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회복을 마무리하고자 하시는 하나님! 이제 그 회복의 역사를 마무리하려 하신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신은 이제 그 회복의 역사를 마무리하려 하신다.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넣어 영을 살리시고 생육, 번성, 땅에 충만,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셨다. 그러나 은혜도 모르는 사람아담은 창조주와의 언약을 지키지 못한 죄를 범하고 말았다. 미혹하는 뱀의 술수에 모든 권세를 빼앗기고 말았다. 죄와 함께 할 수 없는 신은 떠나 가시고 세상은 밤을 사랑하며 육천 여 년을 자라왔다.
잃어버린 에덴의 고토를 회복하시려고 만물 속에 감추어 두시고 구하는 자를 찾아 신 또한도 같은 시간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일하고 계신다. 세상의 눈으로는 절대 알 수도 없는 경이로운 재 창조의 역사를 끝내시려 하신다. 시대마다 선지자들의 입술을 통하여 그리고 성경을 통하여 예언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려 주시는데도 세상은 밤에 취해 비몽사몽 하고 있으니 가관이다. 그래도 박사라고 잘난 척 하고 있고, 목사라고 거룩하다. 천지도 모르면서 어찌 분간을 하겠는가? 이 시대 약속의 목자께서는 때를 알고, 나 자신을 알아라고 하신다. 자신이 밤을 동경하고 있는지 낮의 빛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는지 분별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신께서 Stop! 하시면 안식은 시작된다고 하셨다. 천국은 이 땅에 임하고자 준비를 마쳤는데 미련한 죄인의 습성에 물들은 무지함이 이 땅의 천국완성을 더디가게 하고 있다.
장성한 자의 신앙은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신께서 약속하신 나라는 종말을 고하며 태초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태초의 새 나라 새 민족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신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싶지 않은가? 깨어 나자. 썩어져 가는 구습에 염색된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창조의 빛이 되자. 꽁꽁얼어 붙은 마음의 빗장을 녹여 보자. 이제는 추수의 때다. 이한 낫으로 무르익은 알곡을 거두러 가자. 신께서 동행하신다. 똑똑한 신앙을 하라고 하신다. 빛을 싫어하는 어둠이 되어 있지 않은지 점검하자.
정신 건강의 척도를 자존감이라 부른답니다. 여러분의 정신은 건강하십니까? 이별이 두려워 부질없는 만남을 지속하고,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해 불안해 하고, 우울하고 공허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방황하는 자존감에 스크래치를 내고 있지는 않은지, 겉치레에만 온 신경을 쏟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시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내주고, 영원할 것 같은 우정, 사랑에 금이 가고 우리는 너무도 많은 상처를 주체할 수 없어 술로, 여행으로 위안을 받으려 하지만 또 새로운 벽을 만나며 반복된 일상을 살아 가고 있습니다. 창조주께서 흙을 취하여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된 사람과 함께 살고자 하셨는데 그들은 뱀의 미혹에 옷을 벗고 말았습니다. 신과의 약속을 경홀이 여긴 결과는 사망이 왕노릇하는 혼돈과 흑암의 세상을 초래하고 말았지만 창조하신 세계를 버려두지 않으시려 인내하시고 역사해 오시며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고 보고 듣고 믿으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존감이 넘친 교만은 죄의 가속만 더할 뿐 창조주의 본연의 뜻을 망각하고 자신들만의 생각속에 즐겨 있기를 바랄 뿐 마음만 원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도 죄를 몰랐고, 죄 값은 영원한 유황 불못의 심판인 것도 몰랐습니다. 밤같은 무지를 깨닫지 못하고 오늘을 사는 우리 또한도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종말에 우리는 어떤 자존감을 회복하고 무엇을 채워야 하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담은 무엇을 벗었음이 부끄러워 무화과 잎사귀로 치마를 해 입었는지, 하나님께서는 왜 가죽 옷을 입혔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의 밤은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안다하는 박사나 목회자들이 문자에 매여 자신의 생각들로 연구하고 비진리로 신앙인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기때문입니다. 실추한 자존감을 회복합시다. 정신이 살아 생동하는 생기를 받읍시다. 말씀을 받은 자들을 신이라 하셨습니다. 내 자존의 위상을 높혀 신이라 불리우는 왕같은 제사장이 됩시다.
