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cheon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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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8일 수요일

신앙의 꼰대는 누구일까요?



꼰대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추억의 끈을 놓지 못하고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만 하는 과거 지향의 사고를 
말한다는군요! 근데 은근 친근감은 있네요. ^^

신앙의 꼰대는 없을까요?
구약에 매여 십자가 지신 예수님만 붙들고 오로지 보혈의 댓가로 죄사함 받은양 
으시대며 있는 모양새는 꼰대가 무색하지 않습니까?

2천 여 년전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약속을 다 이루셨고 처소를 예비하여 다시오마 
새로운(신약)약속을 주셨지만 이 약속을 아는 신앙인을 찾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만물 속에 감추어 두시고 누가 나를 찾나 지켜 보시는  하나님! 
얼마나 애타 하실까요?

인내하시고 또 인내하시는 하나님! 이제 땅의 것 좀 내려 놓고 아버지 손 잡고 
복된 곳으로 걸어 갑시다. 증험도 성취도,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아 놓고 
혼인잔치에 청하고 계시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카더라는 카더라일 뿐 실체를 증거하는 복 된 나팔에 집중하십시오!



신앙인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지하도 쇼핑몰 앞을 40중반은 돼 보이는 남자가 20대같은 차림으로 나이에 맞지 
않게 기웃거리며 젊은 척을 한다. 안쓰러워 보인다. 여자의 전유물인 줄 알았더만 
아저씨도 예외는 아니다.

성경에도 옷의 종류가 나온다. 구약에 제사장들이 입었던 에봇을 비롯한 굵은 베옷, 
흰 옷,  세마포 옷, 많은 물 위에 앉은 여자가 입은  자주빛과 붉은 빛 옷 등등... 
신앙을 하면서도 눈으로만 스쳐 지났던 구절들, 그리고 옷들,  세마포를 입고 잿물에 
씻어야 하는 속 뜻도 모른체 신앙을 해 왔다.

애디오피아 내시같이 알려 줄 자가 없으니 어찌 알 수가  있었겠는가? 
무작정 믿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고 시작한 신앙을, 누구 탓을 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제대로 알고 신앙을 해보자. 하나님께서 영생을 유업으로 주신다니 
온전한 신앙을 해 보자.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엄청 난 곳으로 우리를 
불러 주실 때 읍소하고 따라 가 보자. 만물의 창조주께서 한량없이 퍼 준다 하지 않는가?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께서 구원해 주신다 하지 않는가?
좁고 협착한 길 끝에는 사람이 상상도 못 할 무능도원이 기다리고 있다지 않는가? 
게임의 캐릭터를 찾고자 방황하지 말고 태초의 본 모습을 찾아 나서자. 

지금의 때에 신앙인들이 입어야 할 옷은 무엇인지, 그 옷을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에게 
잿물을 받아 씻어야 하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흰 옷을 입은 큰 무리들이 몰려 오기전에 좀 일찍 달려오면 안 될려나?





2017년 3월 7일 화요일

신천지, 요한 계시록이 실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약 2천 년전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환상으로 본 요한계시록이 
오늘날 실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감각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왜 신앙인들에게 성경이라는 경서를 주셨을까? 열심히 읽기만 하면, 
쓰기만 하면, 자신들이 필요할 때 한 구절 인용해 쓰라고 주셨을까?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것은 일이 이룰 때 믿게하려고 기록하셨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리고 자기의 비밀을 종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 결코 행하심도 
없으시리라 하셨다. 

성경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깨달아 행함으로 지키라고 주셨지만 
약속을 알고 싶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기독 신앙인이라고 할수 있는가? 





점잖게 차려입고 거룩한 걸음으로 가는 것이 교회가 아니다. 교회! 모여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데 인터넷이 교회가 되어 토요일에 목사님을 뵙는 것은 실례라는 일화도 있다. 

어찌하여 신앙인의 현주소가 이리도 혼돈과 흑암의 현장이 돼 버렸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변궤치 않는 신의 역사는 기록대로 소리없이 이루어 지고 있다. 
성경대로 나타나는 순리를 감히 인간이 대적할 수 있을까?

이 엄청난 사건의 핵심 인물로 불러 주시는데도 불신의 늪에 빠져있다면 무한한 사랑도 
인내의 한계를 긋지 않을까? 좋은 말로 할 때, 선택되는 기한내에 부를 때, 더하여 
주실 때 속히 오면 얼마나 좋을까?

