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cheonji

shincheonji
shincheonji

2017년 5월 17일 수요일

천국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과 금이 포장된 곳일까요?



천국을 동경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천국! 어떤 곳이며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을지 고민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한 많은 사연들이 축적되어 나이들고 병들어 
죽게 되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단,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말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천국을 보고 왔다는 간증들이 서점에는 넘쳐 나고
그들이 보고온 천국은 꽃들이 화려하게 단장을 하고, 금이 포장된 길을 예수님의 손을 
잡고 거닐던 그 곳일까요? 

마태복음 13장을 일명 천국장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천국을 보여 주시는 장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셨고,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밭에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은데 이 씨는 작지만 자라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가지에 
깃드는 것이라 하셨고, 또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그 진주를 발견하여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는것이 천국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천국 가보고 싶으신가요? 나는 가진 것이 없어 팔 것이 없는데 무엇을 팔아라고 
하셨을까요? 예수 믿다가 죽으면 가는 천국보다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천국은 갈 수 있는 너희와, 갈 수 없는 저희로 또 나뉘게 된다는군요. 천국을 찾기도 
전에 포기하는 불상사가 발생할지도 모르겠군요. 어찌합니까?

천국을 비유로 감추신 뜻도, 너희와 저희를 분별한 계획도 있지 않을까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말했던 예수님의 제자 빌립같은 믿음이 
이 세대에도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더 복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하지만 비유가 열려 밝히 보여 주고 계심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가 아니라 마음의 문만 열 수 있다면 간절히 염원하던 천국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그리 의심하고, 망설이나요? 

옆집 아줌마, 아저씨가, 우리 목사님의 말씀이 자신을 천국으로 인도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속사람에게 오시고 싶어 하십니다. 죄가 없는 깨끗한 심령에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계획을 제대로 알고 깨달아 지켜 행하여 소원하는 이 땅의 천국을 
찾기를 바랍니다.









2017년 5월 16일 화요일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지하철의 두 노인의 대화다. 아는 사이는 분명 아닌데, 80세라고 당신의 
나이를 밝히는 할머니께서 68세라고 하는 상대를 보며 하는 말, 
"니는 알라(애기)다"라고 하신다. 그 대화를 엿듣는 64세는 미소가 나올 수  
밖에 없다 .

성경에도 100세에 죽는 자를 아이라고 했고 백세 못되어 죽는 자를 저주받은 
것이라 기록되어 있다. 100세  인생이라는 노래 가사에는 80세에 저 세상에서 
데리러 오면  아직 쓸만하고, 그래도 또 데리려 오면 자존심 상해 못간다 전하라 한다.  

90세는 알아서 갈텐데 재촉하지 말라 하고, 100세에는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150세에는 이미 극락 세계에 와 있다라고 저승사자에게 고하는 가사가 우연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과학도, 의료 기술도 탁월해서 수명이 늘어갈까? 공기는 오염 수준을 
넘어 심각하다라고 연일 보도 되고 있는데 말이다. 

성경을 기록한 이유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의 이 모습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하늘로 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어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된다면 홀연히 변화 받는 기적은 
사실로 드러날 것이다. 

한치 앞 밖에는 볼 수 없는 인간의 한계가 부정에 부정을 만들 뿐이다. 
영생! 이 땅의 세대가 받을 하늘의 복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부지런히, 열심히 알려 주어도 소 귀에 경 읽기다. 언제쯤 알고 몰려 올려나? 

그 때는 이미 이 땅의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몸은 초상을 치르지만 영의 심판은 
어이할꼬?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2017년 5월 15일 월요일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이는 누구실까?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와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이
가 계신다(마10:28절 참고). 신앙을 한다면 누군지를 알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어느 곳에 속해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초상을 치르고 둘째 사망의 해를 또 받을 것인지 아니면 영원한 생명의 복을 누릴
것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구하고 찾는 자에게 혜안을
열어 주실 것이다. 궁금해 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는 자에게 유업을 물려 주고
싶으시겠는가?




하늘의 복을 받는 것이 입으로만 부른다고 가능한 일일까? 언제, 어디에, 어떻게
오마 알려 주심에도 불구하고 팔짱을 끼고 먼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우실까? 분노치 않으시고 인내하시는 하나님, 언젠가 너를 알지 못하노라
하실날이 있을것이다.

모교회는 구름타고 오시는 주를 확인하기 위한 대안으로 하루에 하늘을 세번보기
운동을 한단다. 헐! 어이없는 일이지만 사실이다.
안 쳐다 보실 때 오시면 어쩌려나? 잠도 안 자고 밤에도 쳐다보고 있으려나?