사람들은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어한다. 오래 살기의 비법이 있을까? 구구팔팔 이삼사라는 신종어가 있다. 구십 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 삼일 아프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죽음의 이상향이다. 사람의 3대 거짓말에도 죽고 싶다는 말이 있다. 오래 건강하게 즐겁게 살고픈 것은 나이들수록 민감해지는 부분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염원을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과연 답은 있을까? 답은 존재하지만 쉽게 찾지 못하도록 숨겨져 있다. 이 답이 성경 속에 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너희로 하여금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와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다라고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은 범죄치 않는다고도 하신다.
쉬운 듯, 어려운 듯 감은 없을 것이다. 건강과 젊음을 위해서라면 모든걸 아끼지 않는 인간의 사고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돈 없이 값 없이 받으라고 하셨는데 공짜는 신빙성을 못 느끼나? 가치를 재고 할 수 없는 말씀을 거저 준다는데도 바보같이 이단타령이나 하는 무지를 심판할 날이 있을 것이다. 약속도, 이루어지는 성취의 실상도 모르면서 어찌 신앙을 논할 수 있으랴, 세월은 유수같고 덧없이 간다라고 한탄만 하지 말고 오래 영원히 신과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선택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역사는 손톱이 자라듯 홀연히 이루어 진다. 일점 일획도 가감없이 이루시는 사랑의 실체를 찾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길 기도한다.
사람들은 맹목적인 신앙을 한다. 교회나 성당이나 절이나 신앙을 한다. 모두는 무조건 믿기부터 한다. 눈으로 확인 할 수 없는 신은 자신들이 다니는 곳에 상주한다고 착각을 하며 맹신한다. 과연 그럴까? ㅏ망, 여유를 부리며 호기롭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일까? 만석꾼도, 천석꾼도, 이병철 회장도 죽음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법없이 착하게 살아도 몹쓸 짓을 해도 결국은 사망의 길을 피할 수 없다. 아담은 930살을 살았고 므두셀라는 969세를 향수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껏 100세를 운운한다. 그것도 최근의 일이다. 아담의 범죄로 인간의 수명은 점차 줄어 들었고 오늘날은 왜 고령사회로 변화하고 있을까? 의학의 발달일까? 지구는 혼탁해져 가는데? 성경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게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신을 보여 하나님이라 가장하는 완악한 존재로 인해 눈과 귀가 막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때가 되어 택하신 한 목자를 통하여 밝히 증거해 주는 생명의 말씀을 길따라 나오면 영생과 천국과 구원은 말씀을 받고 지키는 자들의 소유가 될 것이다. 기대되지 않는가? 장수하고 싶은가? 영생하고 싶은가?
무지한 인간들은 혼돈하고 공허한 흑암중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른다. 부지불식간 지나는 천사의 음성에 귀 기울여 보자. 천국이 가까이 왔다. 죽어서 가는 천국은 지옥을 가장한 유황불못이다. 꼭 죽어서 지옥맛을 봐야 직성이 풀릴까? 맹신은 사망이다. 정신차리자! 이 땅의 천국을 찾기를 바래 본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신은 살아 역사하신다.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성경의 약속대로 6천 여년의 노정이 순리대로 이루어져 요한계시록이 실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계시록을 풀면 이단이다, 큰일난다, 절대 안된다라고 무식한 소리들을 하지만 실체들이 존재하며 이치에 맞게 일점 일획도 변궤없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죄의 습성이 눈과 귀를 막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선의 본성을 악이 짓누르고, 미혹함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창조주의 각본대로 세상은 돌고 돌아 끝맺음하려 하신다. 안식하고 싶으신 것이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같이 영생의 복을 허락하시며 임하고자 하신다.
신의 나라는 사망도 애통도 아픔도 곡함도 없는 평화의 나라다. 궁금하지 않는가? 하나님, 예수님을 애타게 부르짖다 죽어서 간 천국이 유황불못이라면 그때는 후회 할 수도 없다. 이미 끝이니까....... 호흡하고 그나마 잘났다고 어깨에 힘 좀 쓸 때 호기심이라도 발동해 보자. 세상의 일락만 쫓지 말고 창조주의 깊은 뜻을 찾아 나서자. 성경에는 미혹자들이 말하는 상징수가 아닌 실제의 수가 있다. 창조주께서 일일이 계수하시는 인맞은 자들의 수는 실 수다. 이렇게 명확하게 밝히 드러나는 성경의 비밀을 캐어 보자. 보물지도는 멀리 있지 않다. 한번 마음 먹으면 극락이 눈 앞에 보일 것이다. 마음의 구름을 제하고 빛나는 낮을 체험해 보자. 기독교는 체험신앙이라고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직접 경험해 보자.