교회가 하늘로 들려 올라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성전으로 임하여 오심을 아래 영상으로 확인하시길 당부드린다.




2017년 3월 6일 월요일

하나님께서는 6천 여 년을 인내하셨는데 우리는?



될 사람, 된 사람, 안 될 사람등 별별 사람들이 아웅거리며 살아 간다. 
잘 생긴 사람, 못난 사람, 고운 사람, 못난이등 각양각색의 모습들로 지구촌이 
움직여 가고 있다. 하나의 계기로 나라가 분쟁하고, 정치가 맞불을 놓고, 
권력을 위해 과정은 치열하다. 

그러나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자신의 일상에만 충실한 소신파도 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이런 만가지 사고들로 심령을 창조하셨을까?
생육, 번성, 충만, 정복하여 다스리라고 복을 주시지 않았는가? 

명령대로 순종했으면 반목이라는 어리석음도, 인생이 걸어야 할 순리같은 여정도 
생겨나지 않았을텐데 하와의 미혹은 치명타였다. 이 무지한 태동으로 인하여 
창조주께서는 6천 여 년을 인내하시며 사랑의 결실로 끝맺음 하려 하신다.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 하셨고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한낱 짐승일 수 밖에 없었다. 
신 앞에서 사람이 잘 났다고 하늘을 향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 본다고 
표현하듯이 절대 내려다 볼 수 없다. 산정상에서? 비행기에서? 불가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나누고자 역사하시는가? 천국과 구원과 영생이다. 
구원은 노정순리대로 나타나며 그래야만 천국도 영생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 
사람들도 자손에게 재산을 상속하듯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한다. 




시대마다 택한 자녀들의 배도로 계획을 이루시지 못했고 결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다시 오마 약속하신 그 예언을 이루시려 하신다. 아니 홀연히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이 느끼지 못할 뿐이다. 신인합일의 결국을 보시고자 하신다.

6천 년의 장구한 역사는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창조의 날을 맞이하고 있다. 
땅 끝에서부터 땅 모퉁이에서부터 불리운 종, 동해와 서해가 있는 곳, 나누인 곳에서 
이 엄청난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남의 눈치보지 말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의연히 
걸어가면 좋으련만, 믿기가 그리도 어려운지 고집불통이다. 언제까지 기다려 주실지 
신의 인내를 테스트하지 말기를 바란다.






2017년 3월 5일 일요일

이 땅의 천국은 당신을 기다립니다.



모든 걱정과 고민을 속시원하게 해결해 준다고 하네요.
어느 영통한 철학관의 홍보 문구입니다.
다같은 하루를 살아도 누구는 걱정없이 맘 편히, 즐겁게 보내는데 
당신의 삶은 어떠시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가 있으신지...

어떻게 이 모두를 속시원하게 해결해 줄 것인지 궁금은 하지만 신빙성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왜냐구요? 그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제주도 서귀포에만 보이는 노인성을 보기위해 관광객들이 모여 온다고 합니다. 
건강과 장수와 부를 빌기 위해서 말입니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한 우리의 심리 탓일까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영의 세계는 육체를 집삼아 좌우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6천 여 년을 인내하신 하나님의  성신은 이제 
이 세상으로 오시고자 하십니다.

눈에 안 보인다고 태평할 시간은 없다는 것입니다. 잠자지 않는 택한 백성들이 
하나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제발 좀 깨달아 이 땅의 천국을 찾기를 바랍니다.
때가 차면 천국문은 닫힙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은 보지도 않고 잘도 믿고 소망하면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천국을 보여 준데도 거부하는 사람속의 존재는 과연 누구일까요?




똑똑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계십니다. 성경을 얼마나 아는지 시험을 
쳐서라도 확인 하시고자 하십니다.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져 나타난 실상을, 실체를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구약은 약 3,500여 년 전에, 신약은 약2,000여 년 전에 기록 되었다면 이 세월을 이길 
장사가 있을까요? 영어는 교과목이라 열심히 했지만 정작에 회화 한마디 하려면 두려움이 밀려오던 것과 비슷하다면 비교가 될까요?

