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사람, 된 사람, 안 될 사람등 별별 사람들이 아웅거리며 살아 간다.
잘 생긴 사람, 못난 사람, 고운 사람, 못난이등 각양각색의 모습들로 지구촌이
움직여 가고 있다. 하나의 계기로 나라가 분쟁하고, 정치가 맞불을 놓고,
권력을 위해 과정은 치열하다.
그러나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자신의 일상에만 충실한 소신파도 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이런 만가지 사고들로 심령을 창조하셨을까?
생육, 번성, 충만, 정복하여 다스리라고 복을 주시지 않았는가?
명령대로 순종했으면 반목이라는 어리석음도, 인생이 걸어야 할 순리같은 여정도
생겨나지 않았을텐데 하와의 미혹은 치명타였다. 이 무지한 태동으로 인하여
창조주께서는 6천 여 년을 인내하시며 사랑의 결실로 끝맺음 하려 하신다.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 하셨고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한낱 짐승일 수 밖에 없었다.
신 앞에서 사람이 잘 났다고 하늘을 향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 본다고
표현하듯이 절대 내려다 볼 수 없다. 산정상에서? 비행기에서? 불가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나누고자 역사하시는가? 천국과 구원과 영생이다.
구원은 노정순리대로 나타나며 그래야만 천국도 영생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
사람들도 자손에게 재산을 상속하듯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한다.
시대마다 택한 자녀들의 배도로 계획을 이루시지 못했고 결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다시 오마 약속하신 그 예언을 이루시려 하신다. 아니 홀연히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이 느끼지 못할 뿐이다. 신인합일의 결국을 보시고자 하신다.
6천 년의 장구한 역사는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창조의 날을 맞이하고 있다.
땅 끝에서부터 땅 모퉁이에서부터 불리운 종, 동해와 서해가 있는 곳, 나누인 곳에서
이 엄청난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남의 눈치보지 말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의연히
걸어가면 좋으련만, 믿기가 그리도 어려운지 고집불통이다. 언제까지 기다려 주실지
신의 인내를 테스트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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