천국은 죽어서 간다라고 믿는 신앙인들은 부활은 언제 하시려는지? 때가 되어 부활해야 하니까 화장도 하지 않는 신앙인들은 또 언제 다시 살아 나시나요? 그렇게 염원했던 천국에 갔는데 왜 또 부활을 기대하나요? 알지 못하면 자신들의 편리대로, 사람의 계명으로 성경은 왜곡되고 오해를 부릅니다. 눈만 뜬 소경이 되어 무늬만 정통을 치장하고, 거룩함으로 치부를 가리며 예수님을 믿노라 하는 오늘날의 신앙은 염불만 하는 결과물은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이 사람으로 하여금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온 땅에 육축과 땅과 기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시며 또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 번성, 충만, 정복하며 다스리라고 하셨죠.
그러나 우리는 작은 미물에도 놀래며, 사자 앞에서는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합니다. 창조주께서는 만물의 영장으로 빚어 주셨지만 물질의 노예가 되어 모두가 돈으로만 귀결돼 지는지 신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한심 하실까요? 천국의 비밀은 비유로 감춰두시고 징조를 보여 주시며 찾는 자를 기다리고 계시며, 알지 못하던 시대에 믿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셨죠. 하나님의 역사가 다 이루어지고 나면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시대를 안 믿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미리 약속하시고 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 제 잘난 맛에 길들여진 습성이 스스로의 무덤을 파고 있는 것입니다. 시민들의 소통을 위해 국민 마이크도 운영하는데 6천 년 동안 외쳐 온 신의 소리는 메아리로만 흩어 질 것인지 깨어 나야 합니다.
지금은 일곱째 나팔이 불려지고 있습니다. 기상을 알리는 그 나팔소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시대가 도래한다고 알려 주는 나팔 소리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재림을 막연하게 기다리고만 있지 말고 맞을 준비를 하자는 것입니다. 구약의 약속은 한 구원자를 보내 주셨고 신약은 또 다른 보혜사를 약속하셨습니다.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 교회들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의 사자가 오늘날 성경 66권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을 그것도 비유가 아닌 실상으로 증거하고 계십니다. 창세기 첫날 창조하신 그 빛이 새 천지를 하늘에서 이룬것 같이 이 땅에 이루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믿을 수 없어 카더라 방송에 익숙한 어리석음이 자신을 무저갱의 늪속으로 빠져 들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유행은 스쳐 지나 가지만 영원히 존재할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상기해야 합니다. 비방과 폄하는 사람이 만든 말 그대로 찌라시에 불과할 뿐, 현혹되지 맙시다. 6천 여 년을 인내하시며 살아 역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속에 감추어진 비밀들이 모두가 사람으로 나타난다면 믿겠습니까? 천국은 이 땅에 이루어짐을 눈으로 보여 주는데도 믿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지 맙시다. 후회는 자신의 몫입니다.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놓고 택하라 하지 않으셨는지요? 만민을 긍휼히 여기시며 역사를 마무리 지으시려는 창조주의 사랑을 깨달아 봅시다. 아래 교리비교 영상과 성경 수강 신청서는 보는 이들을 이 땅의 천국을 찾게 해 줄 것입니다. 망설이지 말고 용기 내어 보자구요.
초림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에 빛이 있어 낮이지만 밤이 오면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다라고 하셨다. 예수님 가신지 2천 여 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낮도 밤도 어김없이 맞았고, 줄곧 밤이여서 불편을 겪은 적이 있는가? 하늘에 해, 달, 별이 떨어졌지만 지구는 멀쩡하지 않은가?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있어도 하늘과 땅은 변함없이 존재한다. 성경이 문자대로라면 세상은 멸망, 폭발했어야 했다. 사람의 의식과 판단은 정말 변화무쌍하다. 신앙도 창조주의 뜻과는 전혀 다른 자기의 하나님을 만들어 쉽게, 편하게 하고파 한다. 각본의 주인은 신인데 주연도 아닌 조연들이 멋대로 각색을 하려한다. 엑스트라도 외면 당할려고 기를 쓰는듯하다.
