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cheon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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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일 목요일

자존감의 척도는 무엇일까요?



정신 건강의 척도를 자존감이라 부른답니다. 여러분의 정신은 건강하십니까? 
이별이 두려워 부질없는 만남을 지속하고,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해 불안해 하고, 
우울하고 공허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방황하는 자존감에 스크래치를 내고 
있지는 않은지, 겉치레에만 온 신경을 쏟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시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내주고, 영원할 것 같은 우정, 사랑에 금이 가고 우리는 
너무도 많은 상처를 주체할 수 없어 술로, 여행으로 위안을 받으려 하지만 또 새로운 
벽을 만나며 반복된 일상을 살아 가고 있습니다. 

창조주께서 흙을 취하여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된 사람과 함께 살고자 하셨는데 
그들은 뱀의 미혹에 옷을 벗고 말았습니다. 신과의 약속을 경홀이 여긴 결과는 사망이 
왕노릇하는 혼돈과 흑암의 세상을 초래하고 말았지만 창조하신 세계를 버려두지 
않으시려 인내하시고 역사해 오시며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고 보고 듣고 믿으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존감이 넘친 교만은 죄의 가속만 더할 뿐 창조주의 본연의 뜻을 망각하고 
자신들만의 생각속에 즐겨 있기를 바랄 뿐 마음만 원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도 
죄를 몰랐고, 죄 값은 영원한 유황 불못의 심판인 것도 몰랐습니다. 

밤같은 무지를 깨닫지 못하고 오늘을 사는 우리 또한도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종말에 우리는 어떤 자존감을 회복하고 무엇을 채워야 하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담은 무엇을 벗었음이 부끄러워 무화과 잎사귀로 치마를 해 입었는지, 하나님께서는 
왜 가죽 옷을 입혔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의 밤은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안다하는 박사나 목회자들이 문자에 매여
자신의 생각들로 연구하고 비진리로 신앙인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기때문입니다.
실추한 자존감을 회복합시다. 정신이 살아 생동하는 생기를 받읍시다. 말씀을 받은 
자들을 신이라 하셨습니다. 내 자존의 위상을 높혀 신이라 불리우는 왕같은 제사장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