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사랑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과하고 지나치고 막연하기때문에 제대로 의식도 못한 채 시간이 흐르고 기회도 놓치고 마는 것을 안타까워 한다. 부모의 심중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하물며 생명을 허락하신 창조주의 원대한 뜻을 얼마나,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한심한 목회자들은 신천지예수교회를 우습게 여긴다. 하나님께서 함께 동행하시는 목자를 인신공격이나 해대고, 여차하면 꼬투리나 잡아 흠집내기에 바쁘다.
한기총의 교인수는 급감하고 있다. 원인규명은 커녕 자신들의 입신만을 위해 이간질을 해대지만 신천지예수교회의 성도수는 증가하고 있다. 왤까? 신앙의 궁금증은 물론이고 천국자녀로 양육해 주는 곳이기때문이다. 신앙의 목적이 천국과 영생이라면 이치에 맞고 신빙성이 있는 곳에서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연의 변화도 창조주의 역사도 징조가 나타난다. 예민한 자만이 감지할 수 있다.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어느 곳을 선택할 것인가? http://cafe.daum.net/scjschool/E3qZ/1042: 하나님의 계명 평화와 사랑과 믿음
겨울은 떠남을 싫어하나보다. 아니면 계절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인가? 바람도 매섭고 춥다. 좋아라 봄맞이에 바빴던 새 순은 놀라 숨고 싶을 것이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를 수 없고 성경의 역사 또한도 사람의 의지와 생각들로는 거부할 수가 없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사람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천 년 후 백보좌의 심판을 예고하셨다. 죽은 자들이 자기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는다라고 하신다(계20:12~참고). 천 년의 시작은 언제부터일까? 또 생명책은 무엇일까?
무엇을 비유속에 감춰두시고 징조를 보여 주시며 때가 되어 깨닫는 자에게만 선물로 주시는가? 성경은 읽고, 듣고, 그 가운데 지키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셨다. 무엇을 지켜야 할까? 밤늦도록 봉사하고 기도해도 무효하다는 말씀은 왜 하셨을까? 시대분별과 선악분별은 신앙인의 기본임에도 무지로 일관하며 모르쇠는 자랑인양 떠벌리며 죄를 자초하고 있다. 성경은 눈으로 보는 책이 아니다. 구약의 이룬 실상의 주인공이 예수님이셨듯이 오늘을 사는 신약의 주인공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성취하셨듯이 이 시대 또한도 홀연히 이루어 가심을 깨달아야 한다. 6천 여 년을 계획하시고 이루고 계신다. 신앙을 하는 목적이 구원과 천국과 영생이라면 알아야 한다. 영생은 참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다(요17:3~참고). 성경을 믿는가? 아래 배너를 클릭해 보자!
봄은 해마다 꽃샘 추위와 함께 온다. 시셋말로 밀당인가? 아버지나라 천국도 징조와 조짐을 먼저 보여 주신다. 해달별이 어두워져 떨어지고, 등불의 역사가 시작되면 선천은 끝이 나고 후천 곧 새로운 역사가 동방에서 홀연히 나타나 성경의 약속을 이루어 가신다. 성경속에 기록된 하나님과의 약속도 모르는데 너 구원, 나 구원, 모두 구원 받았다고 자신있게 말 할수 있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얻을려면 먼저 배도의 일과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않는다 하셨는데 요한계시록의 비밀인 배도, 멸망, 구원을 아는가? 천국과 구원은 교회만 다닌다고 답이 있는것이 아니다. 찾고 구하고 두드리라 하셨다.
막연한 기대감이나, 밤새 기도원에서 구한다고 되는것이 아니다. 온전하고 바른 신앙을 하자. 신이 사람과 함께 한다면 어떤 새로운 세상을 누리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신은 전지 전능하다고 말로만 할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신과 혼연일치가 되는 신인합일을 꿈꾸자. 추상적인 메아리가 아니다. 곧 도래할 신앙의 환타지가 펼쳐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기업이다. 세속의 유희에 안주하지 말고 신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 보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부르고 계신다.
우리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들을 남발한다. 다음에 보자, 밥 한번 먹자 등등... 약속은 반드시 지키라고 하는 것이지만 예사롭게 의례적으로 한다. 사람들과의 약속은 그렇다치고 신과의 약속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신도 모르고 약속이 뭔지도 모르는데 우짜라꼬? 해 버리면 답이 없다. 그렇다면 알려 주고 믿고 지켜야 한다고 하는데도 몰라라 외면하는 대상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날 우리는 재림을 기다리고 바라며 신앙을 한다. 언제. 어떻게, 어디에 오실지 징조로 보여 주시며 실상으로 이루어 가심을 체험하게 하여 주신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 우리 눈 앞에 나타났고 또 만들어지고 있다. 약속을 알고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냐고 반문이라도 좀 했으면 좋으련만 자신들의 정체를 모면하기 위해 갖은 모략과 핍박을 일삼는 천인 공로할 일들만 일삼고 있다. 어찌하리~~
신은 택한 사람과 약속하시고 그 때와 시와 징조를 보여 주시고 홀연히 이루어 가신다. 사람의 지혜로는 불감당일 뿐더러 사실로 기정화되어 소경이 아니라면 경악할 수 밖에 없다. 어느 영화의 장면같이 영은 육신의 몸을 빌어 간절한 것을 전달하고자 한다. 허구에 지나지 않을까? 하나님께서는 결코 보여 주지 않고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하셨다(암3:7참고). 인류의 세계사 속에 성경의 노정이 숨겨져 있듯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역사속의 주인공들이 되어 기식하며 있다. 빛과 비와 공기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신의 사랑 또한도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바라고 계신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숙고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