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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4일 화요일

꾸짖지 않으시며 후히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




사람들은 자신을 잘 모른다. 자신은 남들보다 좀은 더 잘 났고, 우월하다고 
착각들을 하고 산다. 예외일 수가 있을까?그러나 기도는 부족하니까  
채워달라고 간구한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인내를 아는 것일까?

하나님보시기에 한낱 구더기에 지나지않는 인생들이 아니었던가?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짐승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누군가는 성경을 
자꾸 읽으면 그 중에 성령이 깨닫게 해 준다고 힘주어 말한다. 정말 그럴까? 

하늘의 것을 보고 들은 택함을 받은 약속의 목자의 일곱번째 나팔소리를 
듣지 않으면 절대, 결코 깨달을 수가 없다. 간절히 바라고 구하면 걸어 다니는 
천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은연중에 말이다. 






이 천사들은 영원한 생명의 복을 예비하고 기다리고 있다. 한줌 흙인 
인생들에게 생기를 주어 낙원에서 같이 살고픈 여호와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자.
꾸짖지도 아니하시고 후히 주신다하지 않는가! 가족의 건강도, 가장의 명예도, 
자녀들의 스팩도 생명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담은 자기에게 주어진 생기로 930살을 살았지만 자금은 길어야 백세를 
갈구하지 않는가? 맛나고, 풍경좋은 곳을 소개하는 매체가 늘어나고 가고픈 
곳도 자꾸 유혹하는데 오래 장수해야 누릴수 있지 않을까?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알아야 면장(免葬)을 할 수 있다.
이 혼탁한 세상을 지혜롭게 안락하게 누릴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마음 한번 
바꾸면 극락에 거할 수 있는데 왜 그리도 고집을 피우는지 알 수 없는 마음은 
내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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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22일 목요일

내 속엔 무엇이 그리도 많을까?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조성모의 노래 가시나무 새의 일부이다. 처연한 것 같지만 우리의 신앙 고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공감을 부르는 노랫말이다. 

사도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는냐고 기록하고 계신다(고전3: 16~참고). 내 속에 내 것이 너무 
많아 하나님의 성령이 드실 여유가 없는 우리 자신을 돌아 봐야 한다. 믿기만하면 
되는 것이 신앙은 아닐 것이다. 

지구촌에 20억이 넘는 인구가 하나님을 믿노라 하지만 내 속에 나를 버리고 성령이 
거하실 집과 밭이 준비되어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성령께서 내 속에 임하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신앙인이 있을까? 



하늘이 주시는 복은  모든 사람들이 소원하는 건강, 물질, 명예에 비할 바가 아닐진데 
이 엄청난 것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더한 것은 알려 주어도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내 속에 또아릴 틀고 앉은 나는 누구이며 왜 자기집 마냥 나가려 하지 않는건지 자의식을 
깨어보자. 

나를 비워야만 떠나가신 성령께서 다시 오시지 않겠는가? 성경은 반드시 이루어질 
사실이며 현실임을 깨달아 부질없는 나를, 헛된 바램들로 썩어져 가는 것들을 소제하고 
깨끗한 집과 밭으로 거듭날 준비를 하자.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아버지나라 천국을 볼 수가 없다라고 하셨다. 꼼꼼하게  상고해 보자. 내 속엔 누구의 것으로 채워져 
있는지 나 자신을 확인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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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9일 화요일

성경이 말하는 비는 무엇을 뜻할까?



겨울비가 내린다. 한 때는 비님이 오신다고 표현했다. 이유가 있었을까? 
있어라고 이슬비, 가라고 가랑비, 보슬비는 뭐였지?
기억의 한계다. ^^ 성경에도 비의 종류가 있다. 장마비, 가는 비, 단비등 
성경이 말하는 비는 무엇일까? 

하늘은 귀를 기울이고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다(신32: 2~ 참고). 
만물의 이치속에 감추어 두시고 하나님을 찾기를 바라시고 원하신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셨다( 호6: 6~ 참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계실까? 구약과 신약의 
주인공은 누구일지 알고 계실까? 마당만 밟는 습관적인 신앙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을까? 