자신들의 위안이나 삼으려고 신앙을 한다. 얼마나 혼란과 방황을 일삼으면 보이지도 않는 신에게 위안을 기대할까? 사람이 만든 조각상앞에서 천배를 하고 빈다고 효험이 있었던가? 뭔가를 했다는 뿌듯함 외는 무엇을 얻었었나? 한치 앞도 가늠 못하는 능력으로 자신도 모르게 신을 대적하고 있다면 회개해야 하지 않을까? 만국이 미혹되어 무너진 곳에서 나오라고 손을 내밀고 계신다. 지켜만 보지말고 일단 붙잡아 보자. 썩은 동앗줄이 아니라면 영원한 생명을 누릴것이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 오지만 붙잡는 자는 살 것이다. 잠에 취해 비몽사몽하면 안 된다. 만민이 구원 받길 원하시는 창조주의 깊은 사랑을 헤아려야 한다.
성경은 약속의 책이며 봉함되어 있다가 때가 되어 택하신 한 목자를 통하여 밝히 증거해 주고 계신다. 상식과 이치에도 맞고 육하원칙에 의거 증거하는 목자의 말을 경청해 보라! 전통이 정통을 이단이라고 폄하하고 비방하는 양심에게 묻는다. 요한계시록의 실상을 증거할 수 있는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평화의 일을 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권력을 남용하지 말고, 스팩만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지,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알고 계시는지 묻고 싶다.
내일 일은 모르니 오늘을 잘 살아야 된다며 맞장구를 치는 아줌마 부대가 지나간다. 주변에 뭔가 일이 있었던것 같다. 입으로만 되뇌이는 습관 또는 한 말씀 한다는 것이다. 만물의 주인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돈으로 환산하여 값을 매겼다면 생각없이 여유롭게 쓸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공기, 빛, 중력이 없었다면 지구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
그러나 인생은 감사는 커녕 당연시 하며 오히려 변질의 기수가 되어 오염의 수준이 심각에 이르러도 마냥 한가롭다. 일선의 책임자들만 바쁘게 서류 작성하기에 급급하다. 열심히 축적한 부도 오늘 저녁 네 영혼을 찾으시는 창조주가 계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일락만을 추구하다 결국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망각한 체 제 각각의 모습으로 살고들 있다. 의학은 날로 발전하며, 건강의 열기는 하늘로 치솟고, 자신은 영원할 것만 같이 여유롭다.
영
어리석음(얼이 썩음)은 누구의 몫일까? 한 치 앞을 모르는 인간의 예지력이 어찌 감히 신을 흉내 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를 신이라고 하셨다. 신이 되고 싶은가? 성경을 다독한다고 신이 될 수 있을까? 아래의 배너를 클릭하면 천국과 신이 될 수 있는 행운의 문을 마주할 것이다. 들어가 보자. 엿보지 말고 용기를 내어 보자.
공항은 연휴의 특수를 누린다고 뉴스는 전파를 탄다. 말 그대로이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특혜는 아닌것 같다. 누군가는 이들을 보며 복도 많다라고 할 수 있지만 과연 그럴까? 복! 이 복은 과연 무엇일까? 성경에 기록된, 신이 사람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이 진짜 복이 아닐까? 복자를 파자하면 한 사람이 네가지 밭을 보여 주는 것이 복이다. 밭은 무엇이며 또 보여주는 사람은 누굴까?
신은 사람들에게 죄사함의 방법과 흑암에 빠져 허우적대는 고통과 영원한 생명을 찾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셨다. 알고 믿고 깨달아 행하는 자에게 이 엄청난 복을 허락하신다. 생명을 주관하는 창조주의 뜻을 피조물들이 어찌 대적할려고만 꼼수를 부리는지 상상불가다. 이 세상이 짝퉁의 놀음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역사는 눈에 보이는 육체를 도구 삼아 일을 하신다. 짝퉁또한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성경은 참 하나님을 알고 믿어 구원에 이르라고 하셨다. 참이 있다는 것은 거짓이 있다는 것이다. 신앙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하는 것이다. 가자 가자하니 따라 가고 착하게, 바르게 살아라 한다고 우리 목사님 말씀이 참 좋은 것이 아니며 신앙은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계획을 제대로 알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림은 하늘의 해, 달, 별이 어두워지고 떨어지고 난 뒤에 임하신다고 하는데 이 뜻을 알려주고 있는가?