맹신은 화를 자초한다. 십자가의 보혈로 죄사함 받았다고 한다.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교회만 다니면 될까?




하나님의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기록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리라 하셨다.

하나님의 법을 아는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하셨다. 행한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 자신은 열심히 신앙했는데 아버지께서 너를 모른다고 하면 그 때는
어떤 변명을 할 것인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신다고 하셨다. 어떻게 할 것인가?
만물의 창조주는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주인은 모든 권리가 있으시다. 어설픈
신앙으로 천국을 원하는가? 똑똑해지자.








2017년 5월 14일 일요일

개에게 거룩한 것을,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자가 있을까?




변화의 바람은 귀여운 애견들이 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철따라 의상이 바뀌고
외출할 때 신발을 신고 이제 유모차까지 타고 다니며 전용 호텔에 장례식장까지
애견 천국이라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유아들은 많아지는데 주인 잘 만나 호사를 누리는
견공들의 호사를 격세지감으로 몰아버리기엔 시사하는 바가 많은것 같다.

성경에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앞에 던지지 말라고
하셨다. 개와 돼지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하셨다.
거룩한 것은 무엇이며, 진짜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는 사람이 있을까?




절모르고 시주한다는 말이 있다. 밑없는 독에 물 붓기라는 말도 있지않은가?
신앙을 열심히 하면 뮈하나? 천년 후의 미륵불도,  재림의 예수님도 언제 어디에
어떻게 오시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노력, 봉사, 헌금까지 아끼지 않는 맹신의 깊이를
잴수가 없다.

밤은 어두움의 분간을 할 수가 없지만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순리는 누가
부인할 수가 있겠는가? 신은 살아 역사하신다는 것을 직접 경험 해 보기를 권면한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평화의 나라가 궁금하지 않는가?

성경은 실상이다. 이상과 환상으로 기록해 놓으셨지만 기록된 말씀이 응하여
나타날 때 비로소 문화의 결실을 맺는 것이다. 상식과 이치에도 맞고 순리에도
어긋나지 않는 정한 새 언약의 법을 우리는 생각과 마음에 새겨야 한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이 있으려면 말이다. 하나님의 씨로 거듭난 자만이
천국도 구원도 영생의 복을 받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추수되어 인맞아
12지파에 속하고  생명책에 녹명되어야만 새 나라 새 민족이 될 수 있다.

종말은 태초와 맞물려 그 빛을 소진시켜 간다. 노을은 아름답지만 밤을 향하고 또
내일을 기약하지만 신앙의 종말은 흔적도 없이 스러져가는 것이다.

가는 세대에 머물러 버림을 당할것인지 새로워진 시대의 징조를 감지하고 앉았던
자리를 박차고 나올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 여하에 달려 있다. 개의 본성은 비오는 날
자기가 토하였던 것을 다시 주워 먹는 습성이 있다. 토하였던 것은 무엇이며 왜
그 더러운 것을 주워 먹을까?




하나님께서는 천국을 비유로 감추어 두셨다. 때가 되어 이 비유를 풀어 해석해 주는
보혜사가 나타나지 않으면 천국을 볼 수가 없다. 언제까지 어둠속을 방황만 할 것인지,
아니면 어둠을 헤치고 나와 빛을 영접할 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영원한 생명을 유업으로 주신다고 하셨다. 모든 多魔(다마)는 한국에 다 몰려왔다고
하셨다. 이유가 뭘까? 카더라의 편견은 혹세무민(惑世誣民)의 길잡이인지도 모른다.
현명하고 똑똑해 지자.









2017년 5월 12일 금요일

부처님 손바닥은 어디일까요?




기상 변화는 어른신들이 감지하고 시대 분별은 젊은이들이 해야 할까요?
성경에는 두가지의 약속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 말씀이 기가 맥히게 좋은 
우리 목사님께서 이 약속에 관한 해석을 해 주시던가요? 

옛 약속인 구약은 왜 지켜지지 않았는지, 예수님께서는 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새로운 약속을 하셨는지 알고 계시나요?

아이 밴 자는 화가 있으니 임신을 꺼려하고, 휴거할 때를 대비하여 밥까지 굶고 
다이어트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신앙의 현주소가 한심하기가 이를데가 없습니다.