세상은 정보의 홍수시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의 정보는 얼마나 알고 
계시려나? 참을 이단이라고, 거짓을 정통이라고 우기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진리는 하나인데 무조건 밀어 부치는 배짱은 누구를 닮은 것일까? 

육체는 영이 사는 집이라고 말하는데 과연 내 속에는 어떤 영이 자리하고 있을까?
성령일까? 악령일까? 이제 신앙을 제대로 알고 좀 똑바로 해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문자에 매여 흐리멍텅한 안개속을 헤매일 것인지 묻고 싶다. 





밖에 서서 두드리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들어 오신다 하지 
않으셨는가?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세상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한다고 하지 않으셨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생각을 기록한 책이지 눈으로 읽는 흉내만 내는 
책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처소를 예비하여 다시오마 약속하신 예수님은 
어디에 오실까? 하늘에서 이룬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라 가르쳐 
주셨는데 죽어서 가는 천국만 동경하며 바라고 있었으니 어떻게 할까? 



무지한 죄를 자복하고 계시말씀 앞으로 나와야 하는데 먼산만 바라보는 
저 완악함을 용서하여 주시길 기도한다. 세상비도 생명을 싹트게 하듯이 
말씀의 비는 내 영혼을 살리는 단비와 같다. 나팔소리를 들을 때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의 비를 맞을 준비를 하자. 

커다란 우산이 필요없다. 마음의 문만 여신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한 
것을 주실것이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편133편 3절 말씀이다).









2016년 9월 5일 월요일

영이신 하나님, 보이는 말씀!




하나님은 영이시니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이시니 우리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다고 하셨고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단순하게 문자적으로, 자의적인 해석으로 성도들을 가르쳤으니 
주문처럼 뜻도 모르고 맹목적인 신앙을 해 왔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받았다면 예언의 말씀을 거짓되게 가르치며 죽어서 
천국간다라고 세뇌를 시켜놓았겠냐는 것입니다. 이는 거짓말의 신 마귀와 
하나 되었기 때문에 마귀의 뜻으로 거짓말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천지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어, 만물을 아담 
하와에게 다스리라고 맡기셨는데. 벰에게 미혹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배도하므로 창조한 지구촌과 만물까지 사단 마귀의 
것이 되었고, 하나님은 지구촌에서 떠나시게 되고. 지금까지 지구촌은 
범죄자 아담의 유전자로 난 사람들이 살게 되었으며, 마귀가 주관해 
왔던 것입니다.

초림 예수님의 보혈의 은사로 죄사함의 효력이 이 재림 때 이루어 지고 
나타난다면 실상을 보고도 믿지 않고 핍박과 폄하를 일삼는다면 
내 속 사람은 과연 누구의 씨로 났다는 말일까요? 거듭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받아 성령이 함께 하시므로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 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http://cafe.daum.net/scjschool/E3qZ/782 : 두가지 신과 두가지 사람




2015년 2월 26일 목요일

하나님께서 불러 주신 그날, 초심으로 돌아가자




모든것은 눈 깜빡 할 사이에 변할 수 있지만, 신은 결코 눈을 깜빡거리지 
않는다라고 한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신발이 헤어지도록 다녀 봐도 제자리 걸음인 
내 일상의 지루함 !

안개같은 신앙은 천리 만리 미로를 헤매며 지천에 늘려 밟히고 있었다.
어느 출근길 부지불식간 찾아온 천사는 조심스레 빛의 나라를 소개했으며 
나는 블랙홀같은 말씀의 감동에 사로 잡히고 말았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유일하신 신, 하나님 !
우리의 신원에 귀 기울이시며 응답하시는 하나님 !
천상에서 지상으로 오시고자 분주하신 하나님 !





오랜후의 오늘날이 실상이 되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 전무후무한 일들을 우리만 알기에 벅차 전하려 하면 이단으로 매도하고 귀를,
눈을, 막고 감아버린다.