세상말에 절도 모르고 시주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어 따라 장가는 우를 범하지 말자. 밝히 알려 주는 곳을 찾아 들어보자. 인간은 신의 능력을 흉내도 낼 수 없다. 군중심리에 편승하여 눈 앞의 천복을 놓치는 바보가 되지 말자. 요강에도 복, 숟가락에도, 이불 깃에도, 베개닛에도 복을 수 놓았던 조상들의 염원을 좀 이루어 드리자. 이 땅에 이루어지면 하늘의 영들도 기뻐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이 땅에 하루속히 완성하여 아버지 하나님 모시고 천년, 만년 함께 살고자 기도하는 하나님나라 백성들이 존재한다. 누구는 비방, 폄하하며 자신들이 정통인양 치장하지만 짝퉁은 언젠가는 그 본 모습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어떻게 해서라도 들통나는 그 날들을 연명하고픈 간절함이 있을 뿐이다. 사람도 아닌 신의 흉내를 감히 도용하다니 간 큰 존재임은 틀림이 없는것 같다. 6천 여 년을 인내하신 하나님의 나라 회복을 감히 누가 훼방할 수 있을 것인가? 보이지 않는다고 부인할 수 있을까? 초림 ,예수님은 어떻게 믿을 수 있었나?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보내주마 하신 내 사자 곧 약속의 목자 이긴자를 통하여 이 땅의 천국은 이루어지고 있다. 듣던지 아니 듣던지 소리없이 그리고 일점일획도 가감없이 재 창조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신천지가 이단이라는 오명으로 치부해버리는 사이에 재림의 역사는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신의 역사가 한 목자를 통하여 밝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믿노라하는 신앙인들이여! 눈뜬 소경이 되지말며, 귀있는 귀머거리도 되지 말며 올바른 신앙을 하자.
성경대로 이룬다는데 왜 딴지를 거는가? 같은 성경을 보는데 누구는 말씀을 깨달아 천국의 백성됨에 부족함이 뵐까 노심초사 노력 또 노력하며 실력 채우기에 여념이 없는데, 빨리 와서 배우고 깨달아 같이 가자는데 무슨 배짱으로 앉은뱅이 신앙들을 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이제 때가 얼마남지 않았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이 땅에 건설되고 있다. 사단 마귀의 놀음에 장단 맞추지 말고 눈을 뜨고 귀를, 가슴을 열자. 정의는 언젠가는 승리의 깃발을 드날린다. 그 날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깨달았으면 정말 좋겠다.
참 많은 생각, 많은 일들이 스러지고 지나간다. 신은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그래서 선택은 스스로 해야 한다. 생사 복화를 주관하시는 창조주께서 살기 위해서라면 생명을 택하라 하셨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지만 생명에 자유할 수 있을 것인가는 생각을 못한다. 늙어서, 아파서, 판단의 실수로 가야하는 길은 정해져 있다라고 단정짓는다. 그러나 신이 낙원을 창조하실 때는 다스리고 충만하며 번성하여 지키라고 주셨다. 영원히 말이다. 하지만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의 문은 닫혀 버렸다. 신과의 약속을 져버린 것이다. 그 때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지상은 낙원의 세계로 분쟁, 비방, 전쟁이라는 등의 단어조차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있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결과로 신은 6천 여 년을 인내하시며 기다려 오신 것이다.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긴 여정을 이제는 결단하려 하신다. 신이 창조하신 세계를 제 것인양 주도한 사단마귀를 무저갱에 가두고 만국을 생명의 말씀으로 소성시키려 하신다. 거저 주시고자 하여도 듣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 무지한 심령들을 위해 그래도 기회를 주고자 하신다. 약속하신 그 예언을 이루고자 홀연히 실상으로 나타내고 계신다. 보고 들은 증인이 이것들을 증명하고 있다. 그것도 육하원칙에 의거 들려주고 계신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생명의 빛으로 오시며 성경이 말씀하시는 영생을 알게 하실 것이다. 무조건 주여 주여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깨달아 행함으로 참 신앙을 하는 똑똑한 신앙인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게시한다.
