 미혹에 빠져 들었을까요? 먹으면 정녕 죽는다는 선악과를 따 먹고 만족했을까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음을 노린 마귀의 간교한 술수에 무너져 버린 아담의 무지를 탓만 할까요? 6천 년을 자라온 아담의 범죄는 바다에 던지우는 맷돌 신세가 돼 버렸고 이제 창조주께서는 에덴의 회복을 마무리하고자 하십니다.
하늘의 것을 배우는 것이 종교라고 했고, 우리의 선조들은 머리에 갓을 쓰고 다녔습니다. 만물 속에 감추어 두신 보물찾기는 이제 그 끝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신앙한다고 떠들지만 말고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의 뜻을 알고 깨달아 빛을 찾아 나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강건너 난 불구경을 하듯 하늘만 쳐다 보고 있을 때가 아님을 경고합니다. 성경에 약속한 목자는 이제 평화를 선포하시고 창조주와 동행하고 계십니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은 성경대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논리와 이치에 맞게 증험과 성취를 보여 주고 들려 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오늘을 즐기며 작은 일상에 행복할 수 있겠지만 영원할 수는 절대 없습니다. 하늘의 것을 배우며, 깨우쳐 믿는다면 영원한 생명을 구가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을 창조주께서는 꾸준히 미련한 방법으로 이루고 계십니다. 낙원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잃어버린 에덴의 회복을 보고 싶지 않으신지요? 획기적이며 전무후무한 역사는 그 실체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약속하시고 성경대로 이루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은혜를 유업으로 받읍시다. 하나님의 씨가진 자녀가 되어 고토의 주인공들이 다 됩시다. 신천지는 성경대로 지으진 창조주 하나님의 새 나라입니다. 확인하고 싶으시죠? 클릭 합시다! 클릭 클릭 클릭 !
에덴의 회복을 마무리하고자 하시는 하나님! 이제 그 회복의 역사를 마무리하려 하신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신은 이제 그 회복의 역사를 마무리하려 하신다.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넣어 영을 살리시고 생육, 번성, 땅에 충만,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셨다. 그러나 은혜도 모르는 사람아담은 창조주와의 언약을 지키지 못한 죄를 범하고 말았다. 미혹하는 뱀의 술수에 모든 권세를 빼앗기고 말았다. 죄와 함께 할 수 없는 신은 떠나 가시고 세상은 밤을 사랑하며 육천 여 년을 자라왔다.
잃어버린 에덴의 고토를 회복하시려고 만물 속에 감추어 두시고 구하는 자를 찾아 신 또한도 같은 시간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일하고 계신다. 세상의 눈으로는 절대 알 수도 없는 경이로운 재 창조의 역사를 끝내시려 하신다. 시대마다 선지자들의 입술을 통하여 그리고 성경을 통하여 예언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려 주시는데도 세상은 밤에 취해 비몽사몽 하고 있으니 가관이다. 그래도 박사라고 잘난 척 하고 있고, 목사라고 거룩하다. 천지도 모르면서 어찌 분간을 하겠는가? 이 시대 약속의 목자께서는 때를 알고, 나 자신을 알아라고 하신다. 자신이 밤을 동경하고 있는지 낮의 빛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는지 분별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신께서 Stop! 하시면 안식은 시작된다고 하셨다. 천국은 이 땅에 임하고자 준비를 마쳤는데 미련한 죄인의 습성에 물들은 무지함이 이 땅의 천국완성을 더디가게 하고 있다.
장성한 자의 신앙은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신께서 약속하신 나라는 종말을 고하며 태초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태초의 새 나라 새 민족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신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싶지 않은가? 깨어 나자. 썩어져 가는 구습에 염색된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창조의 빛이 되자. 꽁꽁얼어 붙은 마음의 빗장을 녹여 보자. 이제는 추수의 때다. 이한 낫으로 무르익은 알곡을 거두러 가자. 신께서 동행하신다. 똑똑한 신앙을 하라고 하신다. 빛을 싫어하는 어둠이 되어 있지 않은지 점검하자.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이 있단다. 성경을 보아도 알지 못할 것들이 너무도 많은데 신기하게도 궁금해 하는 신앙인들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처음 신앙을 하고자 할 때는 의욕도 넘치고 열성을 다하려 한다. 그러나 타성에 젖는 건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습관의 리듬에 심취해서 거룩한, 의로운 신앙인인양 모냥만 갖춰가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어디에 언제 어떻게 오는 것일까? 성경을 들고 교회로 나가는 발걸음들은 최소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좀 궁금해라도 해 줬으면하는 또 다른 발걸음은 거룩한 성이 임할 곳으로 힘차게 가고 있다.