처소를 예비하여 다시 오신다 하셨고 그곳은 이 땅의 천국이 이루어 지는 
나라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 성전임을 아십니까? 교명도 성경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믿기지 않는것이 당연하다고 하기엔 신천지를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요? 눈 멀고 귀 막은 우리 목사님 말씀 타령하는 교인들 빼고는 
말입니다.  오랜후에 다시 어느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일러 주신다고 
히브리서 4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2천 년 전 기록하신 오늘날이 정말 이 시대라면 놀랄 일이 아닙니까? 
온전한 신앙인으로 거듭나길 기도합니다. 신약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이루어져 나타난 실상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밤의 미혹에 자신을 맡기지 말고 똑똑해 집시다. 만국속에 있다면 말입니다.
지구를 떠나거나 벗어날 수 있는 재주가 있더라도 말입니다. 

우주의 창조주는 유일 신 하나님이시기때문에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佛)? 파자하면 사람이 아닌 신입니다. 누굴일까요?




2017년 5월 11일 목요일

흥부는 박씨하나로 운명을 바꾸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물고 온 박씨는 흥부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전래 동화에나 나오는 얘기로만, 상상에만 맡겨야 할까? 오늘날도 마음먹기에 
따라 흥부보다 더한 운명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다. 

이 행운의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보여주고 들려 준다. 흥부도 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고쳐줄 때 댓가를 바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한치앞도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이 자신의 잣대에 맞춰 놓고 오류를 범하고 있다. 
밑져 봐야 본전이란 말도 있지 않는가? 자신이 들어 보고 선택하면 될 것을, 
카더라 방송의 불안에 편승하여 현실의 박씨를 외면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고 빛이라 하셨다. 어둠이 깨닫지 못한 빛은 무엇일까? 
세상도 상식과 이치가 통하는 나라를 부르짖고 있다. 신앙세계도 오랜 시간을 
마무리하며 상식과 이치에 맞는 진리를 알게 하여 주신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누구의 질책이 두려운가? 신앙은 신과 일대일의 관계이다. 일한대로 갚아 주신다 
하지 않았는가? 지켜달라 하신 그 약속대로 행하면 될텐데 무얼 그리 잴 것이 
많은지...... 하나님의 씨로 거듭나고 추수되어 인맞아 12지파에 속하여 생명책에 
녹명되어야만 새 나라 새 민족이 될 수 있다. 




흥부가 발휘한 희생봉사는 운명을 바꾸었지만 영생의 복을 받지는 못했다. 
동화속에 사는 얘기이지만 상상의 나래를 펴 본다. 

영원전부터 계신 신께서 사람과 영원까지 같이 살고자 하신다. 죄사함의 보혈이 
자신에게도 효력이 미치기를 바란다. 흥부를 흉내 낸 놀부의 결국을 잘 알것이다.
만물 속에 감추어 두신 하나님의 비밀을 속히 깨달아 신께서 주시는 박씨를 
절절하게 욕심내어 보자.



2017년 5월 10일 수요일

성찬식엔 무엇을 먹나?



세례받지 못하면 성찬식의 성찬은 먹을 수가 없다. 새 신자의 입장에선 기분이 별로다. 
그러나 정작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만 연출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다만 기념을 했을 뿐이다.

성찬식엔 입에 넣자 마자 녹아 버리는 카스테라 한 조각과 한 모금의 포도쥬스가 
예수님의 보혈을 기념하며 존경과 감사의 눈시울을 붉힌다. 애잔한 찬송이 눈물을 
부를 수 밖에 없다. 처소를 예비하여 다시오마 약속하셨는데, 그림자만 붙잡고 순간의 
감상으로 신앙인의 도리를 다 한것 같이 이 날은 유달리 은혜롭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 받아 죽어서 천국 가는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한심한 신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혈의 대상이 누군지, 무엇을 약속하셨는지, 
관심 밖이며 오직 예수의 이름이 전부인 껍데기 신앙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해 돋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태초는 한 시대의 종말과 오버랩 된다. 
부패했으니 새 시대의 창조가 당연하다. 죄의 관영함은 한 시대를 청산하는 것이다. 
예언하시고 이루시는 창조주 하나님, 말씀으로 만물을 주관하시며 통치하신다. 





인생은 구더기보다 하찮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랑하사 같이 살고자 하신다. 신은 
말(영)로 역사하신다. 볼 수는 없지만 실체가 나타남으로 증명해 주신다. 이 외침이 
메아리가 아닌 호소로 깊이 받아 드려지길 바래본다. 다시 오셔서 구원의 나팔을 불고 
계신다. 실제 나팔이 아닌 비유속에 감추어 두신 사명자를 통하여 증거해 주고 있다. 

코 앞이 천국이면 뭐하나?
그냥 지나치면 그만이다. 두드리고 찾자. 천국은 우리가 살아 가고 있는  이 세상에 
실상으로 드러났고 이루어가고 있다. 설마? 가 사람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