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이 혹독한 눈보라에 갇혔다. 봄의 질주를 누군가는 잡고픈가 보다. 밤새 소리없이 눈이 내려 풍경을 바꾸고 만개한 꽃잎은 상채기를 내며 새 잎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계절의 순환은 여지가 없고 우리의 몫은 감탄으로 남는다. 이 차디찬 풍경이 사라지면 살랑대는 봄바람이 불 것이다. 그리고 아웅거리며 살아들 갈 것이다. 어느듯 맞은 나이의 황혼을 느낄 때 쯤 통한의 노을을 감상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과의 이별을 무심히 준비할 것이다.
아담의 나이는 930세 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6천 년 전에는 팔, 구백살을 향수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껏 팔, 구십을 산다. 창조주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께서는 떠나가셨다. 그리고 사망의 세력인 사단마귀가 주인공인양 행세하며 공중권세를 휘두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당연시 여기게 되었다. 창조주께서는 사람을 어떤 모양으로 창조하셨을까?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 번성 충만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다. 즉 만물의 영장으로 빚어 주셨지만 사람의 모양은 어떻게 변질되었는가?
작은 미물에도 자지러지고 감지능력도 없다. 천국은 바로 지척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나팔을 불어 알리고 있지만 관심이 없다. 창조주의 관심은 어디에 있을까? 성경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신앙인들을 주목하고 계실까? 절대로 NO다. 아예 관심밖이다. 아버지나라 천국을 이 땅에 완성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약속의 목자를 따라 온전한 신앙을 듣고 믿고 지키는 신천지인들 외는 기억지 않으신다. 사실여부는 직접 들어보고 판단하길 바란다.
누구나 꽃길만 걷기를 원한다. 승승장구는 내 길일 것만 같은 기대감에 밤잠도 설쳐 본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만만찮음에 좌절하며 우울해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리라고 하셨다. 창조주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괴리가 변화일까? 변질일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는데 그 시대의 종교인들이 십자가에 돌아 가시게 했다. 과연 누구를 믿고 신앙 생활을 했단 말일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이었다. 오늘날 재림의 때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께서 보내는 사자를 믿지 않는 것이 그 증거이다. 성경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고 폄하하는 집단은 창세기의 하와를 미혹한 뱀의 실체들이다. 육 천 년을 자랐으니 용이 되었다. 물없는 광야를 주관한 용은 이미 잡혔다. 하나님의 통치 시대가 가까워 온다. 사단의 농된 올무를 벗어 버리고 자유를 찾자. 진리는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무릇 지킬만한 마음을 다잡고 온전한 신앙을 하시길 기도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
날로 후패하고 완악해지는 사람들의 행동과 말투는 경악에 가깝다. 세상을 지으실 때 창조주의 뜻과 계획을 제대로 알고 깨달아 지켰다면 어떻게 변하여 왔을까? 아담이 벗었음을 부끄러워하여 동산 나무 뒤에 숨은 때부터 지금까지 요지경인 혼돈속에 휘말려 천지 분간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약속되지도 않은 자기교회 목사님은 정통? 이고 신천지는 이단이라고 한다. 마귀가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는 말씀은 눈에 보이지 않는가 보다.
눈과 귀를 막고 있는 존재를 알 수 없기에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창조 하실 때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리라고 하셨지만 현실은 미물보다 못한 존재로 타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이단이라 핍박하고 비방하는 신천지는 이 땅의 천국임을 선포하고 계신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파하라고 하신 명령을 기억하는가? 신천지인들은 하나님의 6천 년 역사의 예언이 실상으로 나타났음을 확인했다. 손으로 만질 수도 소통할 수도 있다. 마지막 일곱번째 나팔의 소리가 들리는가? 제대로 알고 깨달아 회개의 장으로 서둘러 나아 오자.
될 사람, 된 사람, 안 될 사람등 별별 사람들이 아웅거리며 살아 간다. 잘 생긴 사람, 못난 사람, 고운 사람, 못난이등 각양각색의 모습들로 지구촌이 움직여 가고 있다. 하나의 계기로 나라가 분쟁하고, 정치가 맞불을 놓고, 권력을 위해 과정은 치열하다. 그러나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자신의 일상에만 충실한 소신파도 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이런 만가지 사고들로 심령을 창조하셨을까? 생육, 번성, 충만, 정복하여 다스리라고 복을 주시지 않았는가? 명령대로 순종했으면 반목이라는 어리석음도, 인생이 걸어야 할 순리같은 여정도 생겨나지 않았을텐데 하와의 미혹은 치명타였다. 이 무지한 태동으로 인하여 창조주께서는 6천 여 년을 인내하시며 사랑의 결실로 끝맺음 하려 하신다.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 하셨고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한낱 짐승일 수 밖에 없었다. 신 앞에서 사람이 잘 났다고 하늘을 향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 본다고 표현하듯이 절대 내려다 볼 수 없다. 산정상에서? 비행기에서? 불가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나누고자 역사하시는가? 천국과 구원과 영생이다. 구원은 노정순리대로 나타나며 그래야만 천국도 영생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 사람들도 자손에게 재산을 상속하듯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한다.
시대마다 택한 자녀들의 배도로 계획을 이루시지 못했고 결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다시 오마 약속하신 그 예언을 이루시려 하신다. 아니 홀연히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이 느끼지 못할 뿐이다. 신인합일의 결국을 보시고자 하신다. 6천 년의 장구한 역사는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창조의 날을 맞이하고 있다. 땅 끝에서부터 땅 모퉁이에서부터 불리운 종, 동해와 서해가 있는 곳, 나누인 곳에서 이 엄청난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남의 눈치보지 말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의연히 걸어가면 좋으련만, 믿기가 그리도 어려운지 고집불통이다. 언제까지 기다려 주실지 신의 인내를 테스트하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