깨닫는 자를 부처라고 한다. 석가모니불은 깨달아서 부처이고, 고승도, 보살도, 처사도 깨닫기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단다.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초파일에 등불을 밝히면 깨달을 수 있을까? 그런데 절에 다니는 불자들의 기도가 깨닫게 해 달라고 간절히 비는 것 같지는 않다. 모두가 만사형통을 기원하지 道를 통하게 해 달라고 빌지는 않는다. 맹신과 기복이 전부인양 신뢰하고 있지 않은가?
등의 크기에 따라 복의 크기도 정해지는 자비가 씁쓸하지 않는가? 예언도 성취도 없는 비워야만 하는, 내 탓으로 돌려야 하는 사상이 신앙의 근간이 될 수 있을까? 왜 사람들은 어려운 불경에 심취해 마냥 믿는다고 확신하고 있는 걸까? 천 년 후에 올 미래불을 기다린다는 어설픈 믿음도 무엇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 먹통이다. 종교는 하늘의 것을 보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다. 하늘의 것을 본 사람을 만나야 제대로 가르침을 받는 것이 아닐까?
농담같이, 장난같이, 마음내키는 대로 쉽게 쉽게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제대로 된 온전한 신앙을 하고 싶다면 아래 배너를 클릭하자. 만복이 가득한 보물창고도, 하늘이 보낸 사자도 만날 것이다. 클릭! 클릭! 클릭!
살아도 주를, 죽어도 주를 위해 사는 사명자들이 많다. 사나 죽으나 오직 주를 위해 이 한 목숨 받친다는 신앙고백은 자주 듣는다. 과연 그럴까? 주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를 모시고 오늘도 중언부언하고 있다. 목숨을 바쳐 신앙 하라면 나 자신부터 할 수 있을까? 죽어서 가는 천국이나 외쳐 대며 교인들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목회자의 양심을 확인하고 싶다. 사명은 생명이라고 말들만 무성하고 정작 알아야 할 성경예언의 지식은 전무하니 안타깝다. 소경같은 목자의 말에 귀기울이고 아멘만 부지런한 교인들의 결국이 염려스럽다.
목회자의 사명은 교인들을 천국으로 인도해야 하는 임무가 막중할텐데 아랑곳없다. 진리를 가리고 겉모습만 거룩한 체 목이 곧다. 사단 마귀 본연의 사명이 비방하고, 이간질하고, 훼방하고, 분리시킨다고 한다. 너무도 닮아 있지 않은가? 모두가 미혹의 사슬에 묶여 불사름의 심판을 기다리고만 있다. 오늘날의 때를 알아 앉은뱅이의 습성을 버리고 나왔으면 좋으련만, 눈앞의 안락함을 포기할 줄 모른다. 사명은 곧 생명이라고 잘난 척 마시고 겸손해 줬으면 좋으련만~ 천기는 구별하면서 때 분별은 못하는 신앙인들의 어둠을 언제까지 방치해야 할까? 깊은 수렁의 굴레를 감지못하는 무지를 깨울 수는 없을까? 천국문은 닫혀만 가는데 오만의 극은 멀어만 가니 통재라~
내가 본 천국은 꽃길도, 금길도 아니었다. 그러니 사명이 생명이라고 떠들지만 말고, 죽어서나 가는 천국이라고 유언비어만 난발하지 말고, 거룩한 척도 하지 말고 똑똑해 지자. 무조건 믿으면 맹종이며 맹신이 된다. 온전한 사명감당을 하려면 성경통달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제발 바라기는 낮아지길 기도한다.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 사는 목회자들의 사명은 무엇일까? 묻고 싶다.