비진리의 자부심과 교만이 풍성한 오늘날의 신앙을 대표하는 목자님들, 
천국의 대변자인양 지위가 하늘을 찌른다.

6천 년 인내 해 오신,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
신통이 방통을, 천법이 이 땅에 선포되어 지상낙원을 이루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해 오실때 어떤 권세로 저들은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겁을 상실한 무지한 심령들 !
되돌아 올 때는 이미 늦은 후회를 동반하지나 않을지 심히 염려스럽다.'





신의 부름을 받은 약속의 목자는 천명을 전하기에 시간이 분주한데 
지켜만 보는 자신또한 민망하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 하신것 같이 말씀이 내 안에 거할 때 성령또한 동행할 것이다.
신령함도, 거룩함도, 천신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부단한 지혜로
깨달아야 한다.

세상을 보고 있어도 머리와 생각은 오직 신선한 천기로 생명나무 잎사귀의 사명을
지키며 실천하는 아버지의 자녀로 거듭나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날 배운 기록을 정리하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았던 신명을 기억하며, 이 땅에
이루어질 낙원을 소망하며 주어진 천명을 지켜 나아 가야 할 것이다.

오늘도 무시로 상시로 기도하며 오실 날을 손꼽아 본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계 22: 20~21참고).
성경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난다.

2014년 4월 7일 월요일

아름다운 신천지 - 잘 하고자 마음먹고 노력하면






(잘 하고자 마음먹고 노력하면)

성령이 도와주실 것이다


포기하고 있는데

누가 도와 주겠는가?


용기를 가지면 


성령이 도와주실것이다

2014년 3월 1일 토요일

하나님의 말씀의 법인 하나님의 씨와 아브라함의 씨와 이방

하나님의 말씀의 법인 하나님의 씨와 아브라함의 씨와 이방





하나님의 씨와 아브라함의 씨와 이방
본문의 말씀은 (창 21:13, 요 1:13, 창 21:21)이다.


성경의 역사상 배도한 아담의 9대 손(孫)이 노아였고,
노아의 10대 손이 아브라함이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내 사라가 있고,
사라에게는 여종 하갈이 있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갈에게서 난 아들 이스마엘이 있었고,
사라에게서 난 이삭이 있었다.
이스마엘은 형이고, 이삭은 동생이었다.
이스마엘은 종에게서 났고,
이삭은 약속의 여인에게서 났다(창 16-17장, 18:1-15, 21:1-7).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창 21:12).”고 하셨다.
자기의 씨 곧 자식이 되는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의 법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씨가 아니면 이방이라 할 수도 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씨로 났다.
‘그런데 왜 아브라함의 씨가 아니란 말인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법이기 때문이다.

사라와 이삭의 집에서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은
바란 광야(시나이 반도 중부의 광야)에 거하였으니,
이 광야는 애굽에 가까운 곳이다.

이스마엘은 애굽의 여인과 결혼하였으니(창 21:8-21),
이는 창세기 6장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땅의 여인들과 결혼하여 같은 육체가 된 것과 같다.
시나이 반도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에 불과한 곳이니,
바란 광야에는 물도 없고 초목도 없었다.
이 광야에 거하는 사람들은
물이 있는 애굽으로 뻗어 나갔으니 애굽과 하나 되었다.

이후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찾아 도왔으니,
아브라함이 애굽에 간 것도, 야곱이 애굽에 간 것도,
모세가 애굽에서 역사를 시작한 것도,
예수님이 애굽에 가신 것도(마 2:13-23)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시기 위한 과정 중의 하나였다.

아브라함의 종 하갈도 애굽의 여인이었고,
이스마엘의 아내도 애굽의 여인이었다(창 16:3, 21:9).
이삭의 아들 야곱(이스라엘)으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은 단일 민족이요,
다른 민족과 결혼을 못 하게 되어 있다(출 34:15-16, 신 7:1-3, 수 23:12-13).
이는 율법 때로부터 있게 되었다.