모든 걱정과 고민을 속시원하게 해결해 준다고 하네요. 어느 영통한 철학관의 홍보 문구입니다. 다같은 하루를 살아도 누구는 걱정없이 맘 편히, 즐겁게 보내는데 당신의 삶은 어떠시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가 있으신지... 어떻게 이 모두를 속시원하게 해결해 줄 것인지 궁금은 하지만 신빙성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왜냐구요? 그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제주도 서귀포에만 보이는 노인성을 보기위해 관광객들이 모여 온다고 합니다. 건강과 장수와 부를 빌기 위해서 말입니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한 우리의 심리 탓일까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영의 세계는 육체를 집삼아 좌우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6천 여 년을 인내하신 하나님의 성신은 이제 이 세상으로 오시고자 하십니다. 눈에 안 보인다고 태평할 시간은 없다는 것입니다. 잠자지 않는 택한 백성들이 하나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제발 좀 깨달아 이 땅의 천국을 찾기를 바랍니다. 때가 차면 천국문은 닫힙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은 보지도 않고 잘도 믿고 소망하면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천국을 보여 준데도 거부하는 사람속의 존재는 과연 누구일까요?
똑똑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계십니다. 성경을 얼마나 아는지 시험을 쳐서라도 확인 하시고자 하십니다.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져 나타난 실상을, 실체를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구약은 약 3,500여 년 전에, 신약은 약2,000여 년 전에 기록 되었다면 이 세월을 이길 장사가 있을까요? 영어는 교과목이라 열심히 했지만 정작에 회화 한마디 하려면 두려움이 밀려오던 것과 비슷하다면 비교가 될까요? 오뉴월 하루 볕도 무섭다고들 얘기합니다. 신약 계시의 때는 얼마되지 않았다고 말 할 수 있나요? 차제하고 천국은 이 땅에 이루어지며 신은 임해 오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신과 사람과의 약속이 이루어져 나타나는 실상의 때에 신천지를 한심해 하는 심각한 밤을 만났다. 내세울것도 없으면서 뭐가 그리도 당당한지 이제는 화보다는 안타까운 맘 뿐이다. 그래도 사랑하사 불러 주심을 깨닫지 못하고 그림자만을 붙들고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듣지 못했다 핑계는 대지 못 할것이다. 뜬구름같은 소망을 백번 키운들 무엇하나? 죽어서 가는 천국은 보장받을 수 있나?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있음을 보여주시고 부르시지만 끝내 알지 못하는 곡과 마곡같은 존재가 되고픈가보다.
나름은 꿈의 은사가 있다고 은근히 자부하며 알지 못하는 열심으로 교회를 섬기지만 봇물같은 후회를 어떻게 감당할런지 심히 걱정된다. 인간의 능력이 우째 신을 감히 대적할려고 작정을 한단 말인가? 이제 지칠때도 됐건만 마지막 갖은 심혈을 토해내고 있다. 어리석기 짝이 없다. 회개할 날도 끝나가고 있다. 천국문이 닫히기 전 돌아오길 바란다. 집나간 탕자를 위해 아버지께서 잔치를 준비하고 계신다. 더 늦기전에 참 진리를 찾아 개과천선 하길 바란다.
우리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들을 남발한다. 다음에 보자, 밥 한번 먹자 등등... 약속은 반드시 지키라고 하는 것이지만 예사롭게 의례적으로 한다. 사람들과의 약속은 그렇다치고 신과의 약속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신도 모르고 약속이 뭔지도 모르는데 우짜라꼬? 해 버리면 답이 없다. 그렇다면 알려 주고 믿고 지켜야 한다고 하는데도 몰라라 외면하는 대상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날 우리는 재림을 기다리고 바라며 신앙을 한다. 언제. 어떻게, 어디에 오실지 징조로 보여 주시며 실상으로 이루어 가심을 체험하게 하여 주신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 우리 눈 앞에 나타났고 또 만들어지고 있다. 약속을 알고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냐고 반문이라도 좀 했으면 좋으련만 자신들의 정체를 모면하기 위해 갖은 모략과 핍박을 일삼는 천인 공로할 일들만 일삼고 있다. 어찌하리~~
신은 택한 사람과 약속하시고 그 때와 시와 징조를 보여 주시고 홀연히 이루어 가신다. 사람의 지혜로는 불감당일 뿐더러 사실로 기정화되어 소경이 아니라면 경악할 수 밖에 없다. 어느 영화의 장면같이 영은 육신의 몸을 빌어 간절한 것을 전달하고자 한다. 허구에 지나지 않을까? 하나님께서는 결코 보여 주지 않고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하셨다(암3:7참고). 인류의 세계사 속에 성경의 노정이 숨겨져 있듯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역사속의 주인공들이 되어 기식하며 있다. 빛과 비와 공기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신의 사랑 또한도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바라고 계신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숙고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글을 올린다.