교회를 다니면서 성경에 대하여 시험을 쳐 본 경험을 한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예언에 관한 시험 말이다. 생뚱맞게 웬 말이냐고 반문할 것이다. 문제는 쥐뿔도 모르면서 신천지를 이단이라고 입에 달고 사는 무식한 저들에게 보내는 경고의 신호다. 자신이 있는 자는 누구라도 괜찮다고 신천지 총회장님은 선언하셨다. 신앙을 성경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도전해 보라! 온갖 비방과 폄하만 하지 말고 표면으로 나아오라! 시험 문제는 100가지 밖에 안 된다. 굳이 따지고 싶지는 않지만 꼭두각시 놀음이나 하는 저들의 코를 납작, 입을 꼭 막아주고 싶다. 순 oo교회도 한때는 이단이라고 설쳐 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세가 불어나 한 통속이 되어 손뼉을 치고 있으니 가관이다.
이단은 사람이 분별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아니면 아닌 것이다. 언제까지 지속할 수는 없다. 처소를 마련하며 다시 오마 약속하신 예수님께서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귀있는 자는 들을 것이다. 때가 가까이 왔음을, 천국이 건설되고 있음을 감지하길 바라며 천국호에 오르기를 권면한다. 모르면 배우는 것이다. 아는 체 그만하고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자! 신천지의 문은 열려 있다. 하지만 문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기억하라! 성경시험은 왜 쳐야 하나? 시험을 쳐서 그 결과로 큰소리를 칠 수 있다면? 없다면 백기를 들고 나오시길..... http://cafe.daum.net/scjschool/E3qZ/1008: 신약의 정통과 사이비 이단
성경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신천지를 이단이라고 한다. 초림때 신앙인들이 예수님을 이단의 괴수 바알세불이라 칭했듯이 말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러나 신천지는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는 약속의 목자가 보고 들은 증인이 되어 신천지를 증거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단은 사람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이단이다. 조금 더 보태면 사단이 되는 것이다. 천지도 분간 못하고 깨춤에 장단놀음이나 하고 있으면서 신천지를 이단이라고 기만, 핍박한다. 이제 귀신의 때는 종말을 맞고 있다. 아래 글을 참고하시고 어디가 이단의 소굴인지 명확히 판단하고 구분하길 바란다.
내 친구는 신학대를 다닌다. 만학도의 꿈을 이루려고 한다. 그런데 헬라어 수업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헬라어? 이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있나? 신학대는 성경을 가르쳐야 하는 곳이 아닌가 ? 굳이 헬라어를 알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성경도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있고 요즈음은 성경이 어려워 쉽게 풀이한다고 개정 개혁판까지 나온 차제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수업을 받아야 할까? 성경을 사람의 능력으로 풀 수 있을까?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고 하셨다. 신학은 사람이 연구해서는 안되고 책이 열려 계시되는 때에 보고 들은 약속의 목자를 만나지 않으면 절대 알 수가 없다.
성경을 신학박사가, 교수가 연구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신앙인들이 좀 알았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다. 신께서 봉함한 책은 사람의 계명으로 해석되어지는 것은 범죄다. 때가 되어 밝히 일러주신다고 하셨다(요16:25참고). 그 때가 바로 지금이다. 값없이 돈없이 와서 듣고 깨달아 진리를 소유하여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라고 외치고 계신다. 복 있는 자는 귀가 있어 들을 것이다. 이것은 팩트다. 사실을 현실에 증거한 팩트다. 확인하자! 내 눈으로....... 신학대를 다닌다고 성경을 통달하는 것은 아니며 봉함한 책을 사람은 절대 풀 수가 없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요즘사람들은 똑똑하다. 하여 작은 의문이라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가나안성도가 됨을 알려드린다. 신학대가 성경을 가르쳐 주지는 않고 쓰지도 않은 헬라어나 시험을 치며, 교회치리나 가르치는 곳이 돼 버렸는지, 신학을 한다고 자부하신다면 자신이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본인들이 먼저 깨달았으면 좋겠다.