배도자 아담 때로부터 아브라함의 자손들
곧 예수님 이전까지는 육의 씨로 난 자들이었고,
이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다.
아담의 세계, 노아의 세계, 모세의 세계가 하나같이 하나님을 실망시켰다.

이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나리오를 약속하셨으니(사 14:24 참고),
구약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한 것들이었다(렘 31장).
이를 예수께서 이루셨으니 곧 천국 비밀 ‘씨(씨를 뿌리는 일)’였다.
이는 아브라함의 육의 씨가 아니요, 하나님의 씨이다.
이 하나님의 씨를 뿌리는 것이(마 13:24) 새 일이며, 새 언약이다.

하나님의 씨로 난 자는 육과 혈통으로가 아닌,
하나님께로서 난 자이다(요 1:13).
위 새 언약의 씨는 2천 년 간 뿌렸고(복음으로 전파) 자랐으며,
다시 오실 때는 뿌린 씨의 열매를 추수하기 위해 오신다.

마태복음 24장(29-31절)에도, 누가복음 13장(28-30절)에도,
계시록 14장(14-16절)에서도 추수를 하시는 분은 예수님과 천사들이었고,
이 추수를 낫으로 하는 것이며, 이 낫은 곧 육신(肉身)이다.
곧, 주께서 사람(말씀을 가진)을 들어 추수하는 것이다.
추수하는 이는 하나는 영이요, 하나는 육이다.
예수님과 천사들은 하나님의 씨로 난 육체를 추수하기 때문에,
영이신 예수님과 천사들은 육체(낫)를 들어 역사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씨로 난 자마다 배도자 아담의 씨로 난 자들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의 모양이 아닌,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닮는 것이다.

변화산(變化山)상에서 본 바와 같이(마 17:1-8 참고),
우리가 껍데기는 육을 입었으나,
속사람은 아브라함의 씨와 혈통(사람)도 아니요
이방의 씨와 사람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씨로 된 것이다.
육을 벗으면 속사람이 보일 것이고,
성령을 덧입으면 육신이 입었던 옷은 사라질 것이다.

뿌린 씨(말씀)가 우리 몸 곧 흙에서 자라 싹이 나고 나무가 될 때,
새(성령)들이 와서 깃들여 함께 살게 된다.
육을 벗든지 아니 벗든지 하나님의 씨의 사람이다.
변화산상의 예수님의 모습이 변화된 것같이
일곱째 나팔 소리로 변화된 사람이 죽지 않고
썩지 않는다는 말은(고전 15:51-54),
요한복음 10:35의 말씀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神)이라 함’과 같고,
사도행전 17:29의 말씀 같은 신의 소생이다.
이같이 신의 소생이 되는 것도,
신이 되는 것도 신의 씨로 되는 것이다.
이것이 창세기 6:2의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우리가 신앙을 하는 것은 참 하나님을 알고,
그 뜻을 알고, 그 뜻대로 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신의 소생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천국) 가족이다.

이방은 육적 이방과 영적 이방이 있다.
아담이 죄를 지은 그 때로부터 배도한 이방이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 이삭 같은 정통과
이스마엘 같은 이방이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 이후부터는 하나님의 씨로 난 정통과
하나님의 씨가 아닌 이방 곧 용의 씨로 난 이방이 있다.
또 용의 씨로 난 자가 아니라 하는 불신 사회 사람들도
범죄자 아담의 씨로 났으므로 이방인 것이다.

이 지상에서 천 년 기간 내에 영원한 복음으로 다시 나지 못하면,
또 옷을 빨아 입지 못하면 천 년 후 이방은 불로 소멸된다.
오늘날은 1차 심판이고,
천 년 후는 2차 심판이다(계 20:11-15).
오늘날의 부활자는 첫째 부활자로(계 20:4-6) 복된 자들이다.
이 이상은 비밀에 붙여둔다.
그리고 참 이방과 참 정통도 오늘날부터 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