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 자만, 허세가 일상인 사람들 속에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우울이 존재한다.
명품을 차려입고 외제 차를 소유한 말 그대로 잘 나가는 금수저도 자신의
자존감을 찾고자 의사와 상담을 한단다.
먹고 사는데 급급하다면 사치인게 분명하지만 그들은 나름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의 만족도를 평가한다면 과연 몇점을 줄수 있을까? 화려함 속에 내재된
또 다른 공허와 혼란이 요동을 치는건 아닐까?
왕자라는 이름도 거부할만큼 생노병사의 답을 찾아 나선 석가모니의 일탈을
알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찾고자 하는 해답은 얻질 못했다. 산으로 칩거한다고
방법을 찾는 것은 아닌것 같다.
도는 닦는다는 표현만 있을 뿐 결국은 어설픈 흉내나 내는 도인일 뿐이다. 잡히지
않는 자아를 찾지만 말고 영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신께 명쾌한 답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6천 여 년을 인내하시며 역사해 오신 하나님께 의지하며 모두를 맡겨 보자.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낙원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셨지만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은 결국은 흑암의 인이 배여 버렸다. 지지고 볶는 일상이
돼버린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도를 아느냐고 묻는다. 안다라고 말하고픈 마음이 앞서지만 그냥
지나친다. 정말 참 도를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고민은 태산같지만 그 답은 너무도
쉽다. 알고 믿고 지켜 행하면 된다. 갈증이 난다면 물을 찾아야 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빛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나락으로 떨어진 자존감을 UP시켜 보자. 다람쥐 체바퀴는
그 자리일 뿐 탈출구는 없다. 자만도, 교만도 자신을 보호해 줄 수는 없다.
화무십일홍의 두려움에서 벗어 나자.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착각할 때가 많다.
없으면 채우려고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물질이 만능인 시대에
미치지 못하면 지치며 자존감은 방황한다. 사람의 능력으론 한계가 많다.
이쯤에서 우리를 살려 주실 창조주 하나님께로 나아 가자.
영원히 안식할 처소까지 예비하시고 기다리고 계시지 않는가? 물없는 샘에서 물이
나오길 바라고 기다리지만 말고 거칠고 메마른 광야를 벗어나 보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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