창세기 1장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수면 위에 다니시다가 빛을 찾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 재 창조의 역사는 빛으로 시작된다. 성경을 보아도, 읽어도 막연하기만 하시다면 하나님께서 찾으신 빛이 무엇이며, 언제 나타나는 것이며 누구일지를 궁금해 해 보자. 성경은 우리에게 천국을 찾을 수 있도록 기록하고 계신다. 소망만 하지말고 찾아 나서라고 부르고 계신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도 그 시대 신앙인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처소를 마련하여 다시 오신다 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외치고 계신다. 천국이 이 땅에 왔으니 회개하고 나오라고 손짓하며 계신다. 그러나 밤에 취한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관심이 없다. 오직 명예와 권세 찾기에 여념이 없다.
신앙은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위급할 때 찾는 수호신이 아니다. 이 땅의 천국을 찾으라 부르짖고 계시는데 무지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 땅의 천국은 이루어 지고 있는데 말이다. 아래글은 이 시대 천국을 이루는 약속의 목자의 글이다. 눈으로만 읽지 말고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 천국으로 뻗어 있는 길로 나아가자. http://cafe.daum.net/scjschool/E3qZ/1006: 진짜 바로알자 성경과 신천지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
녹음은 짙푸른데 시야는 뿌옇다. 부처님 오신날을 경축하는 연등제에 등장한 용의 입에 물고 있어야 할 여의주가 안보인다. 잃어버렸나? 혓바닥만 길게 뻣고 있다. 정말 어디로 갔을까? 만든 사람이 깜빡 잊고 만들지는 않았을텐데? 이유가 궁금토다. 바다에는 용이 사는 용궁이 있으며 용왕이 병들어 육지의 토끼간을 탐했으나 날렵하고 꽤많은 토끼는 용케 도망했다. 전래동화에 나오는 얘기이다. 용이 상상의 동물인 줄 몰랐을 때는 바다에 사는 줄 알았고, 지금도 어부들은 용왕제를 드린다. 용이 바다에 산다고 우리는 왜 굳게 믿고 신령한 동물로 믿으며 복을 빌었을까?
요한계시록 13장에 용이 등장하는데 소설책처럼 읽기만 하면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궁금하시면 클릭 하시라! 04006으로 신청하시면 성경의 모든 의문을 풀어 줄 것이다. 04006! 우리는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야 한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말이다. 용은 하늘로 승천 했을까? 상상의 동물인 용은 왜 성경에 등장할까?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한다고 사도바울은 말했다. 무엇이 어떻게 변화되는 것이며 마지막 나팔은 무엇인가? 요한계시록 8장, 9장에 6개의 나팔이 불려지고 일곱째 나팔은 계시록 11장에서 불려진다. 이 일곱째 나팔이 마지막 나팔인 구원의 나팔이다. 누군가는 말그대로 나팔이 부~웅하며 불려지고 있으며 이 소리가 구원의 나팔소리라고 말한다. 근거도 없고 실체도 없다. 막연하게 들린다고 하는데 누가 왜 부는지는 저 자신도 모른다. 마지막 나팔은 사도바울도 실체는 알 수 없었다. 계시록이 열려지기 전에는 천상천하에 아는 자가 없었다. 구원도 때가 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직 믿기만하면 구원받은 줄 착각하며 신앙을 키워간다. 카더라의 전형이다.
어쩌다 잠깐 궁금했지만 의문을 풀어 줄 사람이 없으니 그냥 타성에 젖어 마당만 밟는 습관적인 신앙에 길들여져 가는 것이다. 신앙은 농담같이, 장난같이 편한대로 하는 것은 아닐진데 본성을 망각하며 겉치레에만 바쁘다. 시대마다 택한 한 목자에게 보여 주시며 역사하셨지만 믿지 않았다. 오늘날은 하늘 정거장의 마지막 종점이 임박해 있다. 카더라에 익숙한 사고를 버리지 않으면 구원은 커녕 지옥 형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신앙은 농담이 아니라고 했다. 신앙의 변죽만 울리지 말고 생명수 강가의 나무가 되자. 달마다 12가지 실과를 맺히는 나무들이 울창한 천국을 향하여 발걸음을 떼어 보자. 복은 구하는 자에게 부어 주신다. 인류 최고의 희소식인 사망이 생명의 삼킴이 되는 오묘한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어 보자. 성경이 궁금하시면 아래 배너를 클릭! 클릭! 신앙은 성경대로 해야 함을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