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cheon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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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4일 수요일

개종 교육! 어두움은 빛을 싫어 한다.



도덕과 상식을 벗어나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라고 반문하게 된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라고 법이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도 종교계가 한 단체를 음해, 왜곡, 비방하기 위해 가족간의 
불화를 조장하고, 성년이 된 자녀를 또는 아내를 강제개종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비도덕적인 행위로 피해를 속출하고 있다. 

세상에는 교리도, 교파도, 교단도 늘려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신천지만 주목을 
받아야만 할까? 그러나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가짜는 참을 이겨낼 수가 없다. 




틈새를 이용한 꼼수에 선량한 희생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신천지는 참된 
신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신앙의 자유를 감사하며 신의 뜻과 계획을 인지하며 
참 신앙인으로 거듭나려 노력하고 있다. 참과 거짓은 사람이 판단할 수 없다. 

일개 개종목사의 돈벌이 수단에 농락 당해선 안된다.
자유는 말 그대로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도 않고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백과사전에 나와 있다. 개인주의가 팽배해 가는 현실에 역행하는 
아이러니는 아닐까? 

법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강제를 한다는 것 자체도 이해불가다.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자녀들의 의사는 무시하고 돈까지 바쳐가며 개종 교육에 데려가기 
위해 폭행, 감금, 심지어 수갑까지 채우는 작태를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어두움은 빛을 싫어한다. 정말 신천지가 이상한 곳이라면 조목조목 이치에 맞는 
설득을 해 보여라! 정당하지 못한 술수로 포장만 하지 말고, 신앙은 성경대로 하는 
것이지 인신공격이나 일삼고 비방,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거룩한 주의 종이라면
본연의 목회의 모습을 보여라! 회개하고 또 회개해야 한다. 

죄사함의 자격이 주어질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영벌이 두렵지 않은가?
오늘도 이해불가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누가 사주라도 하지 않으면 불가한 
일이다. 딸을 돌려 달라고 하는데 그 딸은 바로 그 옆자리에서 자기 가족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여러분의 눈과 귀가 있다면 분별하기 바란다. 
어떻게 이런 일이......


http://www.shincheonji.kr/bv_news_4590


소경같은 신앙은 이제 그만! 참을 확인하시길 바란다.







2017년 6월 13일 화요일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한 귀절입니다. 승자는 눈을 밟아 길을 만들지만 패자는 
눈이 녹기만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타입이신지?

머리가 비어있는 사람은 죄를 두려워 할 줄 모르고, 무식한 사람은 경건할 
수 없으며, 수줍어 하는 사람은 배울수가 없고 사업에 지나치게 열중하는 
사람은 현명해 질 수 없다라고 합니다. 배짱좋게 모른다 할 수도 없고, 
소극적이라고 자랑할 수도 없겠습니다. 


성경에도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하셨고, 하나님의 백성을 버린다고까지 
하십니다. 아는게 힘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신앙을 하고 있다고 자랑만 하지 
말고 신의 뜻을, 목적과 계획을 알고 임하여 오실 때와 장소를 알고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맹신의 주체는 초림때에 머물러 있고 재림의 선두주자 들은 이 땅의 천국을 
건설해 가며 알리고 있지만 어두움에 사로잡혀 오늘날을 아예 외면하며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못을 박듯 세뇌시켜 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노라합니다. 사람들은 좋은 말만을 듣고 싶어하지만 
그 편안함이 오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에 멸망이 홀연히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의 죄는 허물치 않으신다 하셨지만 아는 시대의 죄는 
행위대로 갚아 주신다 하셨습니다. 신앙은 두렵고 떨림으로 해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눈을 밟아 길을 만들것인지 녹기만을 기다려야 하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지식이 없어 망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명심 또 명심하여 지혜를 
구하는 똑똑한 신앙인이 되어야 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2017년 6월 12일 월요일

주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는?




사람들은 말한다. 진리는 하나라고, 그러나 진리의 주체는 누구신지 
모르는것 같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눈따로, 말따로, 생각따로다.