우리는 행운이라는 기회를 은근히 바라고만 있고 그리고 마냥 기다리기만 하고 있습니다. 요행을 바라고만 있는 것이죠. 그러나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 가지만 이 기회를 놓쳐 버리는 실수를 합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나중은 창대할 것을 말씀하셨지만 듣고도, 보고도 믿지 못한다면 하늘이 허락하신 복을 외면하는 절대 절명의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스스로 초래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신이 있다면 이 사회가 왜 이리 혼란스럽냐고 격분들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신을 원망하기 앞서 신을 찾기라도 했을까요? 사고의 깊이도 배려도 없는 단순무지의 생각들은 넘쳐나고 각박한 현실은 절대 참 신을 찾으려고는 하질 않습니다.
그나마 믿노라는 신앙인 조차도 구태의 되풀이만 하고 있으니 어떻게 기회를 행운으로 받을 수 있단 말일까요? 진정한 승리자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Comport zoen에 길들여져 천지분간도 못하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말고 열린 생각과 도전하는 적극적인 사고로 전환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천복이 우리를 찾고 있으니 말입니다.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세대, 이 땅에 이루어지는 엄청난 사실임을 직접 확인하고 얼마남지 않은 천복을 소유하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 Comport zoen: 우리 몸이 편안함을 느끼는 안락지대와 같은 익숙하고 편안한 상태를 말함.
사람들은 믿는 신앙이 뭐냐고 묻는다. 불교, 기독교, 카톨릭, 여호와의 증인, 대순진리, 남묘호랑개교다 하며 각각의 답을 한다. 신앙! 믿고 우러러 바라보는 것이다. 무엇을 믿고 경외하는 것인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이신데 믿는 신들은 이리도 각양각색인가?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왜 하나님은 사단마귀를 만드셔서 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가라고 한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사단마귀를 양산하셨는가? 미리 알려주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니 성경에 밝히 알려주고 계시지는 않을까? 흐미하고 어리석은 완고함은 뒤로하고 거듭나는 올바른 신앙인의 길을 선택하시길 권면드립니다.
모든것은 눈 깜빡 할 사이에 변할 수 있지만,신은 결코 눈을 깜빡거리지 않는다라고 한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신발이 헤어지도록 다녀 봐도 제자리 걸음인 내 일상의 지루함 ! 안개같은 신앙은 천리 만리 미로를 헤매며 지천에 늘려 밟히고 있었다. 어느 출근길 부지불식간 찾아온 천사는 조심스레 빛의 나라를 소개했으며 나는 블랙홀같은 말씀의 감동에 사로 잡히고 말았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유일하신 신, 하나님 ! 우리의 신원에 귀 기울이시며 응답하시는 하나님 ! 천상에서 지상으로 오시고자 분주하신 하나님 !
오랜후의 오늘날이 실상이 되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 전무후무한 일들을 우리만 알기에 벅차 전하려 하면 이단으로 매도하고 귀를, 눈을, 막고 감아버린다. 비진리의 자부심과 교만이 풍성한 오늘날의 신앙을 대표하는 목자님들, 천국의 대변자인양 지위가 하늘을 찌른다. 6천 년 인내 해 오신,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 신통이 방통을, 천법이 이 땅에 선포되어 지상낙원을 이루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해 오실때 어떤 권세로 저들은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겁을 상실한 무지한 심령들 ! 되돌아 올 때는 이미 늦은 후회를 동반하지나 않을지 심히 염려스럽다.'
신의 부름을 받은 약속의 목자는 천명을 전하기에 시간이 분주한데 지켜만 보는 자신또한 민망하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 하신것 같이 말씀이 내 안에 거할 때 성령또한 동행할 것이다. 신령함도, 거룩함도, 천신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부단한 지혜로 깨달아야 한다. 세상을 보고 있어도 머리와 생각은 오직 신선한 천기로 생명나무 잎사귀의 사명을 지키며 실천하는 아버지의 자녀로 거듭나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날 배운 기록을 정리하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았던 신명을 기억하며, 이 땅에 이루어질 낙원을 소망하며 주어진 천명을 지켜 나아 가야 할 것이다. 오늘도 무시로 상시로 기도하며 오실 날을 손꼽아 본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계 22: 20~21참고). 성경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