오뉴월 하루 볕도 무섭다고들 얘기합니다.
신약 계시의 때는  얼마되지 않았다고 말 할 수 있나요?
차제하고 천국은 이 땅에 이루어지며 신은 임해 오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2017년 3월 3일 금요일

클릭! 첫째 부활의 주인공이 됩시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잘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과, 실수도, 실패도 또한 좌절을  맛보기도 
합니다. 모든 노력의 결과가 보상을 받는다면, 후회가 없다면, 그것만으로도 뿌듯하고  
만족스럽지 않을까요?

신앙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제대로 알고 믿고 깨달아 지킬 수 있다면 더 바랄것이 
없겠지만 또 다른 하늘의 반란으로 금잔은 음행이 가득한 물섞인 포도주로 변질되어 
부패하고, 죄악이 관영한 세상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아무도, 누구도 알 수 없는 암흑 세상으로 변해 버렸고 새로운 빛이 
임하여 재림의 때를 알려 주는데도 도대체 감각이 없고, 모태 신앙의 자부심과 교회를 
다닌 신앙의 년수로 믿음의 잣대가 되는 요지경에 이른것입니다. 

천국은 비유로 봉함되어 있었고 때가 이르러 실상으로 예언이 풀어져 가고 있는데 
밤 이슬만 좋아라하는 사단의 속성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우째스까요? 





성경이 무단히 베스트셀러일까요?
인간의 능력으로는 절대 흉내도 낼 수 없는 이 땅의 천국을 찾는 설계도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마지막 나팔에 홀연히 변화 된다고 합니다. 구원은 노정 순리대로 이루어 
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의 역사를 거스를 수 있나요? 돈없이 값없이 원하는 자에게 베풀어 주실 때 생명의 
동앗줄을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누군가는 아침 일터에서 미끄러져서, 누군가는 질병으로 
등등 죽음에 이릅니다. 이런 황당한 경우를 당하면 흔히들 얘기 합니다. 
살아있는게 사는게 아니라고.....

그러나 생명의 말씀은 무시하고, 외면하고 핍박하고 이단시 하며 끝간데를 모릅니다. 
구원은 받았다고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새 언약을 알아 믿고 행하는 자라야 약속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좁고 협착한 길을 쉬운 지름길로 안내합니다.

세상의 욕심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잘 하시지 않나요? 선택은 자신의 몫입니다.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하신다면 깊은 잠에서 깨어 나십시오. 
지금은 나라와 제사장의 자격을 갖추는 때입니다. 첫째 부활의 주인공이 됩시다. 
이 땅의 낙원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2017년 3월 2일 목요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없다?


우리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너진 하늘에서 어떻게 하면 솟아날 방도를 찾을 수 있단 말일까요? 
아무리 극한 상황에서도 헤쳐나갈 방도는 있다는 말이겠지만 좀은 막연하게 
느낄수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늘의 해,달,별이 어두워지고 떨어지는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이 무너진다면 용빼는 재주가 있던들 어찌 솟아날 곳을 
찾을 수 있단 말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만물 속에 감추어 두시고 찾기를 원하고 바라고 계십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하지만 풀 한포기 만들지 못합니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창조주께로 나아가지 않으면 정해진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진화와 창조가 토론의 주제가 되기도 하지만 결론에 이르렀나요? 신의 능력을 감히 
상상할 수 조차도 없는것이 인간의 한계가 아닐까요?
그래도 잘났다고 거드럼을 피는 어리석은 사람도 적잖이 있기는 합니다.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이럴것이다 저렇지 않을까하는 소경같은 목자들도 
포함해서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만민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데 어느 한 목사님은 
자기 교회만 하늘로 들려 올라간다고 휴거를 말하며 교인들을 소경과 귀머거리가 
되도록 종용하며 사리 사욕만 채워 세간을 장식하는 파렴치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떠나가셨던 하나님께서는 다시 오신다고 징조와 기한을 실상으로 
보여 주고 계시며, 사도바울이 말한 마지막 나팔(일곱째 나팔)은 불려지고 있는데 
잠에 취해 깨어 날 줄을 모르는 무지한 밤들은 태평하기만 합니다.

약속의 목자와 새 나라 새 민족 백성들만 분주하며 애태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천국을, 구원을 주신다는데 불구경하듯 먼데만 주시하는 어리석음 
또한도 저들의 몫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만국소성이 아버지의 뜻이며, 천국의 
문은 점점 높아져만 가는데 언제나 오시려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