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500년은 얘깃거리가 참 많다. 태조 이성계의 건국으로 파란만장한 정사와 야사가 풍부하다. 500년 역사도 대하소설이 되는데 하나님의 역사 6천 여년의 이야기는 얼마나 더 많을까? 성경 창세기의 첫째 날부터 재창조의 심오한 뜻을 감추어 두신 것을 아는 종교인들이 얼마나 많을까? 흙으로 빚고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된 아담의 시작으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예수님, 12제자, 사도바울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실존하는 인물이며 세계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된 인물들이기도 하다. 그러면 성경은 세계사일까? 한 사람을 택하시고 보여주시지 않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다라고 기록한 성경은 하나님께서 찜한 선민사이다. 허구도, 공상도 아닌 장래사이다. 알지못하는 무지한 인간들의 사고가 하나님의 나라를 폄하 훼방하며 완성의 역사를 더디가게 하고 있다.
하나님같이 높아지고자 하는 계명성이 신을 대적하며 지치지도 않고 마지막 용트림을 하고 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가 자세히 안다고 기록하신다. 그리고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쓸것이 없다라고도 하셨다. 빛의 아들들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니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깨어 근신하라 하셨다.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갚지 말게 하고 항상 선을 좇으라 하셨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라 하셨다. 예수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신다 하셨다. 이래도 성경을 덮어 놓고 변론만 하자는 궤변은 어떤 악한 자의 미혹일까? 창세기의 재 창조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도, 계획도, 생각도 모르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한 곳을 향하여 비방, 폄하하며 죄를 가중시키지 말고 온전한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한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첫번째 할 수 있는 건 우는 것이다. 그리고 먹을 것을 찾고, 자고, 싸는 것이다. 부모들은 마냥 이뿌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느듯 사람을 알아보고 눈을 맞추며 재롱을 피운다. 그러나 인지기능의 작동이 활발해 지면 어른들의 잔소리 아닌 훈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하면 안되는 것들도 많고 해야 할것은 더 많다. 착하고 바르게 사는건 기본 윤리임에도 세상 소식은 나쁜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선악 분별의 개념을 상실한 것같은 사고들이 범람하고 있는것 같다.
신이 보시는 선악의 관점은 어떤 것일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 하지만 하와가 권하여 먹은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도 930세 까지 살았다. 에덴동산이기 때문에 특례가 있었나? 범죄한 아담의 무엇이 죽었다는 말일까? 아담의 범죄는 사람들의 수명을 단축시키며 공허함과 흑암과 고통의 죄값을 감당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 주신 약속을 알고 믿고 깨달아 주시고자 하는 복을 소유하라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는 자에게는 비밀로 감추어 두시는 것이었다.
신께서 주신 능력을 가진 범죄한 천사즉 사단마귀가 하나님의 새 천지의 역사를 또 다시 대적하는 불상사는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공중 권세를 이제는 놓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신의 역사는 눈에 보이는 육체를 도구 삼아 일을 하신다. 자신속에 누구의 영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지 확인 해 보아야 한다. 신의 관점의 선악은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 아니다. 신을 알지 못하는 무지가 악이며 약속을 알지도 지키지도 않는 것이 죄이다. 창조주의 각본대로 이루고 또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계획을 제대로 알고 깨달아 행함으로 확실한 참 신앙인으로 거듭나길 기도한다.
흔히 접하는 지하철 안에서의 풍경이다. 살다살다 그런 X는 처음 봤다라고 험담의 골이 깊어 진다. 지하철 역을 9곳을 지나도록 큰소리로 통화를 한다. 그 X는 일 좀 잘하지 씹히고 있다. 여자들의 수다만 꼴불견인줄 알았더만 남자도 가당찮다. 왕 짜증이 났지만 한마디 거들었다간 뭔가 날아 올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참는다. 험악이 도를 넘는 세상이 우울하지만 우찌하겠노? 약자의 비애인것을, 아닌 것을 아니다라고 말하수 있는 정의의 세계를 꿈꾸어 본다. 여기에서 잠깐, 신천지를 이유도 없이, 무단히 이단이라고 폄하하고 비방하는 무리들에게 고하고 싶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말이 있지만 신천지인들은 신약의 예언이 이루어져 나타난 실상의 계시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듣던지 아니 듣던지 전해야 한다.
구약때 에스겔 선지자는 책을 받아 먹고 민답히 칠일을 지냈다고 하셨다. 입에는 달고 오묘한 말씀이지만 전하자니 민망하고 답답한 심중을 표현함이다. 오늘날 약속의 목자께서도 똑같은 경험을 하셨다고 하신다. 보고 들은 것을 그것도 신의 역사를 증거한다는 것이 어찌 수월 할 수만 있었겠는가? 그 때는 막강한 세력을 등에 업고 휘두르는 권세를 가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시대적 배경이..... 오늘날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건설되기 전에는 얼마나 황망했겠는가? 한 사람으로 시작되는 재 창조의 바탕이 쉬웠을리는 만무다. 이제 신천기 34년, 12지파가 창설되고 계시록을 가감하지 않고 통달하는 하나님의 씨로 거듭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완성을 위하여 달려 나가고 있다. 여론의 압박 따위는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할 수 없다. 가감없이, 일점 일획도 변궤치 않고 이뤄 가시는 보이지 않는 신의 역사를 믿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해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발등에 불이 붙는다고 해야만 기식을 하려나?
사람들의 이기심이란 절대 양보를 모른다.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하셨는데 홀연히 이루어가는 신의 역사를 외면만 하지 말고 마음을 열어 보기를 권면 한다.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묻고 싶다. 2천 여 년전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지, 아니면 처소를 예비하여 다시 오실 예수님을 믿을 것인지 명확한 판단이 필요한 때다. 신앙은 맹목적인 믿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신의 뜻과 계획과 목적을 알아야 한다. 설계도대로 지어져 가는 이 땅의 천국을 솔선하여 찾아 보자. 외치고 있지 않는가? 이 땅의 천국은 신천지라고, 새 하늘 새 땅(계21장 참조)은 신천신지, 줄이면 신천지! 성경을 50독 100독 하면 무엇하나? 이 땅의 천국도 찾지 못한다면 꽝이다. 읽기만 한다고 계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열어서 보여 주는 실상의 계시를 경험해 보시길 간절히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