이 흩어진 마음을 모아 모아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십자가의 고난을 
짊어 지신 보혈의 사랑을 망각하고 살아들 간다. 창조주의 뜻과 계획과는 
전혀 다른 자신의 세계속에 주인공 행세를 하며 만국을 소경으로, 
귀머거리화 시켜 놓았다. 

때가 되면 홀연히 변화 받는다고 하셨는데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걸까?
수도 없이 많은 시간을 알려 주시고 보여 주시며 듣게 하셨지만 아직도 
혼돈과 흑암속에 분주하다. 빛은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사람들은 진리의 빛을 찾아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태산을 
이룰 것이다. 빛이 오기 전에는 누구도, 아무도 모르는 밤이었다. 하지만 
빛으로 오신 약속의 목자께서 천상수와 천하수의 실상을 증거하고 계신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나뉘는 시점에서 자신의 위치를 점검해야 한다. 
뭍이 드러날 때 자신의 밭에 하나님의 씨로 거듭나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길 기도해야 한다. 세상도 성공이라는 것이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듯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경홀히 여겨서야 되겠는가? 

왕같은 제사장의 유업을 받게 해 주신다는데 언제까지 음해와 비방의 
올무에 갇혀 있을 것인지는 현명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주 재림을 기다린다면 말이다.








2017년 6월 11일 일요일

깊은 산속 옹달샘, 토끼는 왜 물만 먹고 갔을까?



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달밤에 노루가 숨바꼭질 하다가 
목마르면 달려와 얼른 먹고 가지요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의 작시로 널리 알려진 
깊은 산 속 옹달샘!





시셋말로 약수터다. 그런데 토끼는 분명 세수하고자 옹달샘으로 
왔지만 씻지는 않고 물만 먹고 갔다. 웰까? 토끼의 생각을 대변이라도 
한 것 같은 어느 블로그의 글엔 이렇게 표현 되어져 있다. 

내일도 이 깨끗한 물을 먹기 위해서 또 자연환경 보호차원에서 
씻지 않고 물만 먹고 가지 않았을까? 하는 글이다.





아주 오래된 동요임에도 자연보호를 염두에 둔 작시를 했단 말일까? 
아무튼 성경에서의  물(비)은 말씀이다(신32:2참고). 그리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 하셨고 생명수 샘물에 더러워진 심령을 씻으라고도 
하셨다. 

고로 물만 먹고 얌체같이 도망갈것이 아니라 흰 두루마기를 빨아 
입었어야 했다. 무슨 말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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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9일 금요일

창조주께서 주신다는 복은 영생이었다.



사람들은 영생을 믿진 않지만 오래 건강하게 살고는 싶어 한다. 죽지 않고 
살아가면 그게 영생인 것을 굳이 부인하려 든다. 말도 안되는 소리, 얼토 
당토 않은 말들로 허투루 여긴다. 가진 자는 좋아라 하며, 하루가 역경인 
자는 경악할 일인가? 

그런데 성경에는 신께서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이 영생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정작에 신을 믿는 사람조차도 감각이 없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알고 믿고 지키는 자에게 유업을 상속케 하신다 하셨으니 이 복이 영생인 것이다. 
우리는 말한다. 신은 살아 역사하신다고.....

세치 혀의 말이 신의 말씀을 경외하지 않으며 죄의 관영을 주관하고 있다. 그 
결국을 직감하지 못하는 교만으로 채워져 있다. 신의 노정 순리는 배도, 멸망, 
구원의 차례대로 반복 되어져 왔다. 
그것도 홀연히 말이다. 안다고 하는 자에게 도리어 죄가 있다라고도 하셨다. 
선지사도들과 순교한 영들이 얼마나 안타까워 하실까? 무지한 심령들을 
보면서 말이다. 깨어있는 신앙을 해야 한다. 깨어라를 외치고 강조하던 교단이 
있었다. 그들은 얼마나, 무엇을 깨워 신앙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무엇일까?
예언하시고 그대로 성취하시는 창조주의 무한한 사랑을 아는가? 보여주고 들려 
줘도 외면하고, 폄하하고, 역사를 훼방하는 현실은 지극히 성경적이다. 어두움의 
자녀임을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니 말이다. 

구원은 노정순리 대로 나타나며 그래야만 천국도 영생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 
영원한 생명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영원한 지옥 형벌을 택할 것인지는 목사님도,
절친도, 이웃도 아닌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 

사람들은 평생을 두마리의 개들에게 끌려 다니고 있다라고 한다. 뭘까? 편견과 
선입견! 웃자고 하는 소리만은 아닌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그 곳에 
진리가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12명의 제자들로도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셨다.

예수님의 오신 이후 BC와 AD로 나뉘어 지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이스라엘의 역사가 곧 성경역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도 
유대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예수님을 영접하지도 않았고, 지금도 엘리야를 
기다리고 있으니 깊은 밤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일까?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신다 하셨다(살후2: 1~3 참고).

배도와 멸망의 노정을 알고 있으신지? 이 일 후에 구원자는 강림하신다는데 
기독교인들이 믿기만하면 구원이라고 하는 이 말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인지 
요원해 진다. 

정통이라고, 구원 받았다라고 목에 깁스하신 목회자들께 질문하고 싶다. 구원의 
노정순리를 육하원칙에 의거 증거할 수 있으시냐고?








2017년 6월 8일 목요일

예수님은 하룻밤 유숙하는 자 같은 모습이었다.



외모 지상주의란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별반 다를 것도 없는것 
같지만 말이다. 지하철 안 맞은 편 자리에 앉은 여자분은  이뻐 질려고, 잘 생겨 
보일려고 코와 입을 성형한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변화가 아니라 변형인것 같다. 미인의 기준에 부족함 때문인가? 언젠가는 부패하여 
썩어 없어질 것에 돈을 투자하고 고민의 밤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내 안에 거하는 
속사람의 원형은 관심도 없으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만 두질 않는다. 키작고  
못 생겨도 돈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상쇄하기도 한다. 




초림 예수님의 모습은 하룻밤 유숙하는 자 같고 벙벙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렇게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영화속의 주인공같이 멋짐과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작렬하는 모습만을 연상한다. 참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다. 

겉 모습이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얼굴에 보톡스깨나 맞은 얼굴로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스쳐  지나는 어르신을 본다. 겉모습의 치장이 생명을 대신 할 수는 
없다. 

화무십일홍이다. 떠나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바꿀 시간도 저 사람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것 같다. 안타깝지만~~




외모에만 집중하다 생을 마감한다면 사람들의 생각은 모자람 아닐까? 잘 생김이 
스트레스였다던 모 정치인은 뭐지?

후패해 사라질 겉사람을 위해 치장하지 말고 우리의 속을 날로 새롭게 변화 받을 수 
있도록 생명의 물로 씻어야 하지 않겠는가?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것은 영원함이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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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7일 수요일

내 심령의 기근과 기갈의 해결책은?



비가 온다. 가뭄을 해갈 해 줄 수 있을까? 메말라 갈라진 밭의 모양이 
우리 심령의 모습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생명의 물이 없어 신음하는 내 영혼의 기갈 말이다. 옛날 인디언의 기우제는 
비가 올 때까지 드렸기 때문에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기상청의 일기 예보에만 기대어 원망도 하고, 
잘 맞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담의 범죄로 떠나가신 창조주께서 이 땅에 드신다면 그야말로 낙원 천국이 
아니겠는가? 내가 다시 올테니 이렇게 준비하고 있어야 된다 하시며 가신지 
2천 여 년이 지났다. 




알지 못하던 시대를 마감하고 이제는 밝히 보여 주시며 모여 있으라 하시는데 
밤의 세력이 빛을 차단하며 불쌍한 심령들을 단으로 묶고 있다. 

솔로몬의 기도는 여호와의 마음에 합한 기도였다. 우리의 기도는 과연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 돌아 보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있는지, 아니면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에만 집중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 영혼의 기근과 기갈을 해결 해 줄 수 있는 생명의 단비를 흠뻑